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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평안한 죽음을 원하는가_아시아의 죽음 문화_180812 바스끄리씨에니에 Воскресенье

인도에 관한 책을 찾아도 내 입맛에 맞는 책이 많지 않다. 이 책은 여러 교수들이 모여서 쓴 책이라 기대가 된다.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필연의 과정에 대해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길고도 어려운 병을 잘 이겨 낸 어떤 노인 한 분이 이제는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살겠다고 하신다. 건강하실 때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조상에 대한 예의를 중시하여 나와 내 가족이 겪는 불편함을 예사로 여겼던 분인데 말이다. 과거의 행위를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부터라도 나를 위해 살겠다는 뜻이다. 노인이 백년을 산다고 보면, 철들고 난 15세 이후부터 85세까지 70년을 가족과 조상과 타인을 위해 살아왔는데, 앞으로 15년은 자신을 위해 살고 싶다는 것이다. 타인을 위한 배려나 가족에 대한 사랑은 인간의 삶에서 80%에 해당하는 일일까. 궁금하다.



 "인도에서 환생의 개념은 기원전 6세기경에 나타났다. 이보다 전에 구성된 고대 브라만의 경전 '베다'에는 환생과 윤회에 대한 사상이 없다. (중략) 윤회사상이 등장한 것은 '베다의 끝'이라고 불리는 '우파니샤드'였다.  (중략) 힌두의 믿음에 따르면, 옳지 않은 짓을 한 사람은 죽어서 코끼리나 나무, 소나 말로 다시 태어난다. 동물이 되어 여러 번 죽고 나길 반복하면 어느 때에는 인간으로 환생하지만 (중략) 그에게 갚아야 할 업이 남았다면 그 다음에는 카스트의 말단인 수드라나 상인 계층인 바이샤로 환생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브라만을 중심에 둔 이런 사상은 많이 퇴색했지만 (중략) 윤회를 믿는 인도인은 이승에 살면서 내세에 대한 준비가 어느 문화권보다 많다. 신을 숭배하는 시간과 비용은 엄청나다.


(중략)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렇게 죽음과 내세에 대한 준비가 많은 인도의 인구가 자꾸 늘어 가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고,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난 사람이 없는 것일까? 인도는 20세기에 들어서 인구가 세 배 이상 증가했다! 누가 환생해서 이승으로 오길래 인구가 느는 것일까?" (18~28쪽 / 이옥순 '인도 힌두의 죽음' 중에서)



이옥순 교수가 쓴 '인도 힌두의 죽음'이라는 글의 마지막 부분이 좋다. 예전에 어디선가 읽어서 인용하던 내용과 비슷하다. 팔다리 건강할 때까지 열심히 놀다가 나이 들어 논밭에서 일하다가 휴식을 취하던 선베드에서 그대로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글을 읽으며 생각해 보니 많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소망과 다를 바 없는 소망이었다.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해 달라는 소원이고, 고통없이 잠자다가 죽게 해 달라는 소망이니 말이다. 힌두들의 생을 정리하는 방식은 모든 사람들과 공유할 만하다.



 "죽음이 가까워오면 힌두는 하던 일이나 필생의 과업을 마무리하려고 애쓴다. 이생에 주어진 과업을 마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 다른 삶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친구를 만나서 축복하고 사랑했음을 전하며 적이나 다툰 사람을 만나 사죄하거나 원한을 푼다.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고 생에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며 재산을 정리하고 유언을 남긴다. 삶을 감사하고 화를 내지 않으며 성서를 읽고 명상을 하며 사원을 방문하거나 순례여행을 떠난다. 신에게 헌신하는 것이다." (57쪽 / 이옥순 '인도 힌두의 죽음' 중에서)



책을 읽다보니 우리가 소망하는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방법이 나온다.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 볼만한 일이다. 처음에는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는데, 자꾸 생각해 보니 그리 어려운 일이다. 집착을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필멸의 존재(메멘토 모리 : 죽음을 기억하라)인 인간을 생각하는 일이 어려운 일일 수 없다.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하면 평안한 죽음이 찾아온다. 가려고 하면, 그 길은 단순하고 쉽다.



 "라마승들은 사원에서 한 평생 죽음에 관하여 수양하고 공부하는 죽음의 학도들인 것이다. (중략) 티베트에서 라마승이라 함은 일반 티베트인들의 스승이 될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그러하기에 라마 lama 라는 단어는 스승 guru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략) 바로 '삶과 죽음'에 관한 스승이다.


(중략) 인간은 평화로운 죽음을 원한다. 그러나 삶이 폭력으로 그득했거나 성냄, 집착, 시기, 질투, 욕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살아왔다면 평화롭게 죽을 순 없을 것이다. 이는 무서운 카르마(업)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카르마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행동을 모두 포함한 의도적 행동을 뜻하는데, 그것은 고통은 물론 행복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카르마는 삶의 매 순간에 우리가 선택한 것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76~79쪽 / 심혁주 '티베트인의 죽음과 환생' 중에서)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오래도록 쌓여야 드러난다. 공부를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많이 해서 축적이 되어야 지식도 되고 패인도 된다. 처음 몇 번으로는 그것의 실체를 알 수 없다.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감정도 오래되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무엇인가를 모르겠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티베트에서는 카르마에 대한 이런 멋진 이야기를 한다.



 "하늘 높이 나는 한 마리의 독수리가 있었다. 독수리가 하늘에서 날고 있을 때는 그 어떤 그늘도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독수리가 땅 가까이 내려올 때에야 비로소 먹이를 위협하는 그림자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이 카르마의 원칙이라는 것이다. 카르마는 그 힘이 무르익을 때까지 결코 사라지지 않다가 숙성되면 독수리의 그림자처럼 나타난다는 것이다." (102쪽 / 심혁주 '티베트인의 죽음과 환생' 중에서)



문자가 없던 민족들의 역사 기록 방식도 놀랍다. 인도에서 베다 경전이 전승되는 방식과 같다. 베다 경전은 순서대로 외우고, 거꾸로 외우고, 홀수글자만 외우고 등등 다양한 방식으로 오류를 예방하고 있어서 더욱 놀랍지만, 아시아 대륙의 다른 민족들도 대대로 그들의 역사를 외워서 전승한다. 놀랍다.



 "(이동과 정착이 잦았던 하니족은) 사람이 죽으면 조상 땅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죽은 이의 영혼이 고토로 돌아갈 수 있도록 베이마(하니족의 무당)를 청해 죽은 자를 위해 길을 인도하는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그것이 영혼을 인도해주는 노래, 즉 '지로경'이다. (중략) 사람이 죽으면 베이마는 죽은 자의 혼을 부르는 족보를 노래한다. 하니족을 비롯한 이족, 나시족 등은 원래 부자연명제를 사용했다. 부자연명제란 자신의 이름 첫 글자에 아버지의 이름을 넣는 것이다. (중략) 조상들의 이름을 부름으로 해서 조상의 영혼이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의 이름을 거억해주는 이가 없을 때, 어쩌면 영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중략) 베이마는 하니족이 이주해온 길을 다시 짚어준다. 하니족은 후니후나에서 시작해 러뤄푸추, 눠메아메이를 지나 써어줘냥을 거쳐 구하미차에 이르고 다시 나퉈, 스치를 거쳐 남으로 이주, 홍허까지 내려와 지금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119~120쪽 / 김선자 '영혼 길 밝혀주는 노래, '지로경' 중에서)



다름을 인정하는 일과 차별하지 않는 일은 중요하지만 역시 어렵다. 세상의 모든 중요한 일은 어려워서 쉽게 처리하려 한다. 그런 쉬운 처리가 세상을 더 힘들게 하고, 소중한 생명들을 사라지게 한다. 생각과 말과 행동을 신중히 하려 하지만 어렵고, 생각한 대로 말하고 실천하려 하는데 나태와 이기심과 오만을 극복하기 어렵다. 나이는 들어 북망산천이 가까워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화장을 하여 죄를 씻고 푸른 연기를 따라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야 조상 땅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 이족 사람들인데, 그들의 오랜 종교와 풍습을 무시하고 중앙정부에서 화장을 야만적인 풍습으로 규정지어 화장을 금지시켰던 것이다. 고대 강인 포로들조차 자신들이 죽은 뒤에 화장되지 못할까 그렇게도 두려워했는데, 이제 아예 화장 풍습을 금지시키다니, 그렇다면 그들의 영혼은 어떻게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132쪽 / 김선자 '영혼 길 밝혀주는 노래, '지로경' 중에서)



더욱 놀라운 것은 '거의 모든 집에 자기들의 '지로경'이 있을 정도' (162쪽)라고 한다. 현대에 와서는 기록되고 있겠지만, 구전에 의해 거의 모든 가문에서 그들 스스로의 언어로 음송된다고 한다. 기록된 족보조차도 흥미가 없어서 드려다 보지 않는데 말이다. 제사는 정말 어떻게 지내야 하는 것일까.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의외로 재미있다. 몽골인들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려하고 장례를 치른 다음에는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 흉한 것을 털어낸 뒤에야 집으로 들어간단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너무 화창하고 좋은 날씨를 "죽기 좋은 날이다!"라고 말한다"(191쪽)고 한다. 인류의 역사를 삼십만 년이라고 한다면 태어남과 죽음을 가장 많이 접한 일이 될 것이고, 그러다 보니 이런 재미있는 생각들이 축적된 모양이다. 과학과 달리 생각은 그리 많이 변할 수 없으니 예나 지금이나 고개를 끄덕일 말들은 그리된다. 인디언의 말은 영화의 대사로도 인용되었다. 알고 그런 것인지 우연이 그리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유목민들에게) 자연은 삶의 터전이요 원천이자 삶 그 자체다. 그래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산과 강과 벌판은 보호되어야 마땅하다. 몽골 유목민들의 삶 곳곳에는 이런 흔적이 남아 있다. 좋은 물과 풀을 따라 옮겨 다니는 것도 실은 초원의 훼손을 막기 위한 조치다. 정착 목축을 하는 내몽골 초원의 황폐화는 역으로 몽골국(속칭 외몽골) 유목 목축의 우수성을 입증해준다." (193쪽 / 이평래 '몽골 유목민의 죽음에 대한 인식' 중에서)



물과 불을 소중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려서부터 불을 끌 때는 오줌을 누고, 큰 물을 만나면 오줌을 누어 기개를 과시해 오던 터라 이런 몽골의 관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992년 7월의 뜨거운 여름이었다. 서울에서 온 학자들과 몽골 동부지방으로 조사를 나갔다. 어느 날 동행한 한국 대학원생이 흐르는 물에 방뇨한 '이상한 사건'이 발생했다. 몽골 학자들의 요청으로 긴급회의가 열리고, 그들은 한국 학자들에게 이 '무지막지한 행위'에 대해 엄중 항의했다. 자연을 오염시킬 경우 어떻게 처벌한다는 중세기 법전까지 들먹이며 흥분하는 사람도 있었다. (중략) 물이나 불에 방뇨하는 자를 처벌하는 것은 칭기즈 칸 이래의 전통이다. 불은 신앙적인 의미로, 물은 다른 사람들이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건은 엄중 경고로 끝났지만 몽골인의 자연에 대한 인식의 일단을 읽을 수 있는 에피소드다" (194쪽 / 이평래 '몽골 유목민의 죽음에 대한 인식' 중에서)



몽골은 의외로 강렬하다. 모든 유목민족이 그렇지만 재산은 형제들 모두에게 상속되고, 칸은 맏아들이 아니라 강한 자에게 세습된다. 몽골제국이 오래도록 유지되지 못한 이유가 바론 이런 시스템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의 자연관도 매우 강렬하다. 물에 대한 생각도 현대 국가들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물을 오염시켰다고 매를 때릴 수는 없지만 높은 벌금이나 징역형으로 다스려서 다시는 물에 장난을 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플라스틱을 비롯한 어떤 쓰레기도 물에 버려서는 안된다. 정화조라는 이름으로 똥물을 버리는 행위도 대안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초원 어디엔가 안치된 시신은 누군가 먹어치우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리고 그 땅은 여전히 초원으로 남는다. 땅에 삽질을 하고 묘지를 남기는 매장은 몽골인들의 전통적 자연관에서 보면 삶의 터전인 대지를 파괴하는 것이요 오염시키는 행위다. 물리적 측면에서 자연으로 돌아가 아예 없어져버리는 죽음을 열린 죽음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시신을 땅속에 묻는 죽음을 닫힌 죽음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열린 죽음이 자연과 동물과 인간의 공생을 위한 죽음이라면, 닫힌 죽음은 오로지 인간만을 위한 죽음이라 할 수 있다." (197쪽 / 이평래 '몽골 유목민의 죽음에 대한 인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