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서재

거미여인의 키스_마누엘 푸익_220314 el cuatroce de marzo_четырнадцать Март понедельник

마르케스 이후 최고의 문제작이고, 영화 뮤지컬 연극으로까지 만들어진 소설이라는데, 도무지 건질만한 대사가 하나도 없다. 주)에서 동성애 문제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조차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대체 뭘까. 

 

혁명가와 게이를 한 감방에서 살게 하여 혁명가들의 정보를 빼내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몰리나는 사랑 이외에 아무 것도 알고 싶어하지 않고, 발렌틴은 어떻게든 그를 이용해서 행동하려 한다. 게이도 사람이니 병든 어머니를 모시려는 효심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한다. 혁명가는 공동체에 헌신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며, 자유를 얻으라고 한다. 게이는 책임과 헌신이 자신의 삶이 아니라고 회의한다. 

 

넥슨의 김정주가 하와이에서 죽었다. 수조원의 재산을 남기고. 어린이 병원을 지어 아픈 아이가 없게 하려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그와, 친구인 진경준 검사장에게 120억원의 현금을 아낌없이 지원해서 사업의 편의를 도모한 그는, 같은 사람이다. 대법원에서 무죄가 났다고 하니 현금은 뇌물이 아닌 것으로 된 모양이다. 사실일까. 판검사들의 카르텔이 만들어낸 무죄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남지만, 김정주가 대법원 판결 이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으니 믿을 수밖에 없다. 김정주는 넥슨이라는 회사를 남겼고, 그는 회사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기를 원하지 않았다. 과연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게이 몰리나는 무엇을 하려했지만 아무 것도 남기지 못했고, 김정주는 회사와 어린이병원과 엄청난 돈을 남겼다. 몰리나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사랑을 찾다가 불행하게 죽었고, 김정주는 많은 것을 남기고도 불행해서 죽었다. 

 

"내가 평생 가장 원했던 것은 엄마를 돌보기 위해 이곳을 나가는 것이었어. 그래서 어떤 희생도 감수했어. 내 일은 모두 다 미루었어. (중략) 넌 참 훌륭한 놈이야. 네 자신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니 말이야. 그런 네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돼. (중략) 그럼 나한테는 항상 아무것도 남지 않잖아.... 인생을 살면서 내 것은 하나도 남지 않는다는 것이 정말로 공평하느냐는 말이야. (중략) 넌 그 책임을 받아들여야만 되고. (중략) 엄마는 자기의 삶을 살았어. (중략) 내 삶은 언제부터 시작하지? 언제가 되어야 내가 내 것을 만질 수 있고, 내 것을 가질 수 있지?" (334~5쪽)

 

소설이 끝나가니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분명히 한다. 아무리 길고 멋있는 소설도 결론은 어차피 한 줄이다. 온통 허접한 이야기들로 가득해도, 싸구려 영화를 계속 틀어대어도, 이야기의 결론은 멋지고 소중하다. 굳이 이 소설 전부를 읽어야 할지를 묻는다면 그러지말고 마지막 100쪽 정도만 읽으라고 말할 것이다. 현실을 잘 받아들여야 한다.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뿐이고, 나머지 모든 현실은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 고통을 이겨내며 즐겁게.

 

"사람의 일생은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지만, 모두 일시적인 것이야. 영원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어. (중략) 우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돼. 좋은 일이 일어나면 오래 지속되지 않더라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돼.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342쪽)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당황스러웠다. 왜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아르헨티나의 긴장된 정치상황, 성소수자의 아픔, 감옥에 갇힌 혁명가의 두려움, 사랑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 등등. 내 머릿속은 온통 편견으로 가득차 있는 것일까.  단정할 수 없다.

 

일주일의 시간이 흐르고 띄엄띄엄 다시 읽는다. 그래도 되는 소설이다. 정리되지 않은 꿈의 묘사는 훨씬 사실처럼 느껴진다. 현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소설의 주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발렌틴이 실제로 이렇게 꿈을 꾸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훌륭하다.

 

주)에서 프로이트가 제기한 쓸만한 내용이 나온다. 이번 대선 결과에서 보듯이, 상식과 도덕이 중심이 되는 사회보다는 개인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회를 사람들은 선호한다. 일반 상황 보다는 특수한 상황 즉, 개인의 상황을 더 선호한다. 신들이 보편 타당한 것을 끊임없이 가르치고 있지만, 사람들은 개인의 죄 사함이 더욱 중요하다. 죄를 짓지 않고는 개인의 특수한 삶은 유지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세계 1위의 자살율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도덕과 상식을 추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는 분명히 도덕과 상식을 추구하라고 했는데, 가정과 사회는 어떤 측면에서 보더다도 개인의 특수한 사정만을 지향한다. 돈과 권력와 외모와 행복. 현실과 사상의 괴리는 삶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그것이 세계 1등의 자살율을 만들어낸다.

 

사피엔스는 도덕과 상식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것이 야만스러운 진실이다. 그러나 사피엔스의 영속을 위해서는 보편타당한 도덕과 상식을 추구해야 한다. 그래서 계몽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가정과 학교는, 개인의 특수한 욕망을 실현하되 보편타당한 사고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지 않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런 현실을 만들어야 자살율도 낮아지고, 문화와 경제가 풍요로운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돈을 벌되 10억 정도만 벌면 되고, 돈을 쓰되 나와 주변을 위해 써라. 즐거움은 노예를 부리는 것에 있지 않고, 스스로 일하며 공부하며 노는 것에 있다. 이런 것들을 가르쳐야 한다.

 

"프로이트의 후계자들은 인류 역사를 통해 개인이 자기 자신을 억제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것을 통해 각 시대의 사회적 요구에 적응하기 위해 받는 고통에 대해 매우 큰 관심을 보였다. 그것은 본능적인 충동요인들을 억누르지 않고는 사회규범을 준수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합법적으로 결혼하는 부부라는 제도가 한 사회가 제시하는 이상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모든 사람의 이상이 될 수는 없다."(175쪽)

 

류민의 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