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에 출판되어 7년 동안 7쇄가 발행된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책이다. 그동안 인도에 대해 너무 무심했던 모양이다. 아 생각난다. 3년 여 전에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라는 책을 읽었다. 그 부분을 다시 읽어 봐야겠다. 뭔 소리를 들었는지.
한 달(아진 미샤찌 один месяц) 만에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뭐랄까. 슬픔은 아니고, 공감하기 어려운 사색이 불편했다.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우울하고 축 처지는 것이 맞는 것일까. 인도 또는 레가 이지상을 그렇게 만든 것일까. 글쓴이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 인도에서도 우울한 것은 아닐까. 우울한 마음을 기피하는 나로서는 불편했다.
"내가 돌아갈 세상의 집, 그 또한 덧없이 사라지는 한줄기 환상인 것을 ..... 세상을 살아오며 늘 허망하고, 불안하고, 외로웠던 것은 내 진정한 집을 잘못 알았기 때문이었으니, 세상에 있지 않은, 영원한 나의 집을 찾기 전까지 나 또한 평생 울며 이 낯선 세상을 방황하리라." (233쪽)
텅 빈 눈을 보고 그는 슬퍼한다. 나는 두렵다. 텅 빈 눈은 무슨 사고를 칠 지 모르는 눈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은 고독이지만, 죄 없는 타인들을 대상으로 사고를 치는 병은 우울이다. 깊은 우울은 피하고 극복해야 한다. 불편한 책이지만 긴 휴식 덕분에 마음이 단단해져서 이리저리 널뛰는 방식으로 글을 다 읽어내고 있다.
이희수의 책에서 기독교의 삼위일체와 비슷한 생각이 조로아스터교와 이집트의 종교에서도 나타난다고 했다. 그런데, 힌두교에서도 그런 모양이다. trinity. 말이 안되지만 뭔가 다양하고 강력한 힘이 필요할 때 쓰는 도그마인 모양이다.
"링가는 산스크리트 '링크(쓰다라는 뜻)'에서 온 말로, 연필을 종이 위에 쓰면 글자가 나오듯이, 남근을 여체 위에 쓰면 생명이 나온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중략) 시바 링가는 보통 물이 고인 '요니'라는 받침대에 받쳐져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여근을 뜻한다고 한다.
(중략) 숫거위는 아무리 날아도 계속 자라나는 남근을 따라갈 수 없었고, 멧돼지는 아무리 바다 밑으로 내려가도 남근의 근원을 알 수가 없었다. 두 신이 지치는 순간, 갑자기 남근의 측면이 벌어지면서 거기서 시바 신이 나타났다. 그리고 창조의 신 브라마, 보호 유지의 신 비슈누, 파괴의 신 시바가 모두 하나라고 선포한다." (238~9쪽)
타밀어와 우리말이 비슷한 것이 많단다. 잉게 와(이리 와), 잉게 봐(이것 봐), 엄마, 아빠, 왕, 난(나), 니(너), 형(언니), 풀, 빨(이빨) 등등. 친구가 보내 준 강성원의 동영상을 보면 우리 말(특히 전라도)의 뿌리가 산스크리트어라고 주장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다. 세계 문화가 하나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우울한 감정의 전개보다는 이렇게 공부한 내용을 전해 주는게 재미있다. 글에서도 훨씬 활기가 느껴져 좋다.
가야 관련 연구자에 따르면, 강길운의 연구는 재미있지만 논란이 되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가야의 언어 자체를 추정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주장이고, 고대 인도와 가야의 문화 유사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현재까지의 연구로는. 가야 말의 원형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남아있는게 없기 때문이란다.
김해 예안리 고분군 출토 인골의 DNA분석 결과 인도 남부인과의 유사성이 보인다는 내용도 있어서 완전한 허구는 아니겠지만 고대사 연구는 명확한 게 많지 않다고 한다.
서울의 어원을 '서라벌'이 아니라 타밀어 '시루'와 '울'에서 찾는 것은 아름다운 상상력이나 과도한 주장으로 생각한다. 여행의 즐거움으로 즐기자.
"(강길운의 '고대사의 비교언어학적 연구'에 따르면) 가야 왕국의 지배 계급과 일본 왕실은 드라비다어를 썼으며 현재 드라비다어 약 1,300개가 우리 어휘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중략) 드라비다어로 '나르, 나라'는 대지, 땅이란 뜻
(중략 / 김석진의 타밀어 연구에 따르면) '시루'라는 타밀어는 산스크리트 '스리'의 어원이며, 이것은 곧 영어의 '서 sir'로 변형되는데, 비슈누 신의 반려자인 행운과 재물의 여신 락슈미의 젖망울이며, 또한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는 뜻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로 서울의 '서'의 어원일 것이다. '울'은 타밀어로 마을을 뜻하니, 서울을 타밀어로 그냥 풀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란 뜻인 것이다." (242~3쪽)
번역된 옛사람들의 기록을 보면, 이게 지어낸 이야기인지 실제 상황을 기록한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기록이 너무 적어서 근거 없는 주장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문으로 된 원서들을 읽을 수가 없으니 우리 조상들이 오천년간 기록한 어떤 글도 읽지 못한다. 번역이 된 것도 많지 않고 나 스스로 연구하지도 않으니 전달된 것도 없으며 교육도 받지 못했다. 많은 기록이 있어도 읽을 수 없으니 기록이 적어 보이고, 그저 신화나 이야기처럼 교육을 받았으니 사실 여부에 대해 의문이 드는 것이다. 공부가 부족해서 의문이 드는 것을 조상들의 기록 부재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한문을 공부해야 할 모양이다.
"한 사원에 쌍어문이 있는 것 아닌가. 정문에 꽤 크고 길쭉한 형태의 물고기 두 마리가 유연한 몸짓으로 서로 입을 맞추듯 바라보고 있었다. (중략) 심지어는 인도 경찰의 모자에도 쌍어문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윳디아가 속한 우타르프라데시 주 정부의 문장이라는 것이었다.
(중략 / 삼국유사 2권 가락국기의 기록을 보면) 김수로왕이 말한 시각에 배가 나타나더니 아리따운 여자가 나와 자신은 아유타국 공주로서 이름은 황옥이고 성은 허씨이며 열여섯 살이라고 말한다. 복국에 있을 때, 5월 어느 날 부모님이 가락국(가야)이란 곳의 김수로왕이 옥황상제께서 점지하신 배필이라고 하여 찾아왔다는 것이다. 서기 45년경, 허황옥은 이렇게 가락국의 남쪽 바닷가에 노비를 비롯하여 20여 명의 일행을 이끌고 도착한다.
(중략 / 김병모의 글에 의하면) 허황옥은 인도의 아윳디아에서 곧바로 온 것이 아니다. 또한 태국의 역사에 아유타야국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16세기이니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 사람들을 추적한 결과, 중국의 보주에 이주해 살던 아윳디아 사람들이 황해를 건너 가야국으로 이주해 온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단지 전설이 아니라 명확한 증거로 남은 것이 쌍어문이라는 것이다." (24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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