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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국방의 의무를 돈으로 때운다 - 정의란 무엇인가? - 1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자가 힘이 없었던 적은 없다.

돈이 곧 힘이다. 그리고,

 

승자도 패자도 없으며,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이 온통 잃어버리기만 했던,
한국전쟁의 쓰라린 상처가 불과 60년 전의 일이다.

최근 연평도에서 우리 청년들이 안타깝게 전사한 것을 보아도
한반도의 평화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고,
그것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 청년들이 비참하게 희생되는 이런 처참한 상황에서도,

해병대에 자원하는 청년들이 오히려 늘어났다고 하는 보도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자 하는 보통사람들의 애국심에 경의를 표하게 한다.

 

그런데, 과연 이런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돈을 주고 때울 수 있을까?

 

 

 

 

의무로(?) 초등학교 급식 도우미 봉사를 해야 하는 어떤 어머니는

돈을 주고 자신의 봉사활동을 대체할 사람을 고용해야 했다.

회사를 나가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자원봉사를 돈으로 떼우신 것이다.

 

’돈으로 자원봉사를 때운다’에 대하여 찬반 논쟁이 붙으면,
논란은 있겠지만 심하게 비난받거나
형평에 맞지 않다고 시비를 거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병역문제는 좀 다르다.
나라별로 병역 문제에 대해 고민은 많았다.

 

 

 

 

프랑스는 2001년 200년 전통의 징병제를 자원군(모병제)로 전환했다.
징병 복무연한이 10개월에 불과했고, 모병제가 잘 정착되어
징병제를 폐지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보듯이, 말이 좋아서 자원군이고 모병제이지,
결국은 세금만 내고 군대에 가지 않겠다는 프랑스 사람들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돈(세금)으로 때우는 것이다.

 

좀더 생각해서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전쟁과 같은 비상상황에서 국가 방위를 위해 혹시 바칠 수도 있는 내 목숨을,

돈으로 사겠다는 것과 같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프랑스 국민의 59%가 징병제 폐지를 아쉬워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군 복무에 해당하지 않는 연령층인 35세 이상에서 높았다고 한다.

 

이런 조사 결과에 대해 미셸 알리오 마리 국방장관(놀랍게도 이분은 여성으로서 국방장관의 직을 수행했다)은,

 

 “징병제 폐지 전에도 실제 군에 입대한 청년은 
전체의 3분의 1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면제나 대체복무를 했다”며 
(형평성이 존재하지 않는) 징병제에 대한 향수를 일축했다.

 

 

 

 

내 목숨이 아니니까,
젊은 청년들이 애를 좀 써주면 우리 모두가 안전하게 잘살지 않겠냐는 뜻이리라.


그러나, 젊은 청년들이 애만 조금 쓰다가 끝나면 다행인데, 
아주 가끔은 목숨도 내놓아야 하니 그것이 문제다.

 

놀랍게도 조선시대에도 징병제와 함께 유급 대리복무시스템이 있었다.

군포다.
군포는 남자가 군역에 직접 복무하는 대신 바치던 세금이다.
조선 후기 삼정문란의 핵심 중의 하나가 군정의 문란 즉 군포다.

 

군정이 문란해지다보니 나라의 기강은 무너지고,
경제도 혼란스러워져 청과 러시아, 결국에는 일본에 의해
내 땅과 내 가족의 와아happiness, 그리고 나라까지 빼앗기는 사태까지 초래하고 말았다.

 

 

 

 

물론 잘 버티는 나라도 있다. 미국이다.
워낙 자원도 많고 막강한 힘으로 주변국들의 자원을 흡입하여 경제력이 튼튼해지니

병역을 돈으로 때우기가 무척 수월한 나라다.

 

미국이 징병제를 보완한 유급 대리 복무제를 도입한 것은 
남북전쟁 당시였다고 한다. 달러의 가치가 훨씬 높았겠지만,
단돈 1,500달러(현재 한화가치로 170만 원)로 자신을 대신할
대리 복무자를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화폐 가치가 지금보다 100배 높았다고 하면 1억 7천만 원이니까
생때같은 목숨을 보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큰돈은 아닐 것이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웬만한 중산층(상위 50% 소득 계층)도
적법하게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을 수준이다.

 

만일 달러 가치가 5백 배 높았다고 한다면 8억 원이 되니까
최고 부유층이 아니라면 감히 유급대리복무 즉 돈으로 떼우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2007년 9월에 징병제 부활에 대한
갤럽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80퍼센트가 반대했다고 한다.

 

이라크 전쟁에서처럼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고,
병사가 될지 말지를 스스로 선택하게 한다면,
80퍼센트 이상의 사람은 강제로 병사가 되기를 거부할 것이다.

 

그런데, 징병제라고 표현하지 않고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고 표현하는 순간
징병제의 정당성에 대해 어떤 반대 논의도 불가능해진다.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는 여러 가지의 주제들을
자유주의와 공리주의 관점에서 논의한다.

 

 

 

 

센델에 따르면,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자신의 목숨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
즉 징병제가 실시된다는 것은 자유인이 아닌 노예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미국 공화당(세계의 경찰, 감세 등 미국의 보수주의를 굳세게 지키는 당)의
자유주의자 론 폴은

 

   " 징병은 두말할 것 없이 노예제다.

     그리고 비자발 노예 상태를 금지하는 수정헌법 제13조에도 위반된다.

     징집되어 전사할 수도 있으니, 징병은 대단히 위험한 노예제다"

 

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보수 공화당 의원의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영어가 딸려서 원본을 찾아보지 못했다.

 

최대 다수의 최대 와아happiness, 전체 와아의 증가를 사회정의라고 생각하는
공리주의의 입장에서도 징병제는 말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군대를 가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보상만 적절하다면 군대에 가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두 사람이 병역의 의무를 가지고 거래를 하려고 하는데,
국가가 징병제를 내세워 이를 금지시킨다면,
두 사람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리주의의 논리에 따르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충분히 세금을 내게 하여 
노동시장에서 적절한 급여와 복리후생(교육받을 기회, 의료와 문화생활 지원 등)을 제공하고 
자원군을 모집하는 모병제가 사회정의에 부합한다.

 

 

 

 

물론 센델이 여기에서 논의를 중단하고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다.
내가 여기에서 멈추고 한국의 상황을 고려하여 나의 결론을 내리고 싶다.

 

한국에는 실질 위협세력이 있다. 북한-일본-중국-러시아다.
과거에 우리를 침략했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있었고 부끄러운 역사와 현실도 있다.

 

 

 

 

그렇다고 국방의 의무를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제한해 버리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무시하는 행위다.

자유주의와 공리주의의 논의를 기초로 하여
프랑스의 200년이 넘는 제도 변화의 사례를 모범으로 삼아

 

우리의 병역제도도,

 
     1단계 : 징병제(70% / 최저임금제 수준의 급여 보장)와 모병제(30%)의 혼용
     2단계 : 징병제(50% / 직업군인의 70% 수준 급여 보장) 모병제(50%)의 혼용 
     3단계 : 징병제(30% / 직업군인 수준의 급여 보장  / 복무기간 1년 이내)
모병제(70%)의 혼용 
     4단계 : 완전 모병제로 전환해 가기를 기대한다.

 

이 논의를 진행하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은,


피를 흘려야 할 때 그러하지 아니하면 
그 민족은 노예가 될 위험이 크다는 경고다.
이미 우리는 그런 경험을 여러 차례 겪어 왔다.

 

따라서 위 병역제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 모두가 피를 흘려야 할 때,
즉 전시와 같은 엄혹한 시기에는 언제든지 징병제로 전환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아, 우리 아들들도 이제 곧 군대를 가야 하는데, 아비로서 하루빨리 이 노예 수준의 징병제를  바꿔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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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벌써 20년이 지나 큰 아들은 군대를 다녀왔고, 둘째도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

조금 나아졌다면 월급이 제법 올랐고, 군영내에서 자유가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2023년 0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