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엉뚱한 짓을 하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생떽쥐베리의 1931년작 '야간비행'을 빌려왔는데, 한영본이다. 갑자기 번역을 하고 싶어졌다. 재미있는 문장을 하나 찾아서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보자.
"the ground is slow to yield its sunset gold" 대지는 황금빛 석양에 물들어 움직일 줄 모른다.(7쪽)
시간을 내지 못해서 책을 도서관에 반납했다.
오랜 전부터 읽고 싶었던 소설이다. 야간비행. 적막한 가운데 홀로 깨어 세상을 이해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한 생명의 소리없는 사멸에 대한 이야기였다.
앙드레 지드는 '야간비행'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그 숭고함이다. 우리는 모두 인간의 나약함이나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 타락과 같은 것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현대문학은 이를 고발하는 데에만 열중해 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바로 의지의 순전한 힘으로 획득할 수 있는 자기 초월이다." (2%)
모든 생명은 각자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살아간다. 단순한 사건에 대해서도 모두가 합의에 도달할 수 없으니, 복잡한 사건들은 더더욱 자기가 받아들이고 싶은데로 이해한다. 의견이 다르면, 나만을 옹호한다.
앙드레 지드가 지적하고, 생떽쥐페리 Saint-Exupéry가 소설에서 말하고 있는 것도 그중 하나다. 생명과 용기와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자기 희생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내어 도전하는 사람들로 인해 현재와는 다른 미래가 만들어진다. 희생을 통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하다. 이런 숭고한 희생에 대해서 대부분 다른 생각을 한다. 만용을 부리지 말라. 생명을 귀하게 여겨라. 사랑하라. 일상을 소중히 여겨라.
생명들이 각각 자기가 생각한 대로 "자기가 행동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자기의 생각을 다른 생명의 행동으로 강요하는 일이 벌어진다. 곤란하다. 심지어는 자신이 확신하지 못하는 일조차도 강요한다. 돈과 규칙을 무기로, 의미와 용기와 명예까지 들먹이면서. 정말 곤란하다. 각 생명들에게 스스로 생각해서 행동하게 해야 한다.
"비행기가 도착한다 해도, 그것이 전쟁을 종결짓고 행복한 평화의 시대를 여는 그러한 승리는 결코 아닐 것이다. (중략) 항상 멀리했던 부드러운 것들의 무리가 우수 어린 속삭임과 함께 그에게 다가왔다. (중략) 살면서 사랑을 많이 해봤나?"(7%)
스스로 생각하는 생명들도, 강요를 받으면 용기와 의무의 덫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다. 강요받지 않아도 용기를 내려고 한다. 불안하지만, 희생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낮은 확률과 의무라는 것이 나를 옭아맨다. 나와 가족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 결국 용기를 내다가 많은 생명들이 희생되었고, 살아남은 생명들은 새로운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나는 언제나 살아남은 쪽에 서 있고 싶다. 펠르랭은 고귀한 것이 아니라, 희생을 두려워하면서 용기를 내고 있다. 현명하다면 멈추고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펠르랭은 빛 아래 언뜻 보이는 세계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며, 속된 찬사를 지독한 경멸로 내칠 줄 아는 고귀함을 지녔다." (10%)
그런데도 자신의 생각으로 타인의 행동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들은 생존하면서 명령한다. 고뇌하면서 강요한다. 나라면, 고뇌하며 생존하는 자의 강요나 명령은 따르지 않을 것이다. 생명은 모두가 소중하다. 생명을 경시하는 것은 야만의 잔재다. 인간의 탄생부터 현재까지도 인간은 야만의 시기에 살고 있다. 조금씩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면서. 야간비행의 목적은, 비행기의 야간 수송 경쟁력을 높이는데 있다. 생명을 걸만한 일이 아닌데, 누군가에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명을 강요하는 것은, 야만스런 행동이다.
"늦게 이륙하는 사람에게는 모두 정근 수당을 주지 마시오.”라고 어느 날 리비에르는 말했다.
“불가항력의 경우에도 말입니까? 안개가 낄 때에도요?”
“안개가 낄 때에도.”
(중략) 그에게 인간이란 반죽해야 할 새 밀랍이었다. 그 재료에 영혼을 불어넣고 의지를 만들어주어야 했다. 이런 엄격함으로 그들을 통제하려는 게 아니라 그들을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생각이었다. (중략) ‘저들을 강건한 삶으로 이끌어야 해. 고통도 기쁨도 따르지만 오직 삶만이 가장 중요한 그런 삶으로 말이야.’ ” (11%)
일은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다. 생명을 유지해서 일 이외의 가치있는 행위, 사랑과 일상을 즐기려고 한다. 일은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그런데도 일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착각한다. 일벌들은 침입한 말벌에게 달려듦으로써 벌통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 속에 파묻혀 지내다가 말벌에 의해 의미있게 희생되는 일벌들과 같은 생명들도 존재한다. 그들은 이해한다. 다만, 너의 생각을 나에게 강요하지는 말아다오.
"사랑을 얼씬도 못하게 하는 저 추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일세…….”라고 말했다. 르루가 지닌 훌륭한 모든 점은 아마도 평생 일에만 매달리게 한 그 못생긴 외모 덕분이라는 것이었다. (15%)
사건이 복잡하니 책임 규명은 힘들다. 아무에게도 책임을 묻지 못하겠다면, 자기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리비에르는 파비앵의 실종 이후, 고뇌하면서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안전한 자기 일을 한다. 그게 세상이다.
"책임이란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니다. 그건 마치 어렴풋한 힘과 같아서 모든 이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결코 아무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만약 내가 아주 공정하다면 야간 비행은 매번 위험한 고비를 맞게 되리라. (중략) '내가 옳은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어. 나는 인생이나 정의, 슬픔의 정확한 가치 따윈 몰라. 한 사람의 기쁨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떨리는 손의 가치도, 연민도, 부드러움도……."(20~22%)
인간의 도전에 대한 숭고한 이야기이면서, 인간이 '의미의 도구'로 전락하는 자연스런 과정을 잘 보여준다. 파비앵은 너무도 아름다운 광경을 폭풍 위에서 마지막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최후를 함께 할 만한 아름다움이 그곳에 있었다. 생명을 대신할 것은 없지만, 아름다움 속에서 최후를 맞이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생명을 값으로 따질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항상 무언가가 인간 생명의 값어치를 능가하는 양 행동하지요…… 그런데 그건 무엇일까요?" (33%)
긴장감에 떨면서 책을 읽는 내내 파비앵의 무사 귀환을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에게도 의미있는 일들이 있다. 생명을 심하게 해치지 않는 안전한 일들이다. 어차피 죽음은 오지만, 안전하게 맞이하고 싶다. 전쟁도 원자력도 기후변화도 독재도 경기후퇴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안전한 일들을 통해 맞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