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재를 좋아한다. 우리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혁신을 바라보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천재들의 혁신은 평화롭고 신기하면서도, 세상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수억원이 넘는 - 한 사람이 평생 벌기도 힘든 돈으로 가볍게 아파트들을 사재기하는 세상, 푼돈의 마스크 쯤 얼마든지 사재기해서 세상의 평화를 깨는 사람들이 흔한 세상에, 천재들의 평화로운 혁신도 세상에는 광풍의 대상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 혁신이 없다면 세상 사는 재미가 없다.
고미숙은 천재가 싫다고 했다. 천재들의 싸늘함과 둔재 콤플렉스 때문이란다. 어제 부천으로 올라오는 길에 플라톤 아카데미의 동영상 강연 [위대한 유산] 열하일기(고미숙 고전평론가)를 들었다. 재미있었다. 그리미가 읽고서 추천했는데도 오랜 동안 책꽂이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던 책을 읽기로 했다. 2003년에 1판이 발행되고 1년 만에 8쇄가 발행되었으니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던 모양이다. 부록부터 읽으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언제나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내게 부러운 대목이 있었다.
"엄성이 그린 이 초상화는 우아하고 부드러운 터치가 홍대용의 풍모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엄성은 홍대용이 유리창에서 사귄 중국인 친구 중의 하나로, 죽을 때 홍대용이 보내준 먹과 향을 가슴에 품고서 숨을 거두었다. 그것만으로도 둘 사이의 우정이 얼마나 뜨겁고 절절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붓끝에 담긴 엄성의 사랑을 느껴보시기를!" (402쪽)
한참을 읽어가다가다 또 우정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멈추었다. 변변한 이야기를 풀어낼 능력도 되지 않아서인지 만나는 친구들이 거의 없는 나에게 오랜 옛날 박지원의 이야기는 부럽다.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내가 움직이면 되지만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그러면서 술과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을 그리워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유은 안다. 가족들로부터 충분한 교류의 기쁨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연암의 '친구 사랑'은 늘그막에도 그칠 줄 모른다. 관아 한 곳에 2층으로 된 창고를 헐어서 연못을 파고 물을 끌어들여 고기를 기르고 연꽃을 심어 즐기면서 술친구와 글친구를 불러들여 모임을 갖곤 했다. 정조가 이 말을 듣고 당시 검서관이었던 박제가에게 "박지원이 다스리는 고을에 문인들이 많이 가서 노닌다고 하는데, 너만 공무에 매여 가지 못하고 있으니 혼자 탄식하고 있었을 게다. 휴가를 내어 너도 한번 가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한다. 국왕의 귀에 들어갈 정도로 이 모임이 유명했던 걸까?" (91쪽)
문체반정이라. 정조가 반성문을 받는 것으로 끝내고, 제일 탄압을 받았던 사람이 과거를 보지 못했다고 하니 피바람이 분 것은 아니다. 20년도 전에 일어났던 딴지일보의 기사쓰기라고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의 문체는, 마구잡이 전달이다.
"(이옥) 천지만물에 대한 관찰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사람에 대한 관찰은 정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묘한것이 없고, 정에 대한 관찰은 남녀의 정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진실된 것이 없다. (중략 / 정조의 입장에서 보면) 문장이란 무릇 저 천상의 가치, 곧 천고의 역사와 우주의 이치를 논하는 것이어야 한다. (중략 / 박지원) 비슷하다 함은 이미 참이 아닌데 /눈 앞의 일 속에 참된 정취 있거늘 (중략 / 연암은) 어설프게 고문을 본뜨지 말고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삼라만상'에 눈뜨라는것이다." (119~121쪽)
나도 똑같이 사기를 읽었는데, 어제 김병준 교수가 읽고 정리해 준 사기 열전의 강연은 훌륭했다. 책 읽기는 좋아하지만 이렇게 잘 읽지는 못한다. 많이 읽는 것보다는 잘 읽는 것이 중요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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