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올해는 보다 많은 참기름을 얻을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 주에 참깨를 베고 계속해서 내린 비 덕분에 절반 정도의 참깨는 썩어버렸다. 절반이라도 건질 수 있으면 다행이다. 비 예보가 계속되는 데도 비닐로 잘 덮어두면 될 것이라는 생각도 틀렸다. 잠깐씩 내리쬐는 햇살에 푹푹 익어버려 씨앗에서는 싹이나고 잎들은 곰팡이가 피었다. 무조건 하우스로 옮겨 놓아야 했다. 우리 하우스가 좁으면 반장네 하우스라도 빌려야 했다.
13일과 14일에는 참깨를 털거나 다 털지 못한 참깨는 하우스로 옮겨 놓았다. 계속 비가 내리기 때문이다. 하늘에 기대어 하는 농사는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게 되면 이것저것 챙길 것이 너무 많아서 방해가 된다. 하루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단일 작물로 가기 위해 참깨와 들깨를 선택했다. 작년과 올해 2년 동안 이렇게 했는데 너무 힘들다.
이유는, 첫째로 짧은 시간에 일을 마무리 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력이 집중되어야 한다. 나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심을 때나 수확할 때나 똑같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여러 작물을 심을 때는 아무래도 심는 시기가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매일 일을 하지만 이렇게까지 일에 쫓기지는 않는다.
둘째로 참깨는 한 여름에 수확을 하고, 수확 직전에 들깨를 땡볕에서 심어야 한다. 들깨 심기와 참깨 거두기의 노동 환경이 너무 좋지 않다. 혼자서 일할 경우 각각 일주일도 넘게 걸려 7, 8월 삼복 더위에 15일 이상을 밭에서 일해야 한다. 탈진해 쓰러지지는 않더라도 고통스럽다. 고통받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다.
셋째로 가뭄이 들면 들깨가 말라 죽고, 비가 내리면 참깨가 썩는다. 작년에는 가물어서 참깨 농사나 대체로 잘 되었으나 들깨가 힘들게 심었는데도 많이 죽어 버렸다. 그렇다면 올해 들깨 농사가 잘 될까. 음. 노력을 해도 절반의 성공만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참깨 들깨 이모작이 좋은 것은 좋은 기름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농약과 제초제 없이도 어느 정도 수확을 거둘 수 있으며, 유전자 조작 씨앗이 들어오지 않아 씨앗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 농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묘안이 있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 작은 씨앗들을 손쉽게 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방법만 찾아내면 삼복더위에 고생하는 시간을 보름에서 일주일로 줄일 수 있다.
오늘은 농협에서 제공한 배추를 심는다. 어제 오후에 배달되어 왔는데, 말복이 지났으니 이제 심어야 할 때이다. 우리 집에 조합원이 세 명이라 3판의 모종이 무상으로 배달되었다. 총 370포기다. 농약방에 가서 붕사와 칼슘, 마그네슘이 포함된 처리제를 사 와서 흙에 섞은 다음 참깨를 베어낸 밭으로 가져 갔다.
참깨를 뽑아내고 심으려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도 뽑을 때를 생각하면 이곳이 최적의 장소다. 윗집 백선생이 그제 우리 집의 차단기를 수리해 주셔서 너무 고마웠던 차에 배추 모종 50개가 필요하다기에 우리가 300포기를 심고 나머지를 주기로 했다. 주고 받는 즐거움이 있어서 좋다.
참깨 그루터기를 뽑아내고 붕사 섞은 흙을 뿌린 다음에 배추 모종을 심는다. 한 판 120개를 심는데 다섯 시간이 걸렸다. 어제 내린 비로 땅이 촉촉하여 일하기가 좋았다. 고추도 두 번 약을 쳤고, 한 번 정도 더 약을 쳐야 하는데, 배추도 두 번 정도는 약을 쳐야 할 것이다. 배추와 고추 농사를 짓지 않으면 농약을 쓸 일이 없을텐데. 아쉽다. 아니면 방충 부직포를 치는 것을 고민해 봐야겠다. 쉽지 않을 것이다.
내일 아침까지 심으면 되겠다. 8월 마지막 주에 어머니 척추 협착증 시술을 위한 의사 면담이 있는데, 시술을 받고 나면 농사일은 하지 않기로 약속하셨으니 이제 온전히 내 일이 될 것이다. 혼자서도 일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 놓아야 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포기를 모르시는 분이셨으니 어떻게든 돌파를 하셨겠지만 나는. 불가능한 일은 쉽게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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