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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냉이가 뭐지?_300303 вторник

열 시까지 책을 보다가 일어섰다. 지난 주에 눈에 거슬렸던 양파밭과 마늘밭의 풀을 메기 위해서다. 밭에 가기 전에 음식물 쓰레기와 비닐쓰레기를 정리한 다음에 10시 반부터 쪼그려 앉아 풀을 뽑았다. 아버지께서 하시던 대로 한 줄 한 줄 꼼꼼하게 했다. 내가 일하는 스타일은 여기저기 눈에 띄는 곳의 풀을 대충 뽑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일이 끝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어차피 일은 끝낼 수 없으니 급한 것부터 - 눈에 잘 보일 정도로 많이 자란 풀부터 작업을 하는 것이 작물이 자라기에 좋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어차피 비슷하니 아버지의 작업 방식을 계승하는 것이 농부의 도리라 생각해서 그렇게 한다. 논 김매기 할 때도 이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어머니께서 풀을 매는 김에 냉이를 캐 보라 하셨다. 그리미가 좋아하니까. 막상 쭈그려 앉아서 풀을 메다 보니 냉이가 잘 보이지 않는다. 내가 냉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세 개를 캐서 보여 드렸더니 맞단다. 그리미는 황새냉이 같다고 한다. 어차피 세뿌리 밖에 캐지 못했으니 먹기도 뭐하다. 그냥 버렸다.


12시가 넘어서까지 작업한 양은 4미터 x 1.8미터 넓이의 양파밭의 80%다. 기는 농법은 참 효율이 없고 허리와 무릎이 아프다. 그래도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작업에 집중하는 동안은 내 땅에서 일한다는 기쁨이 스쳐간다. 이장님이 지나다가 인사를 건네온다. 수박하우스에 넣을 퇴비를 얻어 오신다고 한다. 하우스 네 동의 비닐이 모두 벗겨져서 일이 많으실텐데도 얼굴은 여유롭다. 농부들의 저런 표정이 참 부럽다. 때가 되지 않은 일, 하지 않아도 될 일이 눈앞에 벌어졌을 때, 나는 열이 난다. 거칠어지고 슬퍼진다. 그런데 농부들은 당황하지도 우울해하지도 않는다. 원래 그렇다는 것이다. 정말 부럽다.


씻고 났더니 12시 반이다. 어머니가 차려 주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했다. 조금 쉬다가 안과에 가서 어제 백내장 수술을 받은 어머니의 눈 상태를 점검해 봐야 한다. 통증도 없고, 불편도 견딜만 하시는 모양이다. 읍사무소에 들러서 야생동물 방지 시설이 뭔지나 확인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