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아름다운 한반도 여행

작품은 살아있는 모습과 이유에 대한 되물음이다_멋진 류인을 만나다_220209 el nueve de febrero _wectb февраль

연일 계속되는 걷기로 피곤했지만 잠을 잘 자서 8시부터 일어나 움직인다. 책상과 의자가 없어서 불편한 자세로 어제 두 시간, 오늘 한 시간을 작업했더니 목이 뻣뻣하다. 휴가를 와서 너무 돌아다니는 것이 아닐까. 움직이지 않으면 쉬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 가만히 있는 것은, 책을 읽거나 글을 읽는다는 것이고, 부천이든 음성이든 어느 곳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일단 여행을 온 이상 계속 움직여야 한다.

 

열 시에 호텔을 나서서 예울마루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7층 전시관으로 올라갔다. 동선이 매우 복잡하다.

 

입장료 천 원을 내고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한 번 보고, 다시 한 번 작품을 볼 정도로 멋있다. 한국의 로뎅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다. 류인 그 자체다.

 

 

작품명 '뢰 thunder'

 

벼락처럼 내리치는 사랑의 느낌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각도에서. 달리 표현하는 것이 예술의 특징이라면 류인의 이 다름은 예술 그 자체다. 전시회에 가서 많은 작품들을 볼 때 꼭 여러번 보는 작품이 두 서너개가 있다. 그런데, 유일하게 류인의 모든 작품들을 전시실을 뱅뱅 돌면서 여러 번 보았다.

 

 

56년생 류인은 화가와 작가 사이에서 태어나 좋은 감성과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병약했다. 그런데도 굳이 어려운 소조를 택한 이유가 우습다. 인간은 이런 우스운 인연들의 종합으로 만들어진다. 류인은 소조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직접 쓴 글들이 짧게 인용되어 있고, 작품명 만으로도 많은 이야기가 느껴진다.

 

간경화였는데도 술을 좋아했고, 70여개의 작품들을 만들어 낸 작업실에 걸린 도구들은 하나같이 묵직하여 짧은 인생을 더욱 재촉하였을 것이다. 인생은 짧으면 어떻고 길면 또 어떠랴. 작업실에 놓인 흙은 매우 차고 무겁다. 그러나 그에게 흙은, 싱그런 호흡이고 다정한 고향이었다. 흙에서 태어났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생명의 필연이고, 그것을 깨달았다면 흙과 하나가 되는 것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작품명 '윤의 변'

 

고달픈 삶은 고통스럽지만 달콤하다. 류인의 친구는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물구나무를 서서 생각을 했다고 한다. 류인은 친구의 말을 가슴에 담아 놓았다가  모든 작품에 반영했다고 여겨진다. 삶의 굴레는 어깨와 얼굴에 씌워져 있다. 그것에서 벗어나려면 몸부림쳐야 한다.  극한의 몸부림은 중력을 거꾸로 받을 때다.

 

견딜만하면 굴레를 쓰고 천천히 걸으면 된다. 그것은 노예의 길이다. 그러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굴레를 부숴버리면 안될 정도의 고통 속에 자신을 던지고, 달콤한 순간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류인은 영감이 떠오르면 연필로 기본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작업실 바닥에 놓고 작은 작품으로 구현해 보면서 수정하고 보완한다. 시안이 완성되면, 흙을 하나하나 붙여가면서 작품을 원하는 크기로 완성한다. 흙으로 완성된 작품은 틀을 만들어서 구리나 합성수지로 복제본을 만들어 판매한다.

 

류인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는 화가인 부인에 의해 합성수지에 색이 입혀진다고 한다. 전시된 대부분의 작품이 합성수지인데, 마치 금속으로 만들어진 듯하다.

 

 

류인은 어머니가 쓴 희곡의 초안을 읽고 오탈자를 찾거나 수정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글이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어서 무엇을 말하는지가 분명하다.

 

작품명 '급행열차'

 

1991년의 작품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 길 위에 나섰다가 목숨을 버리게 되는 안타까운 시대를 표현한 거대한 작품이다. 무려 11명의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던 시대에 대해, 류인은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6월 항쟁 이후에도 평화와 민주주의는 조금만 실현되고, 억압은 여전히 컸다. 제발 초조하게 무릉도원을 꿈꾸지 말고, 천천히 지치지 말고 한 걸음씩 나아가자.

 

희생을 잊지 말되, 더 이상의 희생은 있어서도 안된다.

 

잊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그렇게 살았던 이유가 무엇이고, 지금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를. 제발 ~

 

 

멋진 작품들을 보고 났더니 배가 고프다. 돌게장과 생선구이로 식사를 했다. 가성비는 떨어졌지만 무난하다. 맛 없고 비싼 음식만이 아니라면 괜찮다. 여행은, 고달픈 시간이다.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차를 한 잔 사서 들고 부천까지 계속 달렸다. 천재는 뒷자리에서 내내 열심히 일을 한다. 화장실 때문에 단 10분만 쉬고 4시간만에 도착했다. 길고 아름다운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