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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현산어보를 찾아서 1권_좋아하는 일을 하면 먹고 살만하고 책도 쓸 수 있다_210817 el diecisiete de agosto el martes_семнадцать август вторник

한울빛도서관의 서가를 얼쩡거리다가 현산어보를 찾아서 6권을 보았다. 이 서가에 올 때마다 눈에 들어오고 있지만 애써 무시했고, 그리미가 읽을 때도 그러려니 했다. 1권을 제외한 모든 책들이 깨끗한 상태의 책이다. 누구나 읽지만 아무도 끝까지 읽지 않는다. 나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21일(토) 손해평가사 2차 시험을 봐야 하지만 일단 서문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으로 가져왔다. 친구가 생각나는 책날개의 글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지은이 이태원. 1972년 (중략) 현재 세화고등학교 생물 교사로 재직 중이다. 어릴 때부터 뭔가 잡으러 다니길 좋아했다. (중략) 파도에 몸이 흠뻑 젖고, 굴 껍질에 발바닥을 베이기도 하며 고둥, 게, 망둑어를 잡았다. (중략) 물 빠진 못을 찾아다니며 미꾸리를 사냥했고, 틈틈이 칡이며 더덕을 캐는 일도 잊지 않았다. (중략) 관악산에도 가재와 도롱뇽은 살고 있었다. 수업을 빼먹고 계곡으로 버들치 구경을 가기 일쑤였으며, 너구리를 쫓고 두더지를 잡은 일도 있었다. (중략) 육수생물학 강의를 듣고 민물고기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때 처음 우리나라 고전에 나타난 생물 관련 기록들을 접하고 선조들의 생물관에 대한 궁금증을 느꼈다. (중략) 마산의 한 서점에서 「현산어보」의 번역본을 만났다.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책날개에서)

 

이런 글을 읽고 어떻게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좋아하는 일과 문제의식의 결합. 나이 서른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나는 내일모레면 환갑이다.

 

"나는 정약전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해서 이러한 책을 만들어내게 되었는지, 당시 우리 학문의 풍토는 어떠했는지, 200여 종이 훨씬 넘는 이 많은 생물들의 진정한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9쪽)

 

내가 서문에서 가장 읽지 않는 부분이 누구누구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아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들인데, 그 부분들조차 재미있다. 물론 물고기에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본문을 읽기가 두렵지만 말이다.

 

"(복성재의 역사와 정약전에 대한 구전을 들려준) 박정국 씨 집에서 함께 만난 조복기 씨와 조달연 씨는 물고기에 대한 몇 가지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특히 크기가 사람 키의 두세 배에 이르며, 길고 뾰족한 부리를 달고 있는 신비의 물고기 화절육의 정체를 알아내는 데는 두 사람의 증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략) 장창대는 사실상 「현산어보」의 공동 저자로 볼 수 있을 만한 인물 (중략) 오리 장복연 씨는 족보를 뒤져가며 장창대 가문의 내력과 장창대에 관련된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가 알려준 대로 산길을 걸어 올라가 장창대의 묘를 발견했을 때의 감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중략) 문채옥씨는 우이도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최치원과 최익현에 대해 알려준 것도, 정약전이 살았던 집터와 전해오는 구전에 대해 알려준 것도 그였다. 또 문채옥 씨가 보여준 두 권의 고서는 너무나도 귀하고 소중한 자료였다. 그중 한 권에는 정약전이 쓴 「표해시말」이라는 글이 실려 있었다. 이 글은 우이도 사람 문순득의 표류담을 취재한 기록이었는데, 정약전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을 문순득이 문채옥 씨의 직계 선조라는 사실은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중략 / 다른 한 권에는) 「송정사의」를 통해 백성을 아끼고 사랑했던 정약전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11~13쪽)

 

지난 수요일에 농원을 떠날 때는 꽃대가 올라오지 않았었다. 사흘만인 토요일에보니 벌써 다섯 개의 꽃대가 올라와 있었다. 생명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느끼는 가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