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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논둑을 바르며 써레질 준비를 하다_210511 el once de mayo el martes_одиннадцать май вторник

희미한 가로등 아래 야외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는데, 수압이 너무 낮다. 혹시 펌프가 고장일까. 전원을 껐다 켜니 모터는 잘 작동한다. 샤워하는 동안에는 모터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내일 낮에 다시 한번 살펴야겠다.

 

어제 오후와 마찬가지로 오후 5시 반부터 8시까지 두 시간 반을 삽질을 하고 났더니 팔다리가 얼얼하다. 숨쉬기가 곤란할 정도로 힘든 삽질은 돈 벌며 다이어트하는 농사짓기의 백미다. 그런데도 근육이 붙지 않는 것을 보면 꾸준하지 못한 모양이다. 삽질이 끝나고 나면 아령 들기를 해서 근육을 더 만들어야 다이어트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왠지 배도 더 나온 느낌이다.

 

메벼 논의 굴삭기 빠진 부분에 물이 한강처럼 고여 있다. 일단 흑미 논의 낮은 부분을 한 시간 반 정도 작업한 다음에 메벼 논으로 와서 지나치게 큰 논둑을 삽으로 깎아내어 낮은 부분으로 흙을 옮겨 메꿔가기 시작했다. 일주일 정도 작업을 하면 삽으로도 충분히 수평을 잡을 수 있겠지만 일주일 내내 삽질을 하다가는 몸이 두 개라도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내일 오전이 써레질 전 마지막 작업이다. 3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서 메벼 논을 메꿔 보자.

 

삽질을 하면서 그동안 고마웠던 친구들을 생각해 본다. 주관 없이 책을 이해하는 데 집중했던 어린 시절에 친구는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말하면서 나를 자극해 주었다. 아, 저렇게도 책을 읽는구나. 책을 교과서 읽듯이 무조건 받아 들이면 안 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친구가 있었다. 자신의 자취방을 흔쾌하게 친구들에게 내주고 식사를 대접하고,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경옥고를 아낌없이 친구들의 입에 퍼주었다. 고마운 친구다.

 

군대에서 목욕을 하다가 이웃 중대의 선임하사와 싸움이 붙어서 이빨을 부러뜨렸다. 부모님께 전화를 못하고 공부하던 친구에게 돈을 보내달라고 했다. 공부하기도 바쁜 시간에 친구는 어디서 구했는지 20만 원을 들고 이동까지 면회를 왔다. 술도 사주고 당구비도 내 주었다. 그 돈으로 무사히 치료비를 지불하고 징계를 받지 않았다. 고귀한 신분이 되어서도 함을 지고 처갓집을 쳐들어 와 주었다. 고마운 친구다.

 

학교를 나가야 할 위기에 처했을 때, 교수를 만나러 내 손을 잡아 끈 친구도 있었다. 학교를 졸업해야 뭐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교수는 내 젊은 인생 따위는 안중에 없어 했지만 친구는 정말로 나의 미래를 걱정하고 위로해 주었다. 고마운 친구다.

 

언제나 내 외로운 생활을 걱정하고 격려해 준 친구들도 있었다. 상병으로 군 복무를 하던 중에도 돈 없고 외로운 친구를 위해 돈을 빌려 가지고 나와 밥 사주고 술을 사 주었다. 친구를 면회 간 것이 아니라 친구가 외출을 나와 내 외로운 영혼을 위로해 주었다. 고마운 친구다.

 

끝까지 내 옆에서 나와 함께 호흡했던 친구도 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언제든 손을 벌리면 만나주고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다. 외롭고 힘든 시절 전부를 그 친구의 위로와 격려로 살아갈 수 있었다. 고마운 친구다.

 

하루 종일 당구를 쳐 준 친구도 있었다. 학교에는 가기 싫고, 집에서도 나와야 했던 나를 위해 하루 종일 놀아주는 것을 기쁘게 생각해 주었다. 지금도 늘 안부 전화를 해서 어려운 점이 없는지 물어봐 주는 친구가 있다. 참으로 고마운 친구다.

 

지난 삶을 돌이켜 보면 정말로 많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살아왔고, 지금도 친구들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든다. 내가 친구들에게 언제나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했기 때문에 그 친구들의 따뜻한 인간성이 빛나게 드러날 수 있었다. 내가 없었다면 그 친구들이 그렇게 훌륭한 인성을 갖추고 있었는지를 어떻게 알았겠는가. 나도 친구들에게 참 고마운 친구다.

 

이런 생각을 하며 삽질을 한 천 번쯤 한 것같다. 덜 힘들었다.

 

기다리던 바질 싹이 올라오고 있다. 한 달도 더 전에 심었는데, 아마도 너무 빨리 심었던 모양이다. 도라지도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