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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걷기 여행이라_11년, 걸어서 지구 한 바퀴_180516, 쓰리다

우리 역사의 비극이었던 516 쿠데타. 어떤 이들은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을 모른다. 쿠데타로 집권하고 폭력으로 지배했던 아버지는 부하가 쏜 정의의 총탄에 맞아 죽었고, 그의 딸은 똑같이 대통령이 되었다가 촛불의 힘으로 감옥에 갇혔다. 그런 날을 견디어 온 시민들은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한가로이 대한민국의 평화를 즐긴다.


지구 한 바퀴를 걸어서 도는데 걸린 시간은 11년. 캐나다 사람 장 벨리보는 아내의 격려와 사막의 아름다움에 취해 그 시간을 걸을 수 있었다고 한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젊은 친구를 만났는데, 지난 10년 동안 책 읽을 시간이 없었다는 내 말에 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영혼을 살찌울 게 아무것도 없었단 말이에요?" 정말 모르는 소리였다. 내 영혼은 차고 넘치도록 살이 쪘다. 내가 걸어온 길은 너무 매혹적이어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길을 통해 소화하기도 버거울 만큼 많은 것들을 읽었다. 혼자서 사막을 읽었다. (중략) 그건 가장 진실하고, 가장 훌륭하고, 가장 위협적인 이야기였다." (320쪽)


사람은 실패하면 스스로를 돌아본다. 돌아볼 때, 자신의 몸에 집중하면 좋다. 그래도 내 몸은 내 생각을 받아준다. 그 몸이 건강하고 활용 가능할 때, 머리 속에서 그렸던 꿈을 실현해 보려는 의지가 생긴다. 설사 몸이 건강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하려고 하면 된다. 몸과 생각이 일치와 불일치의 널뛰기를 하면서도 하나로 묶여서 움직여 갈 때 인생은 살아진다. 어려움이 없다면 무슨 행복이 있겠는가. 고통을 받아들이고, 행복과 즐거움을 만들어 가자. 그것이 인생이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걷고 달리기 시작했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느낌이 드니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마치 내가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세계는 내 몸뿐인 것 같았다. (중략) 조깅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어디까지 더 갈 수 있을까? 그리고 거리를 계산해 보기 시작했다. (중략) 나는 5개 대륙을 횡단할 것이며 쉬지 않고 달리면 6년이 걸릴 터였다. 몸속에 새로운 힘이 퍼져나가는 느낌이었다." ( 17~9쪽)


그의 서술은 건너뛰기다. 11년 동안을 걸으면서 마음의 풍요로움을 얻어서 그런지 굳이 수다떨지 않아도 풍요롭다. 재미있는 것은 그는 조깅을 하다가 세계 여행을 생각을 했고, 당연하게 달려서 세계 여행을 하기로 마음 먹었으나, 너무 고통스러워서 걷는 것으로 바꿨다고 한다. 지원팀이 있다면 달리기도 가능한데, 짐을 끌고 다녀야 해서 불가능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겁은 좀 나지만 자전거 세계 여행의 꿈이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십대 후반, 사실 무서울 것이 없고, 아쉬울 것도 없는 나이 아닌가. 거칠 것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캐나다를 떠나오기 전에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사회에 먹히느니 아프리카의 사자들에게 먹히겠어. 그러면 적어도 자연에 보탬이 될 테니."

얼마나 철딱서니 없는 생각이었던가! (중략)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 기쁘고 안심이 되었고, 잔뜩 겁에 질려 벌벌 떤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괜히 거들먹거리며 당당하게 말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난 평화를 위해 걷고 있다고요!"

그건 여행을 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 자신을 설득하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몇 주 동안 몰려드는 피로와 고독 속에서 내가 왜 계속 걸어가는지 잘 모르겠다는 무력감에 빠졌다." (118~9쪽)



  

따뜻한 마음으로 공짜로 잠을 재워주는 사람들이 가장 좋은 사람들이다. 장에게도 나에게도.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아무리 선량해 보이는 여행자라도 선뜻 우리집의 방 한 칸을 내어줄 수 있을까. 뭔지 모를 불안과 불편 때문에 그러기가 쉽지 않다. 5천 달러 남짓의 돈으로 11년 동안 세계를 걸어다녔으니 대단하다. 한국을 축제처럼 지나갔다고 하는데, 인삼밭을 하던 농부가 말한 일본이 더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라는 말만이 남겨져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천재아들의 평이 더 재미있다. 왜 50대 아저씨들은 이런 식으로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매우 힘들고 불편한 상황을 감수하면서. 왜 그럴까. 극한의 고통 속에서 지극한 기쁨이 만들어지는 것일까. 가난하지만 정말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일까. 사막 속에서 홀로 기도하면 정말로 마음의 평화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행동하기 때문이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