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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아름다운 한반도 여행

업은 애기 3년 찾는다_함백산에서 대관령휴양림까지_211001~03

해발고도 713미터의 고한역에서 아들들을 기다렸다. 청량리역에서 오후 7시 10분에 출발하여 10시 30분에 도착한다. 탄가루의 검은 색이 떠오르지만 역사는 물론이고 주변도 모두 깨끗하다. 아무도 없는 빈 공간은 우리 차지인데, 보이지 않는 별을 찾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 날이 쌀쌀해서 두터운 가을 잠바를 입고, 아들들에게 입힐 옷도 준비했다. 객차 3량(?)만을 매단 무궁화호 열차가 거의 텅 빈 상태로 들어온다. 아들들이 열차안에서 손을 흔들고 그리미는 그런 아들들을 금방 발견한다. 핏줄이 당기는 모양이다. 

 

통밀과 천연발효효모를 이용한다는 동네 빵집 디셈버에 들러 두 번의 아침식사를 위해 고소한 빵을 샀다. 수도권을 쉽게 빠져 나오기 위해서 오후 2시 출발. 고한지역은 외딴 시골 동네라 먹을 것도 없고 길도 험할 것이라 예상하고, 제천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보기로 했다. 제천으로 가는 길은 전혀 밀리지 않는데, 부천으로 들어가는 길은 bumper to bumper. 끔찍한 상황이다. 한국 경제의 역동이 느껴지는 거대한 화물 트럭들의 물결이 흘러온다. 2시간 반만에 제천에 도착했다.

 

산행용 비상식량 오이 3개, 목살 900g, 상추와 겨자채, 쌈장, 소주 2병, 맥주 6캔, 생수 큰 것 2병, 김 한 봉지, 초코릿 2개, 과자 2봉지, 햇반과 라면, 스팸. 언제나 비슷한 것들이다. 장을 봐서 집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그랜다이저 내부는 이사짐으로 가득하다. 카드 한 장 달랑 들고 움직이는 가벼운 여행이 아니라 집을 옮겨가는 이사 여행이다. 코로나 상황이 우리의 여행 코드와 잘 맞아 떨어진다.

 

저녁은 국밥이나 사 가지고 가서 먹자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는데, 정육식당에서 우거지 갈비탕을 판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쇠고기도 사려고 했더니 700g에 13만원. 쇠고기는 포기하고 갈비탕 2인분을 포장해서 하이원 리조트에 들어갔다. 6시 반에 도착했으니 집을 출발한지 4시간 반 만이다. 제천에서 장을 보느라 시간을 쓴 것 외에는 휴게소도 들르지 않았다. 좋은 진행이다.

 

리조트는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없다고 한다. 쇠고기나 삼겹살을 사지 않은 것이 전화위복. 목살 3장을 굽고, 나머지 목살은 물에 넣어 삶았다. 햇반 두 개를 덥혀서 예쁜 그릇에 옮겨 담고 그리미와 조촐한 저녁 식사. 갈비탕에 갈비는 없고 우거지만 그득했으나 김치를 사오지 않은 것을 보완해주는 괜찮은 선택이었다. 구운 목살은 귀해서 귀한 맛이었다. 편안하다. 9만원에 깨끗하고 넓은 집을 쓸 수 있는 것은 하이원리조트의 장점이다. 아이들 방에 침대가 없는 것이 흠이다. 요를 두 장씩 깔아서 편안한 잠자리가 되도록 준비해 두었다.

 

창밖으로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두 시간 동안 무엇을 할까 하다가 별이 보이지 않아서 그냥 공부나 하며 쉬기로 했다. 그리미는 침대 위에서 하와이로 사진 결혼을 한 여인의 인생 도전기를 읽고, 나는 박문호의 강의를 듣는다. 2시간이 어떻게 흘러 갔는지 모르게 흘렀다.

 

아이들과 함께 숙소에 도착하여 삶은 목살을 안주로 소주를 마셨다. 오랜만이다. 기차여행은 매우 길고 지루했다고 한다. 3시간이 넘는데, 술을 마시거나 이야기를 할 수가 없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많이 마셨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2일(토). 푹 자고 9시 반에 우거지 갈비탕에 밥, 우유에 시리얼로 아침을 먹었다. 머리가 멍하다. 따뜻한 물 2병과 시원한 물 3병을 오이를 비롯한 온갖 비상식량을 두 개의 가방에 챙겨넣고 함백산 만항재로 간다. 고한에서 20분이 걸리고 등산로 입구에 무료 주차장이 있다. 아들들은 처음 산 등산화를 신었다. 스틱은 거부해서 그냥 놔두기로 했다. 그랜다이저로 해발 1,300미터까지 올라왔으니 대한민국에서 여섯 번 째로 높은 산이더라도 함백산 정상이 그리 멀지 않으리라.

 

새벽까지 비가 내려 날이 추웠다. 다들 두터운 가을 옷으로 중무장을 하고 길을 나섰는데, 쉽게 열이 오르지 않는다. 길은 편안하고 포근했다. 너무 편안해서 소래산 오르는 것보다 쉬웠다. 괜히 멀리까지 온 것이 아닐까. 쑥부쟁이와 투구꽃이 간간이 눈을 즐겁게 한다. 이곳은 완연히 가을이다. 지난 봄과 여름의 날씨가 좋지 않았서인지 단풍이 곱지 않다. 그래도 멀리 바라보이는 색은 예쁘다.

 

함백산 정상이 바라보이는 곳부터의 오르막 계단은 쉽지 않았다. 햇볕을 가려주던 키 큰 나무들은 사라지고 햇살이 그대로 얼굴로 쏟아진다. 돌계단은 거칠게 설치되어 있어서 발걸음이 긴장된다. 서서 쉴 곳도 없어서 숨이 턱에 차오른다. 계단 보수를 위해 자재를 싫어 나르는 헬기의 굉음이 처음에는 신기했다가 거리가 가까워지자 고통스럽다. 게다가 매우 불안해 보이는 헬기의 모습이 내 머리 위로 추락할 것 같기도 하다. 세 번을 왔다갔다 하며 짐을 나르던 헬기가 사라지자 고산지대의 평온이 찾아온다. 참 아름답다.

 

 

 

 

예술작품이 자연 속에 어울려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보기에 좋았다. 함백산 정상만을 구경하는 즐거움도 매우 커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등산화나 구두에 구애됨이 없이,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20분 정도의 숨가쁜 상황만 극복하면 된다.

 

바람이 시원하다. 찬 물이 생각나지 않는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백두대간의 탁 트인 전망을 본다. 끝없이 이어진 풍력발전소의 바람개비들도 자연의 일부처럼 그럴싸하다. 송전선과 풍력발전이 없으면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석유와 석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개발되고 발전에 쓰이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는 곳에서 생각을 하게 하는 일이니 신재생 에너지가 대안이어야 한다. 전기 사용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줄이기도 매우 힘들다.

 

3시간이 조금 안되어서 정상에 올랐다. 아빠와 함께 정상 정복에 성공한 7살 여자 아이의 자랑스런 얼굴도 사랑스럽고, 70대 노부부의 다정하고 건강한 모습과 50대 부부의 원수끼리의 동행이라는 표현도 좋았다.

 

최고의 경치를 즐기며 뜨거운 차와 차가운 바나나 우유, 빵과 오이, 참깨 스틱과 초콜릿으로 점심을 먹었다. 추웠다. 다음 일정을 논의했다. 70대 노부부께서 50대 부부가 걸어온 두문동재까지의 산길 상황을 묻고 나와 함께 의논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만일 두문동재에서 만항재까지 택시를 탈 수만 있다면 굳이 온 길을 되돌아 갈 필요없이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70대 노부부는 50대 부부와 함께 두문동재로 출발했다. 한 시간 정도 짧은 등산을 해서 아직 체력이 충분하다고 하신다.

 

 

우리도 두문동재로 가기로 했다. 만항재에서 함백산까지 3km를 3시간 만에 걸었으니 정상에서 두문동재까지 5.6km는 3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내리막이니까.

 

아름답고 편안한 산길이 계속 이어진다. 숲 사이로 보이는 함백산 정상 주변에는 빨갛게 꽃이 피어있듯 아름답게 물들어 있었다. 이런 길을 걷게 되다니. 길에 취하고 행복한 기분에 빠져서 한 시간도 안 되어 앞서가던 70대 노부부와 만났다. 잘 가고 계신다. 발걸음을 맞추기 어려우니 천천히 오시라고 했다.

 

두 분과 헤어지자 마자 바로 오르막길이다. 다리가 퍽퍽해진다. 경치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삶은 팍팍하다. 그리미를 앞세워야 했지만 길을 찾아야 하니 내가 앞장을 섰다. 이제 걷는 사람은 우리 뿐이다. 점심으로 먹은 차가운 초코 우유 때문에 배가 살살 아파오는데, 오르막길을 오르며 힘을 쓰니 10분 정도 후에 편안해 진다. 역시 내 몸은 땀을 흘려야 사는 몸이다.

 

커다란 봉우리 하나를 넘고 나니 어느덧 3시다. 90분을 걸었다. 다시 긴 봉우리 하나를 넘는다. 더 힘이 든다. 3시 반이 다. 내리막길에서 길이 사라져 버렸다. 낙엽이 떨어져서 인적이 드문 등산로를 지워 버렸다. 순간 당황했다. 모두에게 알리고 길을 찾자고 했다.

 

주변에는 어떤 표지도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잃었던 순간은 불과 2, 3분이었지만 매우 긴장되었다. 비상 식량은 충분했지만 불을 피울 라이터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이터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것인데. 그래도 가족 모두 함께 하고 있으니 두려움이 크지는 않다.

 

내려오던 길을 다시 살피고 능선 쪽으로 5미터 정도를 올랐다. 길 같은 길을 발견했다. 그길을 따라 5분을 걸었더니 표지판이 나타난다. 후, 다행이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한 구간을 제외하고는 맥문동을 양쪽에 심어서 길 표시를 해 두고 있었다.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풀이니 등산로 표식으로는 금상첨화다.

 

잠깐이지만 길을 헤매고 났더니 뒤따라 오는 70대 노부부가 걱정이 된다. 잘 찾아서 오실 수 있을까. 가족이 함께 오르던 한 팀, 늦게 산을 오르는 50대 남자 한 명과 마주쳤다. 정상까지 가기는 어렵지만 일단 올라가 본단다. 이분들을 만나면 노부부도 안심이 될 것이다. 날은 밝았지만 해가 기운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4시다.

 

다시 또 하나의 봉우리에서 50대 후반의 등산팀을 만났다. 정상을 거쳐 만항재까지 가려고 한단다. 우리가 꼬박 2시간반 을 내려온 길을 오르겠단다. 정상 주변의 경치가 매우 아름다우니 기대하며 가도 좋다고 했다. 이분들도 역시 노부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제 20분만 걸으면 된다.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내여 왔다. 4시 반에 두문동재 관리소에 도착했다. 관리소를 지키던 분이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내년 5월 초에 꼭 오라고 하시면서 자료도 나눠 주신다. 야생화가 천지에 가득하니 꼭 예약을 하고 오란다. 고한시내 택시 번호도 가르쳐 주셔서 택시를 부를 수 있었다. 정선의 택시조합은 카카오 택시를 사용하지 않기로 해서 앱으로는 택시를 부를 수 없었다.

 

시원시원한 60대 중반의 택시 기사님은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러워 하신다. 제반 비용을 제외하고 월평균 순수입이 500만원에 달해서 개인택시도 필요없고 건강하고 착실하게 운전만 해도 살 수 있는 곳이란다. 1세대 광부들은 학교가 부족해서 2부제 수업을 하던 이곳에서 진폐증으로 모두 돌아가셨다. 광부의 자녀들은 받은 보상금으로 몇 년 잘 지내다가 대부분 떠나고 이제 정선군 전체 인구가 4만 명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두문동재에서 만항재까지의 택시요금은 2만원이다. 왕복요금을 생각해서 5만원 정도를 책정했는데.

 

5시에 만항재를 출발해 5시 반 경에 태백 실비집에 도착했다. 가격이 오르기는 했으나 1인분 180g에 34,000원. 5인분을 먹었더니 배가 부르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걱정스러웠으나 우리 좌석은 제일 바깥쪽이어서 공기 소통이 잘 되는 곳이다. 거의 흰재가 된 연탄불로 쇠고기를 굽는데 절묘하게 타지 않는다. 천재가 부지런히 고기를 구워 우리를 대접했다. 오랜만에 맛있게 먹었다. 공기밥과 소면, 된장찌게, 소주까지 총액 18만 5천원. 일하시는 분들이 바쁜 상황에도 매우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평점 4.5를 주고, 잘 먹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앱 체크인을 했다. 방이 1층 밖에는 없다. 어차피 해가 진 뒤에 도착하니까 1층도 괜찮다. 

 

아니었다. 3시 경에 먼저 앱 체크인을 했어야 했다. 아이들 방에 트윈 베드가 있어야 하는데 어제와 같은 온돌방이다. 거실은 더 넓었지만 의미가 없었다. 프런트에 전화를 해서 항의를 했더니 원래 선착순으로 배정된다고 한다. 환불을 해 주거나 무료 업그레이드를 해 달라고 했더니, 추가 비용 5만원을 내거나 환불을 하라고 한다. 환불을 받았다. 25만원도 큰 맘 먹고 예약한 것인데.

 

다시  짐을 싸서 주차장으로 나왔다. 여기 어때와 구글 검색을 했더니 방이 별로 없다. 이 산골에, 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별로 없었는데, 저렇게 많은 호텔 중에 방이 없다니. 있는 방의 가격은 4, 50만원. 헐.

 

나는 아무래도 모텔 체질인 모양이다. 무료 발레파킹 서비스를 받고, 세면 도구는 물론이고 샤워용품도 완벽하게 준비된 방을  얻었다. 더블룸과 트윈룸, 방 두 개를 얻는데 든 비용은 단돈 10만원. 체크 아웃은 몇 시냐고 했더니 주인장은 무슨 소리인가 한다. 마침내 대답하기를, 내일 오후 3시까지만 방을 비워주면 된다고 한다. 마침 리모델링을 해서 담배 냄새도 안 나고 깨끗했다.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시원하게 소맥 한 잔을 마시며 즐거웠던 산행과 맛있었던 쇠고기 구이를 되새겼다. 당분간 쇠고기 생각은 나지 않겠단다. 좋아.

 

3일(일)의 일정은 어제 생각한 대로 만항재에서 운탄고도를 두 시간 타기로 했다. 디셈버의 빵과 에이스 크랙커로 아침을 먹고 역시 5병의 따뜻한 물과 시원한 물을 준비한 비상식량과 함께 정들었던 하이밸리를 떠났다. 어제와 같이 만항재 휴게소에 차를 주차해 놓았는데,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예정보다 늦은 9시 반에 도착해서 11시까지만 걷기로 했다. 

 

운탄고도는 탄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로로 넓직하다. 어제의 경치와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정선과 태백을 연결하는 편안한 길이다. 시간이 있었으면 더 멋진 경관들을 볼 수 있었겠지만 오늘은 시간이 없다. 11시에 점심을 먹고 동해역으로 가야 한다. 천재의 친구를 맞이하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만항재 동산의 편백나무 숲에서 10여 분 산책을 끝으로 함백산 산행 일정은 마무리 되었다. 알차게 보낸 시간이다.

 

점심은 정선의 유명한 곤드레 돌솥밥. 만항재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11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내부를 들여다 보니 만원이다. 불안하다. 다른 식당에 가서 먹을까를 고민하다가 백신도 모두 맞았으니 참고 먹기로 했다. 다행히 자리는 금방 났다. 1인분은 포장을 해 달라고 했더니 포장이 안된다고 해서 양해를 구하고 곤드레 돌솥밥 3인분을 주문해 넷이서 나눠 먹었다. 나는 모든 음식이 맛이 있어서 평점 4.3을 주고 잘 먹었다. 아들들은 빨간 소세지와 오뎅 볶음이 왠말이냐며 평점 3을 준다. 나물을 좋아하는 그리미는 평점 4를 주었다. 강원도 페이 4만원을 36,000원에 충전해서 39,000원을 계산했다.

 

동해까지는 1시간 20분. 2시에나 도착하겠다. 그리미가 아침에 세수를 하면서 안경을 찾는 이야기를 한다. 업은 애기 3년 찾은 격이었다. 20대 후반의 아들들은 처음 듣는 말이란다. 이런, 업은 애기 3년 찾는다는 속담을 모르다니. 아름다운 옛날 말들이 새로운 말들에 거침없이 밀려나 버린다.  

 

700미터의 고원 지대에서 순식간에 바다로 내려왔다. 바다는 약간 뿌옇고 날은 더웠다. 우리가 10분을 단축하고, 열차는 10분이 연착되어 절묘하게 동해역에서 만났다.

 

묵호 등대공원으로 가서 해파랑길을 걷는다. 묵호 등대 주변은 사람도 많고 더워서 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5년 전에 왔을 때는 벽화마을과 카페가 전부였는데, 재미있는 시설들을 많이 갖춰놓아서 가족들이 놀기에 아주 좋은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이런 식의 개발이면 묵호등대공원은 명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시원한 산에서 멋진 경치를 즐기며 놀던 사람들이다. 너무 덥고 너무 많은 사람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한 시간 동안 바닷길과 등대 공원을 걷다가 아이들을 시원한 카페에서 쉬게 하고 차를 가지로 둘이 걸었다. 시내에서 한 발자국만 벗어나도 숨쉬기에 좋았다. 동네 할머니들이, 사람들이 왜 저렇게 걸어만 다니는지 모르겠다며 뒷담화를 하신다. 담장 너머로 석류가 곱게 익어가고 있다.

 

강원도로 교환 근무를 하자는 아이디어를 그리미가 내었다. 정말 괜찮은 생각이다. 내년 또는 내후년에 시도해 보자. 이곳에서 은퇴를 하는 것이다. 멋지지 않나. 산과 바다, 그리고 들이 있다.

 

 

해파랑길을 하루 종일 걸으려던 계획은 취소하고, 대관령 옛길을 걷고 평창 무지개 송어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대관령으로 향하는 옛 도로로 한참 오르다가 대관령 휴양림 표지판을 봤다. 표지판을 따란 대관령 휴양림으로 들어갔다. 적송이 아름다웠다. 이곳에서 한 시간을 산책하고 났더니 어느 덧 6시가 넘었다.

 

평창 무지개 송어집에 회 1kg과 튀김 1kg을 주문하고 출발. 구비구비 대관령 옛 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하는 기분이 그만이다. 수많은 화물차와 자가용들이 뒤엉켰었던 도로는 이제 고요한 길이 되어 있었다. 정비도 잘 되어 있어서 오르기에도 좋았다. 경치를 구경하느라 느릿느릿 왔더니 7시다. 해가 다 져 버렸다. 예약을 해 두었는데,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앉아서 기다렸더니 금방 준비를 해 준다. 송어회는 기대 이상으로 맛이 있었는데 양이 적었고, 송어 튀김은 기대 이하였는데 양이 많았다. 더덕주와 오디주를 시켜서 아이들과 그리미가 먹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껴야 했다. 평점은 4.0. 무난하다. 다섯 명이 8만 5천원.

 

이제 마지막 하나만 남았다. 여관을 대실해서 샤워를 하고 쉬다가 교통 정체가 풀리는 저녁 10시에 출발하는 것. 여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무려 열 곳이 넘는 숙소에 전화를 했지만 2만원에 대실은 불가능 하단다. 보통 오후 5시 이전에는 가능하지만 저녁 시간대는 청소할 시간이 없어서 대실이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장평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마지막으로 여관 한곳을 방문해 거절을 당하고 이 프로그램은 폐기했다. 대신에 9시까지 30분만 쉬다가 출발하기로 했다. 나는 시트를 뒤로 눕히고 잠을 청하고 그리미는 책을 읽고, 우주신은 오락을 하고, 천재와 친구는 산책을 했다. 장평 영화관에서는 007 영화를 상영하는데 관람료는 단 5천원. 상영시간이 2시간 40분이라 포기했다.

 

9시 5분 출발. 예정 도착시간은 12시 18분. 네비가 시키는대로 착실히 따라서 집으로 달렸다. 놀랍게도 11시 40분에 도착했다. 휴게소도 한 번 들르지 않고 직통으로 왔다. 샤워와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찜질방이 제격인데 코로나 상황이라 쉽지 않다. 대체 프로그램이 떠오르지 않는다.

 

3박 4일 같은 2박 3일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사전 조사가 철저했는데도 현장에서 새로운 결정이 내려지면서 여행은 알 수 없는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멋진 경험들을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