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막다른 시간이 필요하다. 계획은 어젯밤에 내려와서 오늘 아침부터 복귀를 할 생각이었는데, 몸이 자꾸만 일어나기를 거부한다. 가족들을 모두 두고 부천을 떠날 수가 없었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농사일에 대한 거부감이 동시에 작용했을 것이다. 결국 하룻밤을 더 자고, 오늘 아침 온 가족이 각자의 일터로 떠날 때 나도 간신히 농부가 되어 돌아올 수 있었다.
음성에 가서 오랜 친구를 떠나보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지만 롤케이크 하나를 어머니께 전해 드리라고 하면서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를 한다. 사정을 묻지도 못했고, 안다 한들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아쉬움을 전하며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중국인이야기를 읽으며 쉬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꿈도 없는 깊은 잠이었다. 5시가 넘어서 그리미의 전화를 받고 일어나 예초기를 챙겨 들고 논으로 갔다. 친구가 논둑을 베어 놓았다. 나도 논둑을 벤다. 두 시간이면 가능한 일을 두 달 만에 했다. 역시 두 시간이면 가능했던 다른 논둑들을 베어 주느라 이곳이 늦어졌다. 아직도 두 달 동안 한 번도 풀을 깎아주지 못한 논둑이 한 줄 더 있다. 역시 두 시간이면 가능한 곳이다. 내일 아침에는 필히 그곳을 하고 말리라.
7시가 넘어서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가 따놓으신 고추를 옮겨와 깨끗이 씻어서 건조기에 넣었다. 거의 일주일을 쉬었는데도 몸이 축축 처진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니 닦을 엄두도 나지 않는다. 눈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일했다.
야외 샤워실로 가서 모기를 피해 샤워를 하려다가 포기했다. 무섭게 달려드는 모기들이 옷도 벗기 전에 발을 물어 뜯는다. 집으로 도망쳐 들어왔다. 모기장을 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