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을 침략자인 독일 병사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기로 "죄 없는 적" 또는 "희망을 잃어버린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지금 돌아간다면 우리는 지치고, 붕괴하고, 다 소진되어, 뿌리도 잃어버리고, 희망도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앞길을 찾아 헤쳐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는 1898년 독일의 오스나브뤼크에서 태어났다. 가톨릭계 사범 대학을 다니다가 열여덟에 징집되어 서부 전선에 배치되었다. 그는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고 훈장을 받고 제대하였다.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사직한 뒤 세일즈맨, 사서, 피아노 교사, 연극 평론가, 광고 카피라이터, 스포츠 잡지 편집자 등을 전전하다가 1929년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대성공을 거두고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반전사상을 명확히 한 레마르크는 점차 세력을 키워 나가던 나치와 잦은 충돌을 일으켰고, 1933년 나치가 집권하면서 그의 책은 공개적으로 불태워졌다. 결국 스위스로 망명했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직전 미국으로 건너갔다.
충격을 받은 장면_장교 위안소가 설치되어 있었고, 접대부들은 몸을 깨끗이 하고 접대를 해야 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프고 단전이 뜨끈해진다. 참호 속의 병사들처럼 두렵고, 슬프다. 참호 속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병사들에게는, 그리운 것도 없고, 미래도 없고, 미래를 만들 희망도 없다. 오직 "죄 없는 적이, 우리의 적이다."
“우리들의 광적인 분노는 극에 달한다. 우리는 더 이상 무력하게 단두대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적에게 보복하기 위해 파괴와 살인을 저지르지 않을 수 없다. (중략) 아무 생각도 없지만 미친 듯이 사납게 격분해서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 저쪽에는 우리의 불구대천 원수가 있으며, 그들의 총포와 수류탄은 우리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섬멸하지 않으면 우리가 섬멸당하고 만다!" (37%)
상식과 도덕, 보편타당한 원칙으로 사회는 운영된다. 아니다. 사회는 개개인의 특수한 지식과 윤리, 나름의 원칙으로 운영된다. 상식과 도덕, 보편타당한 원칙은, 개인들에게는 불편하다. 매우 불편하기에 지켜지기 어렵다. 그게 인간이고,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다. 그것이 현실이다. 받아들여야 한다.
모두가 모두에게 절대로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특수하고 특별한 자기의 세계를 구축하고 살아간다. 그렇게 사는 것이 편안하다.
그러면 법과 도덕은 무엇인가. 합의한 것처럼 대충 만들어 놓은 것이다. 개인들은, 공동체가 감시하지 않으면, 지키지 않으려 한다. 법과 도덕은, 끊임없이 변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상식과 도덕, 보편타당한 원칙, 법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북극성 polaris이나 남십자성 the suthern cross처럼 한 자리에 있지는 못하지만, 북극성 근방에 위치해 있어서 동료로서의 인간들이, 우리 사회가 심하게 길을 잃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영원불멸의 진리도 너와 내가 모두 동의하고 공감하는, "완전한 진리"가 아니다.
"나는 혼자 있는 게 제일 마음 편하다. (중략)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저렇게 생각한다. 이들의 얘기는 또한 늘 자신의 생활과 관련되는 말로 귀착되고 만다. 나도 전에는 분명 이와 꼭 마찬가지로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과의 연결점을 더는 찾을 수 없다. 이들은 나에게 너무 많은 말을 한다. 이들에게는 걱정, 목표, 소망이 있다. 나는 이러한 것들을 그들과 똑같이 파악할 수 없다. 때때로 나는 그들 중의 한 명과 작은 음식점에 앉아, 이렇게 조용히 앉아 있는 게 나의 유일한 낙임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려고 한다. 그들은 물론 내 말을 이해하고, 인정해 주며, 그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단지 말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러한 것이다. 이들은 내 말에 공감하지만 늘 절반밖에 공감하지 않는다. 이들의 나머지 절반은 생각이 다른 데 가 있다. 이들의 생각이 이렇게 분산되어 있으니, 아무도 온몸으로 나의 말에 공감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니 나 자신도 나의 의견을 그대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55%)
“세상에는 칸토레크 같은 사람이 얼마든지 많이 있다. 이들은 모두 자신에게 편리한 방식으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파멸을 맞게 된다. (중략) 때때로 우리는 이들을 조롱하기도 했고, 이들을 속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은 이들의 말을 믿고 있었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권위라는 개념은 우리 마음속에서 더 깊은 통찰 및 인간적인 지식과 결부되어 있었다. (중략) 그들이 아직도 글을 쓰고 떠벌리는 동안 우리는 야전 병원과 죽어 가는 동료들을 보았다. 이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이 최고라고 지껄이는 동안 우리는 이미 죽음에 대한 공포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략) 우리는 어느새 노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5~7%)
전쟁을 어떻게 방지하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을까. 인류 사회의 평화가 계속해서 확대된 것을 보면,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믿고 계속 노력해 나가면 평화는 확대되고 정착될 수 있다.
첫째, 증오와 폭력을 배제하는 교육을 해 왔다.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성인 교육에 보다 확대 집중해야 한다. 교육의 내용은, 민족, 종교, 영토를 대하는 열린 자세다. 모든 인류는 아프리카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으로서 단일민족이다. 모든 종교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위로받기 위한 인류 공통의 자산이다. 국가와 국민은 지구라는 영토 위에서 함께 산다.
둘째,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체제를 만들어 가야 한다. 시민의 인권을 존중하는 정치 체제가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경제 체제를 만들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는 경제가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 모든 나라는 자위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으로 군사력 중립을 지향하고, 지구방위군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모든 문화를 존중하는 문화상대주의를 받아들이고, 인간의 자유를 존중해야 문화가 융성하여 평화를 정착할 수 있다.
인류가 이룩한 성과를 바탕으로 지구가 우리의 생존을 허락하는 그날까지 끊임없는 교육과 노력으로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