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시리얼과 커피로 아침을 깔끔하게 먹고 자그레브 시내로 출발~ 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관광하기에는 최악의 상황이다. 3년 전 터키여행을 위해 소사역 옆에 있는 구두가게에서 산 겨울 단화가 찢어져 빗물이 샌다. 털도 북실북실하고 바닥도 미끄럽지 않아서 여행 때마다 아주 유용하고 따뜻한 신발이었는데 벌써 작별할 시간인 모양이다. 15,000원 주고 샀으니 그럴만도 하다. 우주신의 겨울 운동화도 상태가 좋지 않다. 물주이신 그리미의 결단에 따라 크로아티아산 신발을 사기로 했다. 마침 이곳은 가죽공업이 발달한 나라이고, 크리스마스 시즌이 지나서인지 세일도 하고 있다.
숙소 바로 앞의 신발가게로 갔다. 두 분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이하시는데 대화는 통하지 않으니 손짓 발짓으로 대화해야 한다. 게다가 이곳의 신발들은 mm가 아니라 인치 inch(?)로 신발 크기가 표시되어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디자인은 특별하지 않으면서 투박하고 튼튼하며 따뜻하면서도 저렴한 신으로 골랐다. 발이 큰 우주신은 우리 나라에서는 드문 285mm를 신어야 하는데, 여기에서는 걱정없이 디자인을 고를 수 있었다. 그런데, 특별히 고를만한 디자인은 눈에 띄지 않았다. 게다가 환율을 계산하기 어려우니 가격에 대한 감각도 떨어진다. 어쨌든 두 켤레를 사서 나란히 앉아 신었다. 기분이 좋다. 아침부터 두 켤레나 새 신발을 사고 나니 우리도 기분이 좋고, 말도 통하지 않는데 판매에 성공하신 아주머니 두 분도 표정이 매우 밝아져서 더욱 좋았다. 날씨가 나쁠수록 서로 즐겁게 위로하며 살아야 해.
트램을 타고 자그레브 요시파 옐라치차 광장 Trg Josipa Jelacica 으로 갔다. 트램 안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10시가 거의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 출근시간대를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겨울이라 출근시간이 늦어진 모양이다. 러시아워의 2호선 신도림역을 출발하는 기차들처럼.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사람이 많을 수가 없다. 어쨌든 사고 없이 잘 타고 왔다.
반 옐라치차 Ban Jelacica (ban : 총독)는 크로아티아의 자치권 확대를 위해 184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싸웠지만 패배한 크로아티아의 민족 영웅이다. 그의 동상이 세워지고 광장에도 그의 이름이 붙여졌는데, 제2차 세계 대전 후 티토 대통령이 발칸의 평화를 위해 민족주의가 너무 강하다는 이유로 옐라치차 동상을 내리고, 광장의 이름도 ‘공화국 광장’으로 바꾸었다. 그러다 1991년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로비아로부터 독립한 후, 광장도 예전의 이름을 되찾았고 창고에서 잠을 자던 그의 동상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안타까운 역사는 햇살을 받아 빛나는 옐라치차 동상의 늠름한 모습과는 다르게 전개된다.
민족주의는 유럽에서, 히틀러가 아리안 혈통과 게르만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참혹한 학살극을 벌임으로써, 차별과 학살의 상징이 되었다. 히틀러와 민족주의의 폭력에 반대하며, 평화와 화합으로 발칸반도의 통합을 추진했던 티토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은 비극적으로 다시 한 번 증명된다.
유고 연방이 해체되면서 각 민족은 스스로의 국가를 세운다. 행복한 시절은 잠깐이고, 히틀러가 그랬던 것처럼, 종교와 민족의 이름으로 내전과 학살이 다시 한 번 재연된다. 슬픈 역사는 왜 이렇게 반복되는 것일까. 이것 아니면 안된다는 강력한 신념이 종교나 민족주의와 결합되면 강력한 폭력성을 갖게 된다. 어떤 반대의 목소리도 용납되지 않는다. 보스니아와 사라예보,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에서 발칸 반도 전역에서 인종 청소와 종교인 살륙이 벌어진다. 끔찍한 일이다. 이제 발칸반도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더 이상의 분쟁이 없기를 빈다. 이라크, 시리아, 아프카니스탄, 예멘, 수단 등등등.
신의 뜻이 전쟁이라면, 인간의 의지로 기원한다. 평화를 ~
먼저 유심칩을 사기 위해 관광안내소로 가서 안내를 받고 지도를 받았다. 통신문제 해결이 급선무다. 제법 큰 휴대폰 판매장인데도 사람이 많다보니 대기 시간이 길다. 우주신에게 유심칩을 사는 권한과 돈을 주고, 우리는 내일 빌릴 계획인 렌트카 회사를 알아보기로 했다. 비엔나에서 미술관을 도느라 이미 발바닥이 부르트게 돌아다녔던지라 조금만 걸어도 발은 물론이고 온 몸이 힘들다. 이슬비도 계속해서 내리니 우산을 접을 수도 없어서 모든 것이 힘든 상태다. 도착한 곳은 렌트카 회사가 아니라 여행사다. 렌트카 회사 직원을 불러서 상담을 받으면 된다고 한다. 또 기다려야 해서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일단 전화번호만 받고, 관광안내소에서 알려 준 다른 렌트카 회사로 가기로 했다. 시작부터 지치기 시작한 다리를 질질 끌고 크리스마스 내음이 물씬 나는 거리를 지난다. 날씨만 좋았다면 예쁘고 분주한 거리라 감탄이 흘렀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휴대폰 판매장에 도착했더니 아직도 유심칩 구입이 끝나지 않았다. 따뜻한 실내에 앉아서 푸욱 쉬었다.
만족스런 가격에 크로아티아 전역을 커버하는 유심칩을 구입해서 충전하고, 다시 시내 구경을 나선다. 광주항쟁 당시 기총 사격을 받은 전일빌딩처럼 오래된 거리의 빌딩들에는 총탄 자욱들이 선명하고, 을씨년한 분위기 때문에 우울함과 피곤함을 한층 더한다. 기차역을 지나서 만난 렌트카 회사는 rentals.com에서 확인한 가격보다 비싼 가격을 부른다. 포기.
오래된 거리를 걸으며 구경하다가 들른 palace hotel. 그 한쪽 편에 렌트카 회사가 하나 더 있었다. 허름한 가게의 렌트카도 비쌌으니 이곳은 더 비쌀 것이겠지만 알아나 보자는 심정으로 들렀다. 어라 싸다. 9일부터 22일까지 빌리는데 70만원 정도를 예상했는데, 45만원이란다. 마티즈급의 차이기는 하지만 가방도 실을 수 있고 4인승이다. full coverage보험에 네비도 무료로 준다고 한다. 일단 예약을 하고 기쁜 마음으로 호텔을 나섰다. 역시 발품을 팔아야 해. 우중충했던 자그레브의 도시 풍경이 확 밝아진다. 그까짓 돈 몇 푼에 좋은 기분을 사버렸다.
다시 옐라치차 광장으로 가는데 배가 고프다. 웨이터 복장을 한 젊은 친구가 다가와서 식사를 하고 가란다. 손님은 한 명도 보이지 않고 장식이 그리 예쁘지도 않은데, 그 친구의 가벼운 유혹이 맘에 들어서 들어가기로 했다. 이것 저것 설명을 해 주는데, 그가 추천하는 데로 뷰렉 세 개를 주문하고 맥주도 한 병 주문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운영하는 가게인 모양이다. 웨이터인 아들은 영어를 할 줄 알아서 손님 접대를 하고, 아버지는 요리를 한다. 보기에 좋았다. 부자지간에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고, 요리도 하고 심부름도 해 가면서. 손님은 우리 밖에 없어도 밝아 보이는 표정들이 좋다.
따끈한 케밥에 구수한 빵이 들어가 있어서 맛있다. 맥주 맛도 좋다. 한 병 더 마셨다. 분홍빛 소스가 매콤하고도 고소해서 자꾸 입맛을 당긴다. 불행이도 다른 곳에서는 이 소스를 맛보지 못했다. 이름도 물어보고 했었는데, 그만 잊어버려서.지금 와서 생각하면, 뷰렉은 특별한 맛이 아니었지만 배도 적당히 고프고, 추운 날씨에 돌아 다니다가 따뜻한 것을 먹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던 모양이다. 밀가루빵을 기름에 살짝 튀겨서 사이에 떡갈비 같은 고기살 저민 것을 익혀서 넣어 주는 음식이었는데, 고기 종류만 조금씩 다르게 집어 넣는다. 야채는 양파 썬 것 조금. 음, 야채값이 비싼 것일까 야채를 안 먹는 것일까.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힘차게 걷는다. 그런데, 이 식사는 배가 잘 꺼지지 않는다. 기름기가 많아서인지 계속배가 부른 느낌이다. 날씨야 도와주지 않지만 오늘의 핵심은 마크 성당이다. 나중에 다시 방문한 마크 성당은 이렇게 예쁜데, 날씨가 받쳐주지 않으니 감동이 살짝 떨어진다. 그런데도 처음 본 타일 지붕의 모습은 매우 환상적이었다. 단순한 문양인데도 독특해서 그런지 눈길이 자꾸 가고, 아름답다기 보다는 예쁜 모습이다.
샌디스크 메모리 불량으로 사진이 전부 날라가 버려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나마 휴대폰에 남아있는 사진이 있어서 추억을 되살려낼 수 있다. 성당을 보고 내려오면서 돌라츠 시장을 들렸다. 활기찬 시장의 모습을 기대했지만 아침 장사를 주로 하는 시장이어서인지 3시경인데도 이미 파장 분위기다. 비까지 주륵주륵 내려서 특별한 무엇을 기대할 수 없었다. 떨이로 파는 계란, 야채, 귤을 사서 양손에 들었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자그레브에 사시는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생각보다 물가가 비싸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도 중국 마켓이 있어서 한국인으로서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으시다고 한다. 최근 들어 한국사람들도 많이 방문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많아 외로움도 덜하다 하니 다행스런 일이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앞서 나가는 분들이 참으로 많다. 유럽의 화약고라는 발칸반도까지 자식 교육을 위해 진출을 하다니, 정말 용감한 한민족이다. 우리는 개척자들의 뒤를 따라 슬슬 여유있게 즐기면 된다.
해가 지면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더 강하게 느껴졌다. 다시 옐라치차를 돌아서 포도주도 한 병과 과자도 사서 얼른 트램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따뜻했다. 배도 부르고 피곤해서 얼른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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