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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쟁기 끄는 소녀를 보라_한국근대사 산책 1권_강준만 2007_180510, 취띠예르그

오랜만에 강준만 교수의 책을 읽는다. 그의 인물과 사상을 오랜 시간 구독했고, '김대중 죽이기'를 통해 그가 어렵게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을 보았으며, 토론에서의 활기차고 분명한 모습을 봤다. 그의 글은 마치 신문기사처럼 읽기가 쉬워서 내가 그가 된 기분이다.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누군가에게 글로 전달할 때 이렇게 쉽고 편안하게 전달할 수 있다니 부러운 일이다. 그가 신문방송학과 교수이어서 그런 것인가.


무려 18권 분량의 '한국 현대사 산책'을 내놓은 데 이어 다시 15권 분량의 '한국근대사 산책'을 내놓는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중심으로 분석과 해석을 하는 그의 특성으로 분량이 많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머리말에서 근대사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서 말한다. 과거 역사의 잘잘못을 일일이 다 후손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과연 실천 가능한 일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지만 결론은 이렇게 내린다.


""과거에 겪은 시련과 고통이 밑거름이 돼 오늘의 성공을 이루었기 때문에 진실을 말하는게 오히려 더 큰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쪽을 선호한다. (중략) 개화기도 그렇지만 특히 일제강점기에 겪은 우리의 시련과 고통은 가끔 혈압을 오르게 할 만큼 분노와 비애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나는 독자들께 요청드린 자세를 확실하게 갖춘 덕분에 그런 분노와 비애마저, 오늘에 감사드리고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자신감을 갖는 데에 도움이 되게끔 소화해낼 수 있었다." (5~6쪽)


강준만은 한국 근대사 연구가 범위도 광범위하고 전문 분야별로 연구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어서 1차 자료를 읽을 시간이 없어 2, 3차 자료를 중심으로 이 연구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미국의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의 재치 있는 표현인 '익은 과일 따기'의 중요성과 효과를 기대한다고 한다. 익은 것을 따더라도 '무엇을 따서 어디에 놓을까'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역사의 현재화'를 이야기하면서 "외세와 자주의 19세기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고, 반미도 친미도 아닌 용미의 시각에서 국론통일을 이뤄야 한다(하영선)"며 전문 연구서와 함께 그의 특기인 다양한 신문기사와 칼럼을 광범위하게 인용해 연구했다고 한다. 매우 긴 여정이지만 흥미롭게 진행될 것이다.


"김영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다르다는 허영을 버'리고 '실없는 지적 독창성을 치닫'지 않는 게 '공부의 요체'일 수 있다. (중략) 과거의 복잡성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복잡성과 전혀 다를 바 없으며 현재라는 변수가 더해져 현재보다 오히려 더욱 복잡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다." (11쪽)


제일 처음 다루는 사건이 천주교의 도입과 당파 싸움으로 증폭된 박해다. 개화기 시절 글 좀 읽었다는 윤치호의 프랑스 대혁명(1789년)과 동학혁명(1895년)을 비교 평가하는 대목은 기가 막힌다. 조선 후기, 수많은 농민들이 겪어야했던 참혹한 수탈과 박해를 모르지 않을텐데도 이런 인식을 갖는다는 것이 놀랍다. 우리의 과거들은 일하다 죽고,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맞아 죽어서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든 양반도 아니고, 탐욕스러운 죄인 양반 몇 명에 대한 백성들의 징치가 그렇게 문제가 되는 것일까. 인간의 존엄성에 비추어 모든 생명을 다 귀하게 여겨야겠지만, 윤치호는 한반도에 살면서 타인의 삶과 생명에 대해서 이렇게 밖에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배운 바보인가 장님인가. 쟁기끄는 소녀를 보라. 


"그들(동학당)은 어디에서나 양반들에 대해 극도의 증오심을 나타내었다. 동학당들이 양반들을 다룸에 있어 보여준 잔인성은 (프랑스) 혁명 당시 프랑스 귀족들이 겪었던 유혈적 폭력사태를 연상시킨다" (30쪽 윤치호의 일기 중에서)




천주교의 순교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서민들의 극한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배우지 못하고, 현재는 고통스럽고, 미래는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뼈와 살을 깎아가 버리는 타인들로부터 그들은 이렇게라도 저항하고 해방되었다.


"(병인박해에서) 배교하지 않고 순교한 수는 78명으로 남녀 비율은 남자 하나에 여자 둘이었다. 이는 여자의 신앙심이 더 깊었다는 증거지만 (중략) 학식 많은 여신도 한성임은 "미련한 여인들은 겨우 한 구절의 성서만을 외우고는 바로 세례를 받는다. 그리하여 천당에 갈 줄 알고 기꺼이 죽임을 당한다. (중략, 이규태는) 그들은 억눌려온 '모럴'에 저항했고 또 그토록 가혹한 고문을 감당해냈으며 사지를 찢기우면서도 웃으며 죽어갈 수 있었다. (중략) 여성이 당한 사회적 구속에 대한 반발이요 저항이었다. 천주학은 말하자면 그 레지스탕스에 어떤 계기를 만들어주었다고도 볼 수 있다." (96~7쪽)


비누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새로운 문물은 모두가 신기하겠지만 말이다. 조선 보다 세 배나 비싼 쌀을 석유와 화장품, 광목과 비누로 바꾸어 헐값에 사 간 일본 상인들은 풍요로웠을 것이다. 안그래도 어려웠던 조선의 백성들은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무관세로 들여오는 일본 상품에 귀한 쌀을 마구 내 줄 수밖에 없었다. 양반 지식인들은 통상이 이런 상황이라고 한탄하면서도 무엇을 어찌해야 할 지 몰랐다.


"팥이나 녹두 가루가 몸의 때를 밀어 꺠끗해지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날 팥이나 녹두에서 풍겨나는 날 비린내는 몸을 씻고 물기를 닦고 나서도 좀체로 가시질 않았다. (중략) 뛰어난 성능과 더불어 좋은 냄새까지 나는 비누는 매우 신기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중략) 프랑스인 주교 리델이 체포되었다. (중략) 그는 자신이 비누거품을 내고 얼굴 씻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던 포졸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 비눗방울 놀이를 보여주었다. (중략) 그랬더니 포졸 40여 명이 그걸 흉내내 제각기 밀짚대 한 토막씩 들고 비눗방울을 날리며 어린애들처럼 좋아했다고 한다." (16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