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내린 눈은 길 위에 전혀 쌓이지 않았다. 엄청나게 불어대는 바람 때문이다. 어제 저녁에 가지고 온 들깨 수제비를 끓이고, 햇반 두 개로 참치김치볶음밥을 준비했다. 아침밥으로 든든하다.
물을 끓여서 다섯 개의 병에 넣었다. 세 개의 컵라면과 단백질 보충제를 배낭에 가득 넣고 등산로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산행이 끝날 때까지 눈이 계속 내려주면 얼마나 행복할까.
속으로는 향적봉 정상의 상고대를 그리며 산을 오른다. 내리는 눈과 내려서 쌓여져 있던 눈이 어사길에 가득한데, 상고대를 만들 침엽수가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거센 지난 밤에 전부 날려갔는지, 온도가 높아서인지는 알 수가 없다. 4년 전 어느 시점에서 산 아이젠을 꺼내어 신으니 행복하다. 집안에 쓸모없이 버려졌던 귀한 상품을 드디어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천재에게도 거금 3만원을 들여 아이젠을 하나 더 사주었으니 이제는 온가족이 설산 산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백련사까지는 주차장에서 6.2km로 완만한 오르막 오솔길이다. 길 옆으로는 구천동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멋져야 하는데 온통 얼어붙어 있다.
절에 다 오르니 눈이 더욱 쏟아지고 바람도 거세다. 향적봉에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절집 처마밑에서 컵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싶었지만 그리미의 반대로 발길을 돌려 하산하기로 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2시가 넘은 시간에도 향적봉을 향해 오른다. 왕복 3시간 이상을 생각해야 하는데, 입산통제를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눈 내리는 길이어도 안전한 모양이다.
배가 고프면 안되기에 내리는 눈을 맞으며 컵라면과 김밥을 먹기로 했다. 펄펄 끓는 물이 아니라 70도 정도의 물이라 컵라면을 충분히 익히지 못한다. 그래도 3개의 컵라면을 따뜻하게 마실 수 있었다. 아이들용 의자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10시 반부터 시작한 등반이 오후 3시가 되어 끝났다. 향적봉에 올라 상고대를 본다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소원대로 산행 내내 눈을 맞으며, 눈속에서 라면과 김밥을 먹었던 추억은 매우 진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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