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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아름다운 한반도 여행

완성된 단순하고 소박한 아름다움_박수근 미술관_210903

마치 이곳에 가야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원자력병원에서 친구의 빙모상이 있었다. 시흥에 있는 트랙스타 매장에 두 개의 등산화를 수선을 맡기고, 양양으로 출발했다. 길이 좋아졌어도 경춘가도는 여전히 답답하다. 화덕에 구운 피자가 먹고 싶다는 그리미의 말에 잠깐 차를 세우고 검색했더니 바로 앞에 있다.

 

피자 하나 돈까스 하나, 사이다를 주문해서 맛있게 먹었지만 절반 밖에 먹지 못해서 포장하고 부지런히 길을 나섰지만 시간이 계속 늦어진다. 오후 4시 반 도착. 6시에 문을 닫는다지만 작은 미술관이니 금방 돌아보겠지.

 

박수근 미술관은 화백의 생가터에 근사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입장료 6천원인데, 양구사랑 상품권을 3천원 지급한다. 양구에 들러서 그리미의 등산화를 하나 새로 샀다. 11.8만원인데 상품권 두 장을 내미니 11.2만원. 멀리까지 와서 등산화를 샀다. 6천원을 마중물로 하여 17배의 매출을 일으켰으니 괜찮은 투자다.

 

한적한 마을에 일본 건축작가의 영향을 받은 듯한 설계로 꾸며진 공간들이었지만 내용은 응용이 잘 되어 괜찮았다. 작은 마을에 이런 잘 꾸며진 예술 공간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2002년 10월 25일 박수근 선생의 생가에 건립된 박수근미술관은 작가의 작품세계와 예술혼을 기리는 동시에 지역의 대표 문화공간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수근 선생의 소박한 삶과 작품세계를 연구하고 이를 전시, 교육, 출판사업 등 을 통해 재조명하고 있으며, 역량있는 작가들이 창작활동에 몰두할 수 있도록 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박수근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선함은 무엇이고 진실함은 무엇인지 엄밀하게 따져 말해야겠지만,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들이 선함과 진실함이라고 밀어버릴 수 있다.  정의하지 못하면, 전달하지 못하면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맞다. 예술의 영역에서 마치 유행이나 대세로 무엇이라고 정의해 버리면 더욱 그 말들을 거부하지 못한다. 그래서 때로는 내 생각을 찾으려 애쓰고는 한다.

 

그러나, 박수근의 그림에서는 선함과 진실함의 기운이 느껴진다. 박수근도 고달픈 삶을 살았기에 자신이 그리고 있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잘 알았을 것이다. 나 또한 그의 그림 속에서 끊임없이 이고 없고 가는 여인들,  소녀들, 할머니들의 고단함이 느껴지면서도 선하고 진실한 삶이 있을 것을 기대한다. 왜 우리들은 고통스런 삶 속에서 그런 행복하고 좋은 감정을 느낄까. 의문이다. 역설이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 박수근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아버지가 살아계신 동안에는 유복하게 자라면서 그림에 대한 꿈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가세가 기울어 동생들을 돌보고 어머니를 도와야 했던 박수근은 그래도 그림 그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전후에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으나 꿈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은 드물었고, 게다가 결혼을 꿈꾸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아내를 만난 빨래터를 그림으로 그려 성공한 사람은 박수근이 전 세계에서 유일한 사람이 아닐까.

 

박수근의 그림에서는 그의 세계가 완성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마치 반 고흐의 그림의 독특함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박수근이나 고흐는 다른 화가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세계를 느낄 수 있다. 거칠고 거칠게 마무리 하면서도 따스한 느낌이 드는 반 고흐의 그림과 거친 바탕면을 이용하면서도 부드러운 선이 이어져 단순하고 소박한 느낌이 드는 박수근의 그림.

 

작은 미술관을 왔다갔다 하면서 그림을 여러 번 볼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너무 좋은 그림이 많아서 도저히 자리를 뜰 수 없는 거대한 비엔나의 미술관과는 다른 기쁨이다.

 

얼른 보고 밖으로 나와 작은 자작나무 숲도 보고, 묘소도 올라가 보고, 파빌리온의 멋진 나무 그림도 보고 나니 현대 미술관은 보지도 못했는데, 폐장 시간이다. 뭐, 괜찮다. 다음에 또 오면 된다. 좋은 시간이었다.

 

"1914년 강원도 양구 산골에서 태어난 박수근은 가난 때문에 국민학교밖에 다닐 수 없었다. 6.25동란 중 월남한 그는 부두 노동자, 미군부대 PX에서 초상화 그려주는 일 따위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 힘들고 고단한 삶속에서도 그는 삶의 힘겨움을 탓하지 않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서민들의 무던한 마음을 그렸다. 절구질하는 여인,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인, 길가의 행상들, 아기를 업은 소녀, 할아버지와 손자 그리고 김장철 마른 가지의 고목들...

 

그는 예술에 대하여 거의 언급한 일이 없고 또 그럴 처지도 아니었지만 그의 부인 김복순 여사가 쓴 [아내의 일기]를 보면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어진 마음을 그려야 한다는 극히 평범한 예술관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화가의 이러한 마음은 곧 그의 예술의지가 되어 서민의 모습을 단순히 인상적으로 담아 내는 것이 아니라 전문용어로 말해서 철저한 평면화작업을 추구하게 되었다. 주관적 감정으로 파악한 대상으로서의 서민 모습이 아니라 모든 개인의 감정에서 독립된 완전한 객체로서의 서민이다. 거기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존재론적 사실주의]를 지향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박수근의 그림은 부동의 기념비적 형식이 되었으며 유럽 중세의 기독교 이론과 비슷한 성서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화강암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처럼 움직일 수 없는 뜻과 따뜻한 정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리하여 박수근은 가장 서민적이면서 가장 거룩한 세계를 보여준 화가가 되었고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현대적인 화가로 평가되고 있다." [朴壽根 1914-1965] (1985. 열화당)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