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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원이야기

우리 논에서 살던 뭇생명들의 고난이 슬프다_210802

논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동네 할머니께서, 농부가 땅을 팔고 나면 매우 아쉽고, 다시 사기도 힘드니 꼭 받고 싶은 가격을 받으라고 신신당부하셨다. 팔고 싶은 마음과 갖고 있고 싶은 마음이 반반이었기에 받고 싶은 가격으로 팔 수 있었고 사시는 분도 흔쾌하게 사 주셨다. 고마운 일이다.

 

의외로 마음이 담담하다. 재작년부터 땅을 팔자는 가족들의 요청이 있어서 계속 검토를 했었다. 2년 가까이 고민을 하고, 올해 초에 처음 땅을 내놨을 때는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거래요청이 오가는 사이에 다시 한번 더 마음을 다잡았다. 땅은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있어야 하고, 가지고 있는 땅에서는 열심히 땀을 흘려야 한다. 땅은 자산이 아니라, 생명교육의 장이요, 심신수련의 장이며, 만남과 기쁨의 장이어야 한다. 필요 이상의 땅에서 생명을 소모할 필요가 없다. 경자유전. 

 

그동안 적극 땅을 팔자고 하신 어머니는 돌아가신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신다. 팔순의 아버지가 땅을 잘 지켜주셔서 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게 해 주셨다. 지난 20여년 동안 아버지께서 힘들다고 포기하셨으면 나로서는 난감했을 것이다. 

 

그리미는 땅이 팔리게 되었다고 좋아하다가 막상 계약을 하고 났더니 아쉬워하며 돌아가신 아버지께 죄송하단다. 아버지는 정말 땅을 사랑하셨고 농사를 좋아하셨다. 그러나 아버지도 경자유전의 원칙이 있으셨다. 그리미로서는 땅에서 고생한 남편이 해방되는 것을 보니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깨끗하고 맛있는 쌀을 더 이상 먹을 수 없고, 너른 들에서 자라는 우리의 모와 벼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아쉬운 일일 것이다. 덤덤한 상태인 내가 오히려 이상하다.

 

어린시절부터 우리는 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갖고 살았다. 그리고 17년 전에 꿈에 그리던 깨끗하게 농사짓는 땅을 갖게 되었고, 주말을 반납하고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 2011년에는 급기야 회사까지 때려치우고 전업농의 길을 걸었다. 재미있었지만 웃기는 결정이었다. 이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짐을 덜어들인 훌륭한 결정이었다. 내가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두 분의 삶은 얼마나 더 고되셨을까. 

 

그러나 깨끗한 농사는 말처럼 쉽지 않았고, 시간과 체력은 무한정으로 필요했다. 결국 농부를 포기하고, 농사를 짓기 위해 몸을 쓰는 사람인 몸수가 되었다. 농부들과 비교를 해 보니, 나까지 농사를 멋지게 지어내는 농부가 될 필요는 없었다. 농부가 아니더라도 이천 여 평의 땅 위에서 자연과 더불어 몸을 쓰다 보면 늘 슬프고 기쁘고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느끼고 깨닫는다. 뜻대로 되지 않는 모든 일 때문에 좌절하지만 좌절을 통해 겸손을 배운다. 모든 어려움과 아름다운 것들이 하나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순간순간의 고통과 분노는 아무것도 아니다. 긴 시간에 걸쳐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야만 몸수로서 생존이 가능하고, 자연과 땅이 그리고 하늘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준다.

 

어설픈 몸수가 생산한 쌀을 맛없다 하지 않고 처갓집 식구들과 사돈들께서 아주 비싼 값으로 사 주었고, 친구들도 나의 수고를 격려해 주었다. 그들의 지원과 격려가 없었다면 몸수로서의 삶도 이어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우리의 삶은 가족과 친구들의 지원으로만 지속할 수 있다. 

 

몸수가 되어도 여전히 땅은 나를 일에서 놓아주지를 않았다. 한 번 논에 들어가면, 해가 저물도록,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부천으로 도망치지 않는 날에는 여지없이 논에 붙잡혀 있어야 했다. 특히 최근 2년은 가족들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살았다. 

 

아쉬운 것은 농기계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다. 우리 논에서 일할 수 있는 농기계를 쓰기 위해서는 손에 땀을 쥐는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결론은, 농기계는 너무 위험하니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버지와 내가 다치지 않고 대형 농기계를 사용해 온 것만 해도 하늘이 도왔다. 초보 농부들은 관리기와 예초기 정도로 농사를 짓는 것이 가장 좋다.

 

아직 600평의 밭이 남아있다. 이것도 깨끗한 농사를 짓는 규모로는 너무 크다. 매일같이 일할 수 있고 300평 이내의 규모이어야 좋은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아이들에게도 농사를 가르쳐야 하고, 가족들에게도 가원에서 노는 기쁨을 줘야 하니 이 정도의 땅은 보유하고 있어야겠다.

 

땅은 돈벌이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육체와 정신을 정화하기 위해 땀을 흘리는 곳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가정이 50평 내외의 땅에서 땀을 흘리며 자연과 교감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땀을 흘리는 사람들은 즐겁고 현명하다. 즐겁고 현명한 사람들이 사는 대한민국이라면 불행해질 수가 없다. 열 평이든 스무 평이든, 땅을 사든 임대를 하든 상관이 없다. 더불어 지구촌 사람들은 모두 꼭 땅과 함께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 가족들 모두 우리의 땅에서 함께 땀을 흘리며 살아야 한다. 땅을 가꾸자. 그러면 삶도 저절로 가꿔질 것이다.

그나저나 우리 논에서 자라던 뭇 생명들은 이제 누굴 의지하며 살까. 슬픈 일이다, 그들에게 닥칠 고난이.

 

소유는 물보라처럼 헛되다. 바위처럼 조용히 힘들지 않을 정도로, 적당하게 깎여 나갈 정도로만 일하라. 노동만이 소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