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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사는 이야기

지배하는 것은 원근법_200111 суббота 수보따

매주 토요일마다 90분씩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2년 전이다. 그림을 좋아해서 배우는 것은 아니고 그리미의 취미 생활을함께 하기 위해서 시작했다. 몇 번이나 그만 두려고 했지만 이 수업을 중단하는 순간 그림 그리기도 끝나리라는 두려움 때문에 - 그리되면 그리미와의 인연 중에 하나가 희미해지고 조금이라도 멀어질 것이라는 안타까움 때문에 계속해서 다니게 되었다. 한 달 6만원이면 찹쌀 꽈배기를 120개 사 먹을 수 있는 엄청난 돈이지만 두 사람을 하나로 이어 줄 인연 하나가 만들어지는 것이라서 최선을 다해 붙들고 있다. 게다가 이 정도 돈으로는 어떤 화실에서도 두 사람이 그림을 배울 수 없다. 오로지 문화센터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그림 그리기는 3차원 평면을 2차원으로 표현하는 기술을 배운다. 그런 생각을 전혀 못하다가 오늘 문득 떠올랐다. 2년 동안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으니 이런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느낌이 나게 하는 방법은 음영이다. 밝은 것에서 어두운 것으로 또는 그 반대의 흐름을 잘 표현하면 입체감이 생긴다. 짙은 색에서 옅은 색으로의 변화가 두드러져도 살아 움직인다. 스스로 그런 표현을 할 수 없지만 잘 그린 그림을 보면 그것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려운 것은 실물을 보거나 사진으로 보아도 이 음영과 짙거나 연한 색을 구분하지 못한다. 눈을 훈련하지 않으면 구별하지 못한다. 아름다운 것을 한 눈에 알아보는 멋진 눈이기는 하지만 표현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투자해 연습해야 한다.


두번째로 중요한 것은 원근법이다. 가장 중요하다. 그림을 지배한다. 멀리 소실점을 향해서 동서남북에서 날아가는 선들을 잘 정돈해야 한다. 그래야 그림이 3차원 예술로 태어난다. 원근법이나 소실점은 그림을 통해서 훈련되어야 한다. 지난 56년 동안 원근법은 암기한 지식에 불과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비로소 연습했다. 세계를 어떻게 원근법에 의해 표현할 수 있는지를. 2년 동안의 그림 그리기는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나는 부족했다. 연습과 그리기가 병행되어야 했는데, 168시간 중에 고작 1.5시간의 그리기 시간만 있었고 연습시간이 없었다. 따라서 앞으로도 수십 년을 원근법 연습에 시간을 쏟아야 겨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세번째로 중요한 것은 똑같이 그리기다. 그림은 사진기나 복사기처럼 대상을 똑같이 묘사할 수 있어야 그림다운 그림이 된다.똑같다는 것은 비례를 정확하게 맞춘다는 것이다. 눈과 코의 크기, 가로와 세로의 길이, 가지와 뿌리의 폭 등 수많은 양들의 비례를 정확하게 연필로 종이 위에 그려내야 한다. 화가로서의 재능은 바로 이 능력에 있지 않을까. 재능이 없는 사람은 이 비례감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연습해야 하고, 천재들은 바로 습득한다. 똑같이 그리기를 완성한 다음에 내가 그리려는 느낌이나 대상에서 풍겨 나오는 정신을 담아내기 위해서 어떤 것은 생략하고 그 무엇은 강조할 때 비로소 예술로서의 그림이 완성된다. 그리기 어려우니 생략하는 것과 강렬한 무엇을 담아내기 위해 생략하는 것은 틀림없이 다를(?) 것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경지다.


네번째로 음영이다. 직육면체에 쏟아지는 빛은 다르게 분배된다. 마치 공식처럼 되어 있는 빛의 분배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대상과 똑같은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 음영을 과감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비로소 그림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어느 세월에 그렇게 될 지 알 수 없으나 이해하기 시작했으니 이해도는 점점 높아지지 않을까. 베끼는그림에서 스스로의 그림으로 나아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림은 운동이다. 오랜 시간 동안 붓을 들고 선을 긋고 칠을 할 수 있으려면 몸이 튼튼해야 한다. 평소에 체력 단련을 충분히 해서 집중력을 발휘하여 종이 앞에 앉아서 두 세 시간 쯤 앉아있을 수 있는 힘을 길러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결국 몸의 활동, 근육의 움직임이다. 모든 예술은 운동이고, 운동을 통해 인간은 삶의 기쁨과 희열을 맛본다.


두 아들이 해남 대흥사의 대웅전을 올라가는 순간의 사진을 그린 그림이다. 음영 처리 안되고, 돌바닥과 흙바닥의 구분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고, 돌바닥의 멋진 연꽃 문양은 원형으로 잘못 그려 타원으로 덕지덕지 고쳐야 했다. 겨우 하나의 소실점도 만족스럽게 담아내지 못했다. 운동 한 번 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