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터 배토기에 머리를 부딪혀 잠시 밭 위에 쓰러져 쉬었다. 정신이 돌아왔다.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태양은 작열하고 있다. hace mucho sol. 어제는 추웠던 날이 오늘은 바람 한 점도 불지 않았다 hoy es no viento.
밤새 잠을 못잤다. 백승영 교수의 니체 강의를 들으며 새벽 세시부터 간신히 잠들 수 있었다. 역시 철학이 수면제다. 그동안 너무 잘 잤더니 잠깐 수면제를 잊었다. 계획과 달리 8시에 간신히 몸을 일으켜서 느릿느릿 아침 행사들을 치르고 9시가 다 되어 트랙터로 갔다. 경유를 가득 채우고 다시 밭으로.
어제 잠을 못잔 이유는, 뭔가 일을 잘할 것 같아서 어떻게 하면 더 잘할까를 고민하느라 그랬다. 매우 어리석었다. 막상 일을 시작하니 아직 초보 딱지를 떼지 못했다. 10년 트랙터 운전을 했지만 다른 농부들이 한 달 동안 하는 양 정도다. 그러니 기술이 급성장 할리 없다.
작업 총평.
1) 15% 정도 곧게 뻗은 이랑이 나왔다. 6이랑. 처음에 트랙터를 세울 때 목표 지점과의 정렬이 완벽해야 한다. 앞뒤 바퀴와 목표 지점 두 개가 정확히 일치해야 일직선으로 멋지게 뻗은 이랑을 만들 수 있다.
2)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부변속 1단에 주변속 1단으로 주로 작업을 했더니 성격은 많이 차분해졌지만 속도가 너무 느렸다. 처음 적응기에는 1단-1단이 좋지만 1단-2단 => 2단-1단으로 작업 속도를 높여야 했다. 마지막에 1단-2단 결합으로 2시간 정도 작업을 했기 때문에 그나마 1시 반에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3) 직원이 조언한 내용은 우리밭에는 적용할 수 없다. 우리 밭은 잉카 유적의 돌담에 정교하게 박힌 직선과 호가 섞인 돌과 같은 모양의 밭이기 때문이다. 결국 작년과 같은 방식으로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
4) 기온이 20도를 웃도는 상황에서 겨울옷 두 개를 껴입고 작업하는 바람에 체온이 급상승해서 마지막 삽질이 너무 힘들었다. 양쪽 옆구리살은 무서워서 달아났고, 오른손 근육은 탱탱하게 부풀었다.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혼자서는 이랑만들기를 최종 완성할 수 없다. 두 시간 동안 흙을 퍼서 나르는데도 온몸의 기운이 빠져 저녁을 먹는데 몸이 의자로 주저앉는다. 앞으로도 나흘 치 분량의 일을 해야 겨우 감자와 강낭콩과 완두콩을 심을 수 있다.
트랙터 배토기에 머리를 찧은 것은, 밭의 돌을 주워내는 일에 너무 열중하다가 작업기를 보지 못했다. 잠시였지만 편안하게 흙위에 누워 쉬었다.
복숭아 과수원을 하는 우선생이 지나가기에 인사를 드렸더니 걱정이 많으시단다.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섰으니 복숭아밭이 망하게 생겼다고. 아무 일 없을 테니 괜한 걱정 사서 하시지 말라고 말씀드려도 걱정이 좋으신 모양이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시며 지나가신다. 어떻게 그런 걱정을 하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문재인하고 친한 사람이 책임자로 와서 충청도 땅에 태양광 발전소가 엄청나게 지어지고 있단다. 태양광 발전소는 소음도 심하고, 송전선 때문에 건강에도 나쁘고, 반사빛 때문에 눈이 부셔 살 수가 없고, 땅값도 떨어진단다. 이런 가짜 소문들을 퍼뜨려 정권에 타격을 주는 것이 과연 우리 환경과 후손들에게 무슨 이득이 될까.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 이런 가짜 뉴스에 놀아나는 것이 안타까워서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설명해 주어도, 내 말은 믿을 수 없단다.
군산 삼촌이 사주신 고압세척기는 이번에도 매우 유용했다. 트랙터를 반납하기 전에 깨끗이 닦아야하는데 아주 잘 되었다. 논에서 작업한 트랙터나 이앙기, 굴삭기의 청소에도 유용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