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 코 앞까지 왔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8시까지 늦잠을 자고 커피와 빵, 오뚜기 누룽지로 아침을 먹고 간식과 음료수를 챙겨서 장수대 휴게소로 출발한다. 곳곳에 무단 주차된 차들이 너무 많다. 너무 늦게 왔나 보다. 일단 장수대 휴게소로 가 보자.
장수대 휴게소의 주차장은 넓지 않지만 다행히 우리 차를 댈 수 있는 곳이 많이 남아 있다. 남교리로 넘어갈 경우 전화를 달라는 택시기사 분들도 와 계시는 것을 보니 대중교통 만으로도 이 산행은 즐거울 수 있는 조건이다. 제일 편안한 곳에 차를 대고, 그리미는 어제 산 등산화를 졸라 매고, 나는 운동화를 신었다. 9시 반. 장수대 휴게소에서 대승폭포까지는 40분, 폭포에서 대승령까지는 80분. 해발 500m에서 1,200m까지 계속 오르기만 하면 된다. 합계 2시간이니 왕복 4시간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6시간이면 된다.
친구의 조언에 의하면 요즘 비가 많이 와서 폭포에 물이 많아 장관일 것이라고 한다. 기대로 부푼 가슴을 안고 오른다.
입구의 기온이 너무 차서 바람막이를 입겠다는 그리미를 말려 맨 몸으로 2분 정도 오르자 적당히 기분좋게 열이 오른다. 숲이 참 좋다는 말마따나 오르막을 오르는 내내 짙은 숲이 눈과 몸을 시원하게 한다. 계곡물 소리도 북한산의 계곡 보다는 작아서 걸으며 듣기에 좋고, 얌전한 어린 아이들이 노는 소리처럼 귀가 편안하다.
시민들이 사랑하는 국립공원답게 등산로 정비가 잘 되어 있어서 민주지산이나 달마산 보다 오르기 편안하다. 계곡물과 풍뎅이가 갈길을 막고, 거대하고 기묘한 소나무와 구절초가 눈길을 막는다. 늦은 걸음을 더 늦추며 땀 한 방울 제대로 흘리지 않고 오른다.
밑에서 보던 바로 그 바위 능선인데도 눈 높이가 달라지고, 숨겨졌던 세밀한 선들이 바뀌면서 완전히 다른 풍경이 된다. 게다가 하늘. 소나기로 내릴 것같은 짙은 구름이 산 목덜미에 걸려 있다가 사라지면서 발걸음 수에 따라 배경을 바꿔 준다. 옛다, 애 썼으니 즐거운 시간을 가져라.
소나무. 해발 고도 600미터가 넘는 곳에서 똑바로 자라 있다. 붉은 색을 띤 몸체는 강인하고 굳건하다. 곧은 나무에 붙어 이리저리 꼬부랑거리는 가지들은 위용과는 달리 멋을 부리고 있다.
주목. 해발 고도 1,000미터가 넘는 곳에서 거대한 몸통만을 똑바로 세우고 있다. 한반도에 묻혀 살고 있는 우리는, 뿌리가 굳건하여 어떠한 비바람과 추위, 허리를 넘는 눈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얄팍한 시도로 작은 상처를 내며 기뻐하지 마라. 뿌리와 기상, 자유에 대한 튼실한 의지가 거대한 아름다움이다. 한민족을 바라보는 듯하다.
20억년 전에 만들어진 한반도의 편마암 지대를 뚫고, 1억 6천만 년 전에 우뚝 솟아오른 화강암 산들 - 설악산, 북한산, 월출산, 월악산, 금강산을 보라. 진정 아름다운 것은 덮는 것이 아니라 뚫고 나오는 것이다.
한 시간 만에 88미터 높이의 대승폭포를 눈 앞에 마주했다. 작은 물줄기가 선명하게 수직 절벽을 타고 떨어진다. 해발 720미터 높이에 있는 폭포다. 북한산 백운대 정도의 높이에서 시작하는 폭포라니. 58년 만에 이런 장관은 처음이다. 이 장관을 보기 위해서는 대승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려면 비가 온 다음 날이 적격이다. 설악산은 화강암 산이라 비가 내리면 즉시 계곡물이 산더미처럼 불어나고, 비가 그치면 곧바로 줄어든다.
주말인데도 이곳까지 오른 사람은 현재까지 20여 명을 넘지 않는다. 네 명의 산악구조대원까지 포함해서. 그러니 한가하게 차를 마시며, 점심으로 가져온 김밥을 먹으면서도 장관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더 좋은 것은 바위 능선을 따라 작은 소나무와 참나무, 고사목들까지 예쁜 볼거리들은 게으른 눈에 마구 쏟아붓는다.
마스크를 손에 들고 사람들을 지나칠 때마다 썼다 벗었다를 반복해야 했다. 산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주장하는 비겁한 녀석들을 빼놓고는 모두들 최선을 다해 예의와 건강을 지킨다.
대승령으로 올라갈 것인가를 두고 예외없는 토론이 벌어지고 대승령을 오른다. 계속 오르막인데, 지금까지의 오르막과는 달리 기분좋은 오르막이다. 새벽 6시부터 남교리에서 올라왔다는 젊은 친구들의 생기 넘치는 얼굴을 봐도 즐겁고, 형형색색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버섯들을 봐도 행복하다.
대승령까지 900미터 밖에 남지 않았다는 표지판에 위안을 받으며 무려 한 시간을 더 올라가서야 대승령 고개를 밟을 수 있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지게 위에 올라타고 이 길을 올랐다는 어리석은 선비의 이야기처럼 표지판은 어리석었지만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오른다. 죽은 시인은 용연과 봉정들이 보이는 뒷고개가 있다는 헛된 희망으로 발길을 재촉했고, 인자한 숲은 끝까지 그늘 만들기를 포기하지 않아 두 시간의 산행을 든든하고 시원하게 지켜주었다.
끝을 보자는 것이 아니라 극복할 수 있는 고비들을 넘어가며 즐거운 삶을 살자는 것이다.
롤케익 절반은 숙소에서 그리고 절반은 다시 내려온 대승폭포에서 먹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 빵을 반나절 만에 다 먹었다. 짙은 헤이즐넛 향 커피를 서너 잔 먹으면서도 화장실에 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수분 조절이 잘 되었다. 망고주스 한 캔도 갈증과 배고픔을 해결해 주었다. 산행 내내 적당한 배고픔이 유지될 수 있어서 좋았다.
내려오는 계곡에 앉아서 그리미의 발을 닦아 주었다. 생전 처음이다. 무리한 듯한 산행을 끝까지 함께 해 준 것이 고마워서인지 아내의 발이 하나도 더럽지 않았다.
물티슈를 대신해서 가져 온 천연염색 손수건도 너무 좋았다. 색도 좋고, 흐르는 땀을 닦아주는 데도 그만이었다. 잊었던 손수건을 다시 되살려 준 산행이었다.
모자를 놓고 왔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6천원을 주고 산 시원한 모자가 사라지자 뜨거운 땡볕이 내려 쪼이기 시작했고, 그늘로 뛰었다. 내려오는 계단이 이렇게 많은 것은 올라 간 계단도 이렇게 많았다는 뜻인데, 나는 소나무와 풍뎅이와 바위 능선과 구절초와 투구꽃과 금강초롱에 눈이 팔려서 계단을 알지 못했다. 모자가 사라지자 모든 것이 사라지고 뜨거운 태양 아래 계단만이 살아났다.
아들을 만나기 위해 운동화와 전화기로 무장한 엄마가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대승령까지 40분이 남았다고 일러 주었다. 그 모자는 무사히 산을 내려가며 즐거워했다. 엄마의 어깨에 배낭을 던져버린 용감한 아들은 한계령에서 이곳까지의 긴 산행을 엄마에게 끝없이 무용담처럼 늘어놓았고, 엄마는 이제 다 왔다며 아들을 대견해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녀가 더 대단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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