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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아름다운 한반도 여행

음성에서 부천, 부천에서 동탄을 거쳐 무주 덕유산으로_220205

박구용 교수가 질문을 던진다. 반대와 모순의 차이를 아냐고. 당연히 모른다.

 

A와 ~A(A가 아닌 것)은 반대다. 참으로 묘한 것은, 반대인 것은 다른 것으로 의외로 폭이 넓다. 공존이 가능하고, 다름을 즐길 수 있다. 사과도 있고, 사과가 아닌 배와 감과 수박과 토마토도 있고, 아니더라도 가치가 있기 때문에 공존이 가능하다. 인간 세상에 적용해 보면, 다른 의견은 공존이 가능하고, 다름을 즐길 수 있다.

 

모순은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과정이고, 발전을 위한 극복의 과정이다. 매우 멋진 말이고, 역사가 그렇게 발전해 왔는데, 모순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되어 버린다. 세계 최강의 창과 방패가 부딪히게 되면은, 어느 한쪽은 거짓이 되고 만다. 모순은 극복이다.

 

그렇다면, 세상이 모순덩어리라는 말은 무서운 말이 되고 만다. 자유 민주주의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멋지다. 지금 시대에 자유 민주주의를 부정하면, 제대로 된 사람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유 민주주의는 독재와 같은 배를 탈 수 없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찬양하면서 독재와 파시즘과 전체주의를 어떻게 찬양할 수 있겠는가? 모순이다. 독재자를 찬양하는 사람은 자유 민주주의를 배척해야 하고, 자유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독재자의 동상을 쓰러뜨러야 한다. 북한과 중국의 미래를 보라. 마오와 김일성, 김정일의 동상은 틀림없이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질 것이다.

 

그런 모순된 자아 말고, 맑은 자아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제주도를 가면 이동시간도 줄고 아름다운 풍광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비행기도 왕복 6만원이면 된다. 렌트카를 멋진 것을 빌리면 50만원이다.

 

한파주의보가 몰아치고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다. 여행지를 여수로 바꿨다. 74만원의 기본 여행비를 들여 제주도를 가기에 날이 너무 춥다. 그리하여 다르지만 병존이 가능한, 모순이 없는 여행, 여수 여행을 하기로 했다.

 

어머니, 동생과 떡국으로 아침을 먹고 부천으로 갔다. 긴 밤을 오락과 공부로 지새운 아이들은 잠자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비로소 휴가를 얻은 그리미는 몸 상태가 말이 아니다. 잠시 쉬었다가 병원에 들러 약을 받아들고 동탄으로 출발했다. 짐 싸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유튜브로 반전 평화의 기운을 얻으려 한 계획은 가족들의 반대로 무산되고, 열심히 달려 동탄의 시암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사람들이 그득하다가 하나 둘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뜬다. 쏨땀, 팟타이, 텃만꿍, 쌀국수, 북부지방 커리, 타이 아이스밀크티, 똠양꿍으로 1시간에 걸친 여행 첫 식사를 한다. 먹는 것에 연연하면 안되는데, 맛있는 것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쉬지 않고 달려서 2시간만에 무주군청에 도착했다. 백련사 쪽으로 가면서 숙소를 알아보기로 했다.

 

최북 미술관이 바로 앞이다. 숙소는 나중에 찾고 문 닫기 전에 미술관 구경을 먼저 하자.

멋지다.

최북의 오래된 그림은, 그의 강렬한 행동, 부당한 압력에 한쪽 눈을 찔러 버리고 마는 저항 정신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6인전이 멋지다.

 

특히, 무주구천동의 바다를 그린 그림은 완전히 반대의 공존을 보여준다. 놀랍다. 

바로 시상이 떠오른다.

 

무주의 바다

산을,
바다라 그렸으니 바다이고,

바다를,
산이라 그렸으니 산이다. 

산을 바다라 하고,
바다를  산이라 하는,

어처구니없는 기괴한 아집을 알겠다. 

산에서 바다를 보고
바다로부터 산을 얻는
고달픈 행자들의 맑은 눈으로.

 

무주의 바다 -

 

옛날 그림들도 눈길을 확 잡아끄는 그림들이 있지만 요즘 그림들은 훨씬 더 발전했다. 새로운 표현 기법이나 정교한 표현, 말하려고 하는 것을 드러내는 힘까지 현대 미술이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 많은 화가들, 충분한 지원, 경쟁과 협력, 소통 등 모든 것이 과거 화가들을 압도하고 있다. 새로운 시도들이 너무 과감해서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도 많지만 큰 흐름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아름답고 멋진 작품들이다. 여기는 무주라는 작은 시골이다.

 

김환태 문학관이 같이 만들어져 있다. 처음듣는 이름인데, 1941년에 "친일문학"을 할 수 없다며 절필선언을 하고, 무학여고 영어교사로 지내다가 1944년 해방을 보지 못하고 폐병으로 35살에 요절하였다. 서정주와 이광수야 더 심한 회유와 압박을 받았겠지만, 이런 분들이 계신 것을 보면 그들이 선택한 길은 민족을 배반하는 길이었다. 반성과 처벌없이 대한민국에서 존경까지 받는 이런 모순된 상황을 김환태는 저승에서 받아 들일 수 없다. 전부 나의 잘못이다. 다른 것은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지만 모순된 것은 어쩔 수 없이 척결해야 한다. 어정쩡한 태도로 임시정부 수립 이후 70여 년을 살아왔으니 모순과 다름이 무엇인지를 구분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 시간에 걸쳐 즐거운 감상을 끝내고, 백련사로 출발. 백련사는 개인 차량으로 오를 수 없다고 한다. 저녁으로 오리 바베큐를 사면서 주인장에게 문의한 결과다. 백련사까지는 2시간, 향적봉까지는 5시간으로 매우 멀다. 10시간을 걸을 수는 없다. 펑펑 쏟아지는 눈 덕분에 백련사 인근에서도 상고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주말에 술잔치를 하러 가신 주인장을 대신해서 펜션을 지키며 오리 고기에, 소주 맥주 막걸리를 마신다. 13만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방을 빌렸지만, 시설은 낡고, 이불은 제대로 빨려있지 않았다. 제일 깨끗한 이불들을 골라서 덮고, 침대를 붙여서 3명이 함께 잤다. 늘 하던 일이라 새롭지도 않은데, 할 때마다 새롭다.

 

눈이 내리고 바람은 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