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규정을 내리지 못해 애를 먹었는데, 이제 이렇게 정의한다. 노동과 여가, 공부의 삼위일체를 위해 노력하는 동물, 즉 공노가功勞暇를 향해 나아가는 동물이 인간이다. 공노가 삼위일체 trinity는 완전한 것이고 그것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인간이다.
시대의 변화를 느낀다. 도서관이 막히면서 전자책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진다. 게다가 노트 10.1보다 가벼운 아이패드를 우주신으로부터 물려받아서 책 읽기가 더욱 좋다.
1. 중국인이야기 6_김명호 지음 / 한길사
중국인이야기를 4권까지 읽었는데, 빌리지를 못해서 5권(?)부터는 읽지 못했다. 전자책으로 6권이 출판되었다는 소식에 반가운 마음으로 찾아보았더니 있다. 얼른 빌렸다. 내 꿈 중의 하나가 한국판 '중국인 이야기' 즉 '한국인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꿈은 꿈일 뿐이겠지만 중국인이야기를 자꾸 읽다 보면 꿈을 실현할 방법이 생각날 수도 있을 것이다.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이 교육이다. 지난 주에 김상조가 뉴스공장에 출현에 스마트 교육에 대한 정책 방향을 제시했는데, 20년 정도 걸릴 노후 학교 시설 개선 사업을 5년 내로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이 사업에 민자를 유치하거나 공공펀드를 조성해서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시설 개선의 방향이 그린 green과 AI인 것은 공감하지만, 민간자본과 펀드 투자를 유치해서 수익성을 보장해 주겠다는 방식은, 학교 현장과 외부에서 좀 더 치열한 논의가 필요하다. 특히, 민자 유치 사업들에 대한 검토가 우선해야 한다.
학교 공간은, 도시 정책의 영향을 민감하게 받아 폭발할 듯 늘어나야 하거나 썰물 빠지듯 순식간에 비어져 버릴 수 있다. 두 경우 다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어서 문제가 된다. 민자와 펀드의 수익성을 정부 재정으로 보장해 준다면 매우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특히 학교 BTL 사업은 민자고속도로나 민자 지하철 사업의 문제점보다 더 심각한 재정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학교 공간은 고정되어 있고, 확대 가능성은 높지만 축소해야 하거나 비워질 가능성도 매우 높다. 따라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밖에도 학교를 지역 공동체의 중심 센터로 만들겠다는 생각 등에 대해서도 매우 우려한다. 학교는 순수하게 학교여야 한다.
"전쟁 중이라도 교육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중략) 건장하고 고전 교육을 제대로 받은 자연과학도들을 선발해 미국 유학을 보내라. 나라에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학업을 마치기 전에는 돌아오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서 보내라." (1937년 11월 국민정부 주석 린썬이 충칭으로 천도하기 전에 장제스에게 남긴 말_10%)
국공내전에서 국민당 정부군이 홍군에게 패배한다. 부정부패가 핵심 이유다. 그런데, 중국 땅의 광대함과 포기하지 않는 희생정신이 더 큰 이유이겠다. 이미 중일전쟁에서 그 모든 것이 드러났다. 김명호의 이야기에는 그런 것들과 함께 항상 이야기로서의 멋과 여유, 즉 뻥이 있다. 그 뻥이 뻥만은 아닐 것이다. 아시아 민족들의 여유와 예술에 대한 사랑이 발로한 것이리라.
"상하이 사변 때도 국민정부는 정규전으로 응했다. 일본군이 만리장성을 넘봤을 때도 전략을 바꾸지 않았다. 싸우는 족족 패했다. (중략 / 마오쩌둥은) 전쟁 초기, 국민당 정예부대가 패하면 지구전에 돌입하게 된다. 홍군 유격대의 역할은 그때부터다. (중략 / 마오쩌둥은) 홍군은 진지전을 해본 적이 없다. 유격전이 전문이다. 지휘권 독립을 요구해라. (중략 / 장제스는) 적의 배후에서 유격전을 펴며 정규전을 지원해라. (중략) 팔로군 예하 115사단 정치위원 녜룽전이 2,000여 명을 이끌고 우타이산에 진입했다. (중략) 1937년 늦가을 밤, 흑색 가사를 입은 승려들이 사원 문전에 도열했다. 장중한 음악을 연주하며 낯선 손님을 환영했다. 아버지(녜룽전)는 사면이 적에게 포위된 깊은 산속에서 우아한 음악을 들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는 말을 지금도 자주 한다."(불타의 구세 정신 중에서_19%)
2. 장미의 이름 하_움베르토 에코 지음 /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아서 또다시 쫓기듯 읽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명성에 비해 눈에 띄는 무엇을 읽지는 못했다. 다양한 인용이 있으니 그것이 만 권의 도서로부터 나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다소 기대에 비해 실망스러운 추리소설을 읽어나가다가 온 몸을 즐겁게 하는 표현을 만났다.
지난 열 달 동안 언론과 검찰이 그렇게도 요란하게 떠들어댔던 조범동 관련 1심 재판 결과가 지난주에 나왔다. 김어준의 요약에 의하면,
1) 정경심이 조카 조범동에게 빌려 준 돈은 빌려준 돈이다. 그러므로 정경심은 코링크의 실소유주가 아니다.
2) 조범동도 코링크 PE의 실소유주라는 증거가 없고, 주가조작과 관련해 익성에 별도의 공범과 수혜자들이 있다.
3) 사모펀드 관련 범죄가 권력형 비리라는 검찰의 주장은, 검찰 스스로 아무런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비리 아니다.
4) 사모펀드의 자본시장법 위반과 관련한 무자본 M&A와 주가조직의 범인은 조범동과 정경심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다.
비록 1심 재판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이 재판 결과를 토대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언론과 검찰은 진실을 퍼뜨리는 곳이 아니라 진실이 드러날 때를 늦추는 곳이다.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중에서 '장서관'을 '언론과 검찰'로 대체했다)
"서책이라는 것은 서책 자체의 내용도 다루고 있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서책끼리 대화를 주고받는다 (중략) 장서관이라고 하는 게, 진실을 퍼뜨리는 곳이 아니라 진실이 드러날 때를 늦추는 곳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까?" (하권 13%)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위와 같이 표현을 하니 뭔가 그럴듯하다. 부동의 것으로 은유하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상권의 이야기가 다시 생각난다. 내친김에 '어린양'에 대한 이야기도 옮겨보자. 순수하고 착한 성품 때문이 아니라 지혜로운 본능 때문에 어린양이고, 희생 제물의 대표였기에 양이라고 불린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와 과거의 이미지가 달랐던 것일까. 아니면 이미지는 예나 지금이나 같았지만 양이라는 실재를 언어로 표기하기 위해서는 그 의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재미있는 이야기다.
"어린양들은, 그 순수하고 착한 성품을 인정받아 <어린양>이라는 이름을 상으로 받으면서부터 그렇게 불리게 된 것일까? 실제로 어린양을 지칭하는 agnus라는 명사는 어린양이 agnoscit(안다), 즉 무리 속에 있는 제 어미를 알아보고, 그 목소리를 알아듣는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어미 역시, 수많은 어린양 무리에 섞여 있어도 제 새끼의 울음소리를 알아듣고 제 새끼만 가려내어 젖을 먹인다. (중략) 양은 ab oblatione(제물)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해서 ovis(양)라고 불린다." (하권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