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잠을 설치는 바람에 눈을 뜨기가 어려웠으나 계획대로 7시에 일어나서 8시에 논으로 갔다. 먼저 한 시간 동안은 중간 논둑의 풀을 베었다. 아직은 풀이 성하지 않아서 예초기의 날이 잘 먹힌다. 한 시간 만에 목표한 논둑은 다 깎았다. 다시 삽을 잡는다.
한 삽 한 삽 뜨다보니 시간이 잘 간다. 1시간 반을 하고 나서 그늘에 가져다 놓은 벤치에 누워 20분을 쉬었다. 오른 팔이 약간 부담스러운 정도라서 일할 만 했다. 다시 메벼 논으로 가서 흙을 옮겼다. 처음에는 찰벼 논을 고르면서 작업을 하다가 점점 흙의 이동거리가 멀어져 가는 것이 부담이 되었다.
물 상태를 보니 메벼 논에는 물이 조금만 더 차면 될 것 같고 찰벼 논은 아직 부족했다. 아무래도 메벼 논을 먼저 작업하고, 내일 새벽부터 찰벼 논을 작업해야겠다. 찰벼 논도 굴삭기로 긁어놓은 효과가 있어서 그런지 물이 고여있는 곳도 빠지지는 않는다. 물 위로 나온 흙을 걷어서 메벼 논으로 던져 넣었다. 메벼 논의 낮은 부분은 장화 높이 이상으로 발이 빠진다. 바닥도 무르고 흙도 부족하다는 증거다. 찰벼 논은 흙을 물이 고일 때까지 파내도 바닥이 단단해서 빠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메벼 논을 빠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 수평을 잡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그런 생각으로 제법 많은 흙을 메벼 논에 채웠다. 역부족이었다. 굴삭기 작업을 좀 더 해서 확실하게 흙을 옮겨 놓았어야 했는데, 마지만 10분이 매우 아쉽다. 굴삭기가 1시간이면 할 일을 다섯 시간은 투자해야 할 상황이다. 그래도 눈에 띄게 빠지는 곳은 20㎥ 내외다. 그 정도면 요리조리 피해 다니면서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해 질 무렵에는 위험 구간 근처로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한다. 빠른 판단이 서지 않아 기계가 빠져 버리고 만다. 옆치기로 흙을 보내고, 물 장화를 신고 상태를 확인한 다음에 작업을 하는 것이 좋겠다.
야외 샤워실의 물은 샤워 하기에 불편함이 없이 나온다. 모터는 이상이 없다. 찬물을 좀 섞어야 수압이 강해진다.
트랙터를 가져와서 저녁 7시까지는 별 사고 없이 작업이 되었다. 7시에 트랙터가 걸려서 낚시터 사장이 와서 가볍게 빼주었다. 찰벼 논으로 기계를 옮겨서 작업을 절반 정도 하고 난 이후부터 트랙터가 이상 작동한다. 진흙을 잔뜩 머금고 속도를 내지 못한다. 찰벼 논의 물이 적어서 그런 것으로 생각이 들어서 다시 메벼 논으로 옮겨 왔는데, 메벼 논에서도 똑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겁이 나서 트랙터를 논둑에 대고 작업을 중단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면서 생각했다. 이 트랙터는 하우스 용이라 논 써레질은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기계를 빼서 반납하고 써레질과 모심기를 외주 주기로 결심했다. 내 실력이나 이런 기계로는 도저히 작업이 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지난 10년의 기계 작업이 아무 일 없었다는 것이 고마운 일이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