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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사람을 신처럼 받들어서는 안된다_중국인이야기 6과 장미의 이름 하 03_200726 el veintiseis de julio el domingo_двадцать шесть Воскресенье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김명호의 중국인이야기가 어떤지. 이야기니까 사실과 이야기 속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중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하다고 생각하느냐. 아무도 답이 없다. 두 명 정도는 제법 중국통인 듯한데 말이다. 말하기 싫은 걸까 모르는 걸까.

 

1. 중국인이야기 6 : 김명호 지음 / 한길사

 

6권을 읽다가 재미 삼아 다시 1권도 같이 읽는다. 전자책이 좋아서. 인작대전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4월 19일. 

 

1960년 서울에서는 이승만 독재를 타도하는 민주주의 혁명이 있었다. 1년 후에 혁명은 군사 쿠데타로 매몰되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가 되었고, 박정희는 배고픔을 물리쳐 준 반인반신이 되었다. 20년 후 광주에서 국군이 국민들을  학살했다.

   

1958년 베이징에서는 인민의 식량을 수천 년 동안 강도질한 참새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인작대전 人雀大戰. 1년 후에 중국은 벌레들로 몸살을 앓고, 마오는 참새를 바퀴벌레로 대체해야 했다. 10년 후 마오는 무오류의 신이 되었고, 참새를 쫓던 아이들은 문혁의 홍위병이 되었다. 30년 후 천안문에서 인민해방군이 인민들을 학살했다.

 

착취유공론을 펼치며 중공 성립 후 인민들의 먹을 것을 책임졌던 류샤오치가 문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기 직전 가족들에게 남긴 유언은 비장하면서도 자유롭다. 마르크스주의자 이전에 자유주의자다. 자유주의자 다운 청렴한 공직자의 모습이다. 이 땅의 공무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죽으면 엥겔스처럼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라. 5대양을 떠돌며 전 세계를 보고 싶다. 나는 평생을 무산계급으로 살았다. 너희들에게 남겨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중국인이야기 1권 5%)

 

대약진운동에 대한 흐루쇼프의 이야기도 재미있어서 적어 놓는다.

 

"대약진운동은 소련의 흐루쇼프가 “마오쩌둥이 방귀 한번 시원하게 갈기려다 바지에 똥 쌌다”며 빈정댈 정도로 철저히 실패한 정치운동이었다." (중국인이야기 1권 9%)

 

다시 6권으로 간다. 박원순의 죽음을 수행의 관점에서 보면, 욕망에 휘둘린 실패한 혁명가의 모습이다. 반면 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 아쉽다. 최선의 정치를 실현하려는 강한 의지와 실천력을 갖춘 인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인물을 한국 현대사에서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1924년에 쑨원이 한 말이 가슴에 그대로 와 닿는다. 성실과 교양을 겸비한 열정을 지닌 혁명가 한 사람을 잃었다. 

 

"(천궈푸에게 보낸 쑨원의 서신) 모병은 군수물자 조달보다 더 힘든 일이다. 혁명은 종교와 다르다. 진실된 사람을 찾으려고 애쓰지 마라. 없기도 하지만, 언제 변할지 아무도 장담 못 한다. 새로운 역사는 적당히 황당하고 성실과 교양을 겸비한 사람들의 열정에 의해 탄생한다." (6권 40%)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의 말은 공감이 가는 훌륭한 말이다. 그 대안을 어디에서 찾는 지도 중요하기에 윤석열의 모든 언행이 훌륭할 수는 없다. 충성이라는 게 문제일 수도 있다. 국가와 민족에 충성한다. 국가와 민족이 개판이면 충성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고, 잘못 충성하면 히틀러와 나치 무리처럼 이스라엘과 유대민족처럼 크나 큰 죄를 짓는다. 

 

천리푸와 천궈푸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품성과 자질을 갖췄는데, 장제스에게 충성을 다 바친 것이 문제였다. 중국의 헐벗고 굶주린 백성에게 충성을 다 바쳤다면 좋았을 것이다. 장제스 사후에 장징궈에게 우의를 나눈 것이 천리푸가 말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 치료비도 없이 폐렴으로 죽어간 천궈푸의 청빈은 본받을 일이지만 사람에게 충성해서는 안된다. 사람은 그저 사람일 뿐이다. 노무현이든 문재인이든 김대중이든 박정희든 사람에 불과하다. 너무 떠받들지 마라. 좋아할 수는 있다. 존경까지는, 글쎄. 쑨원이 옳지 않은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어찌 사람일까.

 

"천씨 형제는 장제스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았다. (중략 / 말년에 천리푸는) 우리는 너무 유치했다. 위기만 강조하면 국민이 따라올 줄 알았다. 국민당은 공산당과의 싸움에서 패한 게 아니다. 못나게 굴다 보니 정권을 송두리째 헌납했다. (중략) 내전에서 패한 국민당은 대륙에서 철수했다. 타이완에 정착한 장제스는 책임을 회피했다. (중략) 속죄양을 찾았다. 천궈푸와 천리푸 형제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중략) 천궈푸는 폐병이 악화됐다. 돈이 없다 보니 치료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중략 / 미국에서 작은 양계장을 하며 중국 고전을 공부하던) 천리푸는 19년에 걸친 유랑생활을 청산했다. (중략 / 평생 적이었던 천리푸의 죽음에 대해 중공은) 중국의 문화통일에 헌신하던 천리푸 선생이 타이중에서 향년 101세로 서거했다." (6권 40~46%)

 

2. 장미의 이름 : 움베르토 에코 / 이윤기 옮김 / 열린 책들

 

사랑이란 무엇인가? 정의를 내리지 못하겠다. 하기는 인간에 대한 정의도 내린 지  얼마 안 된다. 공부와 노동, 여가의 삼위일체를 향해 나아가는 동물이 인간이다. 사랑은 뭔가? 환희와 고통을 수반하는 욕망 중의 욕망. 글쎄. 

 

"사랑이라는 병은 괴질이기는 하되 사랑 자체가 곧 치료의 수단이 된다 (중략) 사랑이 괴질인 까닭은,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치료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사랑은 눈을 통해 우리 몸속으로 들어오는 병이었다." (하권 27%)

 

청빈에 대한 토론. 왜 교황은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그리스도의 청빈에 관한 믿음'을 이단이라고 했을까. 당시 이단은 화형에 처해질 수 있는 무서운 범죄였다. 수도자가 재산보다는 수양에 힘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비롯한 온갖 재산 늘리기에 반대하며 그리스도의 청빈을 지지하는 헌장을 채택한 것이 이 두 권의 소설을 쓰게 한 것일까.

 

"그리스도는 옷과 음식과 십일조로 들어온 돈과 신자들 공물의 소유자이십니다. 그분이 가난하셨다면 이는 그분에게 재산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고 소유의 대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략) 그대에게 화 있을진저. 그대는 하느님께서 명하신 것은 모르는 척하면서 하느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것을 기웃거리는구나 (중략) 암캐가 강아지 낳듯이 줄줄이 이단자들이나 내지르는 주제에 프란체스코회는 만사를 자기네 공으로 돌리는 걸 좋아합디다. (중략) 소란의 와중에 프란체스코 수도회와 도미니크 수도회 수도사들은 서로 심한 욕지거리를 해댔는데, 마치 이교도 사라센인들과 기독교인들이 벌이는 싸움 같았다.

 

(중략) 물질을 소유하고, 그대 자신을 그 물질의 소유자로 여기되, 필요로 하는 자가 있거든 쓰게 하라, 이는 자비가 아니라 의무이니라 (중략 / 물질도 필요한 사람에게 쓰게 하기 위해서 소유하는 것이고, 세속권도 세속의 지배자가 쓰려고 한다면 쓰게 해야 한다. 교권이 세속에 대한 지배권을 갖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 <가난>의 의미는 (중략) 이 땅의 일에 대해 다스릴 권리를 갖느냐 포기하느냐에 있는 것이다. (즉, 교권이 세속권 또는 황권을 지배하려는 욕심에서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가난이다.)" (하권 35~6%)

 

윌리엄 수도사가 기호 즉 언어의 다름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하느님이 창조한 것은 동물이지 이름이 아니다. 인간의 지적 활동 모두가 하느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들어 설명한 것으로 이해한다. 이 논의에서 시작하여 청빈의 주장이 이단이 아니라는 것, 교황의 영역과 황제의 영역이 구분되는 것, 이단의 심판과 처벌이 분리되는 것, 교권과 황권이 구분되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아담은 그 동물의 성질에 맞추어 이름을 상상함으로써 일종의 지상적 권리를 행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중략)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이해하는 것은 그 개념뿐이지 이름은 다르게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 (하권 37%)

 

정리의 가닥은 잡혔으니, 윌리엄 수도사를 통해 에코가 말하려고 한 교권과 황권의 구분, 종교와 삶의 구분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는 일을 하고 와서 다시 정리해야겠다. 비가 그쳤다. 곧 다시 오겠지만 오늘은 7월 29일이다.

 

"지상의 만물 안에서 하느님 백성이 지배자가 되고 율법의 제1원인으로 노릇하는 것을 꺼리시지 않았다 (중략) 시민 중에서도 우월한 무리에 속하는 이들이 이 <백성>의 범주에 든다. (중략 / 여러 사람이 모여 placitum 법을 nomos 제정하고 사람이 하느님이 창조한 동물에게 이름을 nomina 부치듯이) 도시와 왕국과 재산에 관한 법은, 성직에 몸담고 있는 교역자들의 특권인 하느님 말씀을 지키고 해석하는 일과는 무관합니다. (중략 / 교역자들이 없어도) 이교도와 무지몽매한 불신자들에게 이러한 법을 제정하게 하고, 정치 공동체를 이루어 살게 하는 능력은 대체 누가 (중략)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것입니다.

 

(중략 / 인간들이 법을 세워 세상의 질서를 잡히게 한 것은) 성직자들이 베푸는 모든 성사를 앞질러, 우리 기독교가 틀 잡히기 이전에 하느님께서 정하신 바 (중략 / 예수 그리스도는) 사도들이 이 땅을 지배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중략 / 하느님의 백성인 사도들도) 제왕의 세속적 혹은 강압적 권력에 따르지 않는다면 (중략)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세워진 하나의 질서가 도전을 받게 됩니다.

 

(중략) 이단을 규정하는 것은 진리의 수호자인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 (중략 /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받은 자들에 대해) 제왕은, 이단자의 행위가 공동체의 안위를 위협했을 경우에만 이단자를 처결할 수 있고 (중략) 이단자의 자유 의지에 반하는 강요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중략)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스스로 청빈하기를 바라는 바에는 교황이 이 아름다운 소망을 단죄할 수도 없고 또 단죄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중략) 세속의 만사에 대한 그리스도의 이러한 초연하심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오히려 청빈을 바라셨을 것이라는 죄 없는 믿음을 두둔하는 넉넉한 증거가 아닐는지요?" (하권 37~39%)

 

올해도 불쑥 상사화가 올라왔다. 지혜와 현명함도 이렇게 불쑥 솟아 오른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