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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노예도 술탄이 되어 이슬람 제국을 지배한다_이슬람의 세계사 1_180709 빠니질리닉 понедельник

지난 주 사흘 동안 천재의 운전 연수를 하느라고 농사일을 하지 못했다. 이번 주 초에도 비가 내려 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어 천재와 함께 농원에 내려와서 운전 연수를 한다. 대략 500km는 탈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두 시간 100km를 달리고 났더니 운전이 훨씬 안전하다. 차선 변경과 끼어들기 연습이 더 많이 필요하다.


'이슬람의 세계사 1'을 읽어내지 못하여 계속 정체되고 있다. 더 많은 분량의 아프리카 이야기도 일단 시작했는데 지루해서 읽어내기가 어렵다. 일단 이번 주까지만 이 책을 읽기로 했다.


몽골의 침입과 이슬람으로의 개종과 동화, 셀주크 제국의 형성, 오스만 제국의 발전과 패망 등 상당히 재미있는 주제인데, 왠지 재미있게 풀어내지 못한다. 이야기가 부족한 사료 또는 사실의 나열이다 보니 그렇다. 종교가 생활을 완전히 지배하는 이슬람 사회를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다. 이슬람을 바탕으로 한 독립운동의 영향이 강했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또 등장하는 것이 중동 제국의 요체라고 하는 노예군대다. 우리가 생각하는 노예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보이는데, 어째서 노예군대라고 규정하는지 알 수 없다. 돈을 주고 사람을 사오니 노예는 노예다. 오스만 제국 후반기에 가면 용병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용병과도 완전히 다른 개념인 모양이다. 노예와 주인의 운명공동체라고 하는 개념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모든 중동의 군대에는 노예부대가 있었지만, (이집트와 시리아를 지배한) 맘루크 정권은 가즈나 왕조와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노예군 조직에 의존했다. 술탄을 비롯한 정권의 엘리트가 모두 노예였거나 노예 출신이었다. 일부 무시할 수 없는 예외는 있지만, 군사엘리트의 일원이 되려면 원칙적으로 투르크인이나 체르케스인 같은 이민족으로서 노예로 팔려와 군인이나 행정가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아야 했다.


이집트나 시리아의 토박이는 결코 엘리트가 될 수 없었으며, 원칙상 노예나 통치자의 아들도 엘리트 계층에 진입할 수 없었다. 정권을 위해 일하는 모든 남자는 전적으로 국가의 소유물이며 주인을 섬기고 군인의 직분에 전념하는 데 방해가 되는 혈연이나 지연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 이 제도의 논리였다.


(중략) 10~12세의 어린 나이에 외국에서 팔려와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병영에서 생활하며 군사훈련을 받고 주인에 대한 충성심과 전우애를 몸에 익혔다. 병영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술탄의 군사가 되거나 고위군관의 사병으로 근무했다. 술탄의 노예부대와는 별도로 군관들도 자신만의 노예사병을 거느렸다. (중략) 장교들이 술탄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 이 군대는 계급의 위계가 아닌 사적 충성심에 의해 조직되었던 것이다." (492~3쪽)


이슬람에 대한 첫 번째 책이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할 것이다. 622년부터 성장하기 시작한 종교이니 역사도 깊다. 게다가 워낙 유연하고 다양한 종교이론들이 등장하다 보니 이해하기가 더 어렵다. 하느님인 알라를 믿고,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언행을 따르며,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지키며, 수많은 성자들을 추앙한다. 이란을 중심으로 한 시아파가 소수이고, 수피즘과 법학을 중요시 하는 수니파가 다수이다. 무굴제국은 인도에 성립된 이슬람 제국이다. 그 지도자들의 생각을 살펴보면, 한편으로는 개인의 수양에 최선을 다하지만 코란이나 하디스를 직접 접하지 못하는 일반 대중들에게 열심히 포교를 한다. 정치 지도자들의 후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기에 정치 참여와 분쟁 조정의 역할이 컸다. 터키의 세속주의가 붕괴되는 것은 이들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사람들과의 접촉면이 넓고 깊기 때문일 것이다.   


"(무굴제국의) 낙슈반디야 교단은 하느님의 비전에 도달하기 위한 영적인 수련을 강조했고, 세상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중략, 미르자 마즈하르는) 정치적 갈등을 피하고 자신의 폭력적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수피 생활을 시작했다. 불확실성이 팽배한 세상을 뒤로 하고 마음의 평정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중략) 평생토록 음식이나 선물을 가려서 받았고 세속에 오염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며 독신생활을 권장했다. 그는 기적을 행하는 힘이 있다고 결코 주장하지 않았지만, 추종자들은 그에게 그런 힘이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중략, 굴람 알리는) 하나카를 조직하고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에 포교사를 보냈으며 자선을 베풀고 탄원자들에게 정신적 도덕적 조언을 해주었다. 또한 기회 있을 때마다 정치인들에 도덕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619~621쪽)  







500쪽이 넘어가는 동안 노예군대, 이슬람의 관용 정책이 계속 반복된다. 반복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더니 서민들의 생활과 연관된 부분에서 이슬람의 역할이 컸다. 재원은 정복자(무슬림이거나 무슬림으로 개종한다)에 의해서 마련되지만, 대학(마드라사)이나 병원 학교 모스크 복지시설 등 모든 생활 기반 시설이 이슬람 성직자들에 의해 운영된다. 칼리프나 술탄들은 정권을 장악하고 세금을 걷어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권력투쟁을 하는데 여념이 없다.


시민들의 생활은 이슬람 지도자인 수피(금욕주의 신비주의 종교인)나 울라마(이슬람 종교 엘리트)들이 술탄이나 칼리프의 재정 지원을 받아 지원한다. 7세기 이후의 이슬람 사회는 끊임없이 지배자가 바뀌었지만 종교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온갖 것들에 의해 시민들의 생활이 향상된다. 특히 교육과 병원, 축제가 그렇다. 시민 생활을 종교가 실제로 지배하게 된 것이다. 시민들은 군인도 관료도 되지 못한다. 종교인의 가르침과 군인들의 보호를 받고 일을 해서 세금을 내기만 하면 된다. 그리스나 로마의 시민들이 군인이 되어 나라를 지키는 것이 의무인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사회였다.


이집트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역사가 다음과 같이 잘 정리되어 있다.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의 이슬람 문명은 7세기와 8세기 아랍인의 정복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 지역의 역사는 칼리프 시대 중동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 했으며 중동형 초기 이슬람 문명의 지방적 변형이었다. 12~13세기에 북아프리카 이슬람 국가들은 이라크와 이란의 셀주크 제국 및 이집트와 시리아의 맘루크 제국을 그대로 본떠 제도를 정비했다. 16세기에는 모로코를 제외한 대부분의 북아프리카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18~19세기에 이 사회들은 유럽과 경제경쟁을 벌이느라 힘이 약했졌으며, 결국 식민통치를 받게 되었다." (503쪽)


읽는 내내 너무 지루하여 그만 읽고 싶었으나 어쨌든 700쪽을 넘게 지나왔다. 이슬람의 역사는 복잡 다단하고 조화로웠다. 여전히 여성들에 대한 과도한 차별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들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야 한다. 어느 누가 감히 죽자고 덤비는 원리주의자들 앞에서 함부로 비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평화의 이슬람이 전하는 지혜의 목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