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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_네 개의 사랑과 정치, 그리고 숭고한 사랑_밀란 쿤데라_220806

언젠가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인간 세계에서 벌어지는 실패한 사랑들과 인간을 넘어서는 숭고한 사랑과 발전과 퇴행을 거듭하는 정치 세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고 싶다. 

 

'토마시의 사랑'에 대한 밀란 쿤데라의 서술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큰 의미가 없다. 은유 또는 상징이다. 인간은 사랑을 배반하면서도 사랑할 수 있는 모순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사랑이라는 지고지선의 가치조차 스스로 배반하면서도 사랑할 수 있으니, 정의와 도덕과 상식과 믿음과 같은 가치들은 언제든지 배반할 수 있으면서 그 가치들을 지향할 수 있다. 인간은 그런 존재이기에 배반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인간이 끝까지 잡고 가는 것이 무엇일까를 읽어내야 한다.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다. 오직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다. 나를 들여다보고 내가 끝까지 지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사랑인지 연민인지 욕구인지. 무엇이든 두려워하지 말고 추구해야 한다.

 

오이디푸스왕은 잘못을 깨닫는 순간 죽지않고 자신의 눈을 찌르고 고행의 길을 떠난다. 잘못을 통감하고 삶 속에서 반성하는 고통을 기꺼이 감수한다. 반성하는 죽음에 대해서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백일하에 드러내고 속죄하는 것은 더 위대한 일이다. 오이디푸스왕의 친부 살해와 어머니와의 결혼 또한 극한의 상징과 은유로 받아들여야 한다. 힘들기는 하지만. 모든 잘못은 용서받을 수 있다. 처절하게 드러내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고통스런 참회의 길을 걷는다면 말이다. 죄를 저지른 인간이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이기는 하다.  

 

소련대사에게 헝가리의 봄을 무너뜨려 달라고 호소하는 일부 공산주의자들. 외부의 적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내부의 배신자도 의외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배신자들은 잘 숨고, 논란을 만들어가는데도 능하다. 오늘을 살기에도 즐겁고 바쁜 우리들이지만, 죽음을 껴안고 살고 있듯이, 죽음의 공포를 잘 다루면서 살아가듯이, 배신자들도 껴안고 잘 다루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삶은 늘 즐거우면서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개같은 사랑을 할 수는 없다. 토마시와 테레지아처럼 사랑은 마지막까지 고통스럽게 완성해 나가야 한다. 

 

1. 숭고한 사랑

 

카레닌과의 이별이 이 소설에서 가장 가슴 뜨거운 장면이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묘사되는 부분들은, 별다른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들의 사랑이 천박할 정도로 가볍거나 족쇄처럼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테레지아는 사랑 때문에 죽음 직전까지 가야 했고, 프란츠는 죽음의 순간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지 못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은, 끊임없이 변하고 의심하고 옮겨 다닌다. 불편하다. 인간에 대한 사랑은,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주는 만큼, 되돌려 받고 싶은 마음도 크다. 배신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깔려있다. 불안하다. 

 

그러나, 개와의 사랑은 숭고하고 눈물겹다. 개와의 사랑은, 서로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아서 늘 편안하다. 카레닌이 떠나고, 카레닌을 보내는 장면은,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인간을 개처럼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일까.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을 주고받으며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그런 사랑. 인간이 인간을 그렇게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개와 인간 사이의 사랑보다 열등하게 창조되었다 (중략 / 인간과 개의 사랑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랑이다. (중략) 테레자는 카레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를 자신의 모습에 따라 바꾸려 들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그가 지닌 개의 우주를 수락했고, 그것을 압수하고 싶지 않았으며 그의 은밀한 성향에 대해 질투심을 느끼지도 않았다." (461~2쪽)

 

2. 그들의 네 가지 사랑 : 다들 제정신은 아니다. 

 

1) 테레지아 : 사랑을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안식처로 생각했지만 사랑 또한 고통이다. 자신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토마시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지극한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는다.

 

"그녀는 뜨거운 물속에 누워 자신이 일생 동안 자신의 허약함을 빌미로 토마시를 이용해 먹었다고 생각했다. (중략) 그녀는 지금 그때와 똑같은 이상한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480~4쪽)

 

2) 토마시 : 사랑은 지켜야 하는 숭고한 가치이지만 쾌락 또한 중요한 삶의 의미다. 사랑과 쾌락 속에서 평생을 살다가 모든 것을 잃고도 행복해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는다.

 

3) 프란츠 : 사랑을 하나의 의무처럼 이행하다가 선물받은 쾌락 속에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잘못된 사랑 때문에 죽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으로 위로받지 못한다. 사랑을 모르는 인간의 당연한 최후가 아닐까.

 

"그는 동그랗고 커다란 안경을 낀 (중략) 여학생과의 생활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깨달았다. (중략) 그는 무한한 증오심에 찬 눈길로 마리 클로드를 바라보며 그녀를 외면하기 위해 벽 쪽으로 돌아누우려고 했다. 그러나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429~430쪽)

 

사비나 : 스스로를 사랑하고, 사랑조차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사랑한다. 파르메니데스가 이야기한 좋은 것으로서의 가벼운 사랑을 했다.

 

"그녀는 자기에게 참을성이 없었던 것을 후회했다. 함께 더 오래 있었더라면 그들은 조금씩 그들이 사용했던 단어들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어휘는 너무도 수줍은 연인들처럼 천천히 수줍게 가까워지고, 두 사람 각각의 음악도 상대편의 음악 속에 녹아들 수 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이제 너무 늦었다." (195쪽)

 

3. 그들의 정치활동 : 획일화된 이념에 반대하고 실천을 지향하는 힘든 정치 활동을 했다. 

 

1) 사비나 : 획일화된 이념 또는 편협한 이데올로기가 그녀의 적이었고, 그들과 싸우기보다는 그들에게 분노하고 무시해버렸다.

 

"그녀는 고통 받았고 불의에 대항해서 싸웠으며 고문받는 조국을 버려야만 했으나 투쟁을 계속한다고 했다. (중략) 공산주의가 현대 예술을 박해하는 것이 사실 아닌가요? 그녀는 격분해서 대답했다. "나의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키치예요!" (395쪽)

 

2) 프란츠 :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 진정한 정치활동이라고 생각했다. 그것 역시 의무감이었고, 진정한 즐거움은 아니었다. 진정한 사랑을 깨닫자 정치활동의 의미는 사라져 버린다.

 

"프란츠가 미치도록 좋아했던 대장정이라는 개념은 모든 시대와 모든 성향의 좌익 인사들을 하나로 묶어 주었던 정치적 키치였다. 대장정이란 멋진 전진, 장정이 대장정이기 위해서 필요했던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어 우정, 평등, 정의, 행복을 향해 멀리 나아가는 노정이었다." (400쪽)

 

3) 테레지아 : 억압 속에서 해방된 사람으로서 정치활동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 한다. 순수한 동기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사진이 독재자에게 이용될 수 있다는 것에 경악한다.

 

"그녀는 카레닌과 함께 어두운 프라하 거리를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탱크를 찍었던 그날을 회상했다. 그들 모두가 얼마나 순진했던가, 모두가! 그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고 믿었는데 그러기는커녕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련 경찰을 위해 일했던 것이다." (218쪽)

 

4) 토마시 : 사랑과 쾌락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는 한 진지하게 참여한다. 자신의 가슴이 진정 원하는 정치활동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세상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 단호한 정치가다. 가벼운 존재도 무거운 정치가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당신의 무지 탓에 이 나라는 향후 몇 세기 동안 자유를 상실했는데 자신이 결백하다고 소리칠 수 있나요? 자, 당신 주위를 돌아보셨나요? 참담함을 느끼지 않나요? 당신에겐 그것을 돌아볼 눈이 없는지도 모르죠! 아직도 눈이 남아 있다면 그것을 뽑아 버리고 테베를 떠나시오! (중략) 지구가 폭탄을 맞아 뒤흔들릴 수 도 있고, 조국이 매일 새로운 침략자에게 약탈당하고, 그가 사는 거리의 모든 주민이 사형장으로 끌려간다 해도 차마 내놓고 고백할 순 없겠지만 이보다는 훨씬 쉽게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테레자의 단 하나의 꿈이 불러일으킨 슬픔은 견딜 수 없었다." (277 ~352쪽)

 

 

나는 나라는 의식의 틀 속에서 세계와 나를 이해한다. 끊임없이 틀밖으로 나가려고 노력하기는 하지만, 원하는 만큼 빠져나가지 못한다.

 

내 생각에는, 영혼과 육체가 하나라는 사실은 사랑하면서 배가 고파도 결코 부정될 수 없다. 환상이 깨지는 것이 아니다. 뇌는 뇌대로 생명에 충실한 운동을 하는 것이고, 창자는 창자대로 생존 반응을 하는 것이다. 현실 세계를 떠난 마음을 만들어내는 것을 즐기는 나의 뇌가, 숭고하고 완전무결한 무엇을 자꾸 만들어내는데 노련해져서, 사랑을 신의 지위에 슬쩍 올려놓았다. 사랑이 신이라면 얼마나 좋은가. 사랑의 신.

 

"이제는 영혼이란 뇌의 피질부 활동에 불과하다는 것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영혼과 육체의 이원성은 과학 전문용어에 가렸고 오늘날에는 그저 싱거운 웃음을 자아내는, 시대에 뒤떨어진 편견에 불과하다. 그러나 누군가를 미친 듯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창자가 내는 꾸르륵 소리를 한번 듣기만 한다면, 영혼과 육체의 단일성, 과학 시대의 서정적 환상은 단번에 깨지고 말 것이다." (65쪽)

 

나는 경험과 지식을 통해 주관이라는 편견을 갖게 된다. 맞이하는 모든 순간에, 행동이 앞서거나 생각이 앞서거나 관계없이, 주관이라는 편견은 작동한다. 모아놓고 보면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처럼 생명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진실하다면. 

 

"인간의 삶은 마치 악보처럼 구성된다. 미적 감각에 의해 인도된 인간은 우연한 사건(베토벤의 음악 등)을 인생의 악보에 각인될 하나의 테마로 변형한다. 그리고 작곡가가 소나타의 테마를 다루듯 그것을 반복하고,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것이다. (중략) 인간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조차 무심결에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작곡한다."(85쪽)

 

사랑을 찾아 헤매고, 집착하는 병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것일까. 쉽게 사랑하고 쉽게 이별하는 이야기를 읽고 있으니, 사람 관계와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이렇게도 쉽게 변할 수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그래도 사비나가 정신을 차렸는지, 토마시와 테레지의 소식을 듣고 몽파르나스 묘지를 걸으며 이런 생각을 한다.  참된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처음 느꼈던 사랑의 느낌이, 거짓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