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김밥을 싸서 먹고, 어제 다녀온 간송미술전 신윤복의 미인도를 베껴 본다. 얌전하게 고개 숙인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은 나타나지 않고 사내의 얼굴만 나온다. 내 손에는 여자는 없는 것일까.
아버지 박평의 두 번째 부인의 아들로 태어나 서자로서 울분에 찬 세월을 살던 박제가는 이관상의 딸에게 장가를 든다. 장인은 '똑똑하긴 하지만 너무 남다르고, 고민과 불만도 많은 위험한 천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영변도호부사로 발령을 받자(1769년) 아들과 사위를 데리고 함께 묘향산 여행을 한다. 멋진 모습이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런 일이 아닐까. 깨달음과 변화가 찾아오도록 자극도 주고 기다려도 주는 것.
"세상의 부조리로 인해 내 능력을 인정 받을 수 없다. 잘해야 허접한 하급관리(중략) 이관상은 이 조숙한 사위에게 실제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허접한 관리라도 얼마나 힘이 있는지, 권력과 지위를 가진다는 것, 직업을 가지고 사회인이 된다는 것만으로 그의 세계가 얼마나 넓어지고, 다양한 가능성을 던져주는지를 말이다. (중략) 박제가는 관리라고 해서 모두 탐관오리가 아니고, 선량하고 목표의식이 분명한 관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도 보았다." (77~8쪽)
박제가가 간장담그기를 주장했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중국의 식당 문화가 번성한 것을 보고 우리의 현실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할 개선이 무엇인지를 생각한 결과였던 모양이다. 비슷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행을 통해 특별히 참고할만한 일들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유럽이나 뉴질랜드를 돌아보며 꼭 도입했으면 하는 제도가 있었다. 원형교차로다. 시골에 살다 보니 한가한 길을 자주 가는데, 신호등이 자꾸만 갈 길을 막는다. 이 신호등을 전부 원형교차로로 바꾼다면 기름과 전기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 더러워서 입에 댈 수 없는 것이 (조선의) 간장이다. .... 메주 만들 시기가 되면 원근 여러 지방의 콩을 모아 합쳐서 찌는데, 콩이 많아서 다 깨끗하게 씻지 못한다. 주는 사람도 가려서 주지 않고, 받는 사람도 씻지 않아서 모래나 좀벌레도 섞여 있다. (중략) 온몸에서 흐르는 땀이 다리를 타고 발밑의 콩에 떨어진다. (중략) 나라에서 관청을 설치해서 장 만드는 것을 감독하고 편리한 기구를 사용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러면 만 섬이나 되는 콩도 깨끗하게 할 수 있다." (북학의 / 내편 / 장(醬) 중에서 / 148쪽)
수레의 발전이 결국 자동차로 귀결되었지만 18세기에 수레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대단한 의미가 있었다. 바로 바퀴 때문이다. 튼튼하고 가벼운 바퀴를 만들면 좋은 수레를 만들 수 있고, 그 수레를 통해 물품의 이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수레의 발전은 또한 도로의 발전도 추진해야 한다. 토목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조세로 걷는 쌀을 운반하기 위해 주로 배를 썼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수레와 도로가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중국의 수레를 보며 우리의 기술력의 미진한 부분을 짚어내었다. 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수레의 이점을 전혀 모르고 배도 제대로 다 이용하지 못한다. 새어드는 물을 막지 못하고, 빗물도 막지 못한다. 짐도 많이 싣지 못하고, 탄 사람이 편지 못하고, 배에 말을 태우면 아주 위태로우니 배의 이점을 한 가지도 이용한 것이 없다." (북학의 / 내편 / 배 중에서 / 178쪽)
더 중요한 글들이 많을 텐데 유독 이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이덕무와 유득공이 찰방을 거쳐 현감으로 승진하는 동안 박제가는 오래도록 검서관으로 지내다가 사직을 하고, 중국에 다녀온 후 부여 현감이 되었다가 파직된다. 다시 영평현평으로 부임했을 때 1800년 6월 28일 정조가 사망한다. 그 이후 신유박해로 이어지는 과정이 단순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남인 시파를 중심으로 박제가, 이가환, 정약용 등 수많은 정조의 인물들이 죽거나 귀양보내진다. 조선의 암흑기가 시작된 것이다. 정조의 어린 아들 순조와 어리석은 여인을 앞세우고.
"정순왕후(15세)는 1759년에 영조(66세)와 결혼했다. (중략)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는 졸지에 열 살이나 어린 소녀를 시어머니로 맞게 되었다. 1762년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고, 정순왕후의 친가인 경주 김씨 세력과 혜경궁 홍씨 일가인 홍봉한 세력이 정치적으로 대립(중략) 정조의 치세는 (정순왕후에게) 고통의 시기였음이 분명하다. (중략) 정조가 사망하자 벽파가 바로 정순왕후를 추대해서 수렴청정을 맡긴 것은 그녀의 한과 본능적인 정치적 야심을 간파한 것(중략, 그녀는) 짧았던 수렴청정 기간 동안 과격한 숙청의 칼을 휘둘렀다. 첫 희생자는 정조의 외척이자 최초의 세도정치가라고 불리는 홍국영 세력이었다. (중략) 1801년 1월, 홍국영이 숙청되지마자 바로 신유사옥이 발생했다. (중략) 남인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로 이어졌다." (279~280쪽)
정순왕후는 죽기 직전 박제가를 귀양에서 풀어주었지만 1805년 귀양에서 돌아온 지 1년 만에 사망한다. 박제가는 서얼로 태어나서 불우했다고는 하지만 22년간 검서관으로 현감으로 지내며 중국 사행을 네 번이나 다녀온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백탑파의 그들은 기울어져 가는 조선을 일으킬 수 없는 운명이었다. 정조라는 비운의 개혁 군주와 함께 젊은 한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을 것이다. 세상은 어차피 조금씩 발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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