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1월 4일) 발표된 박대통령의 담화는 매우 실망스럽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하면서도 그 잘못이라는 것이 가깝게 둔 사람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불찰이라는 것이다. 여러가지 증언들과 밝혀진 사실들에 의하면 이번 사태는 박근혜 게이트고, 시민들 모두 그렇게 이해하고 있으며, 어제의 오만한 사과로 더더욱 박근혜 게이트를 확신해 가고 있다. 갤럽의 국정지지도 조사에서 역대 대통령 중 최저인 5%를 기록했다고 한다. 자신에 대한 성찰은 물론이고,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할매가 대한민국의 대통령 자리는 계속 유지하겠다는 엄청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뭔가를 약속받고 들어간 김병준 총리지명자도 할매의 앞뒤 안맞는 오기에 황당해 하고 있고, 노느니 염불하러 들어간 이원종과 그 뒤를 이은 한광옥 비서실장도, 쓸쓸한 노년에 활기를 되찾겠다는, 아마도, 노욕을 충족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정국은 어떻게 갈까. 할머니가 하야하고 거국중립내각이 구성된다. 이 내각을 중심으로 개헌과 대선관리가 이루어지고, 차기 대통령과 정부가 출범하는 새로운 공화국이 수립될 것이다. 국정원, 검찰, 군부와 경찰 등 공권력을 쥐고 있는 그룹들은 불안에 떨면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국가에 반란하는 것말고는 할 것이 없는 상황이다. 위험과 희생을 감수하느니, 얼른 석고대죄하고 그동안의 잘못을 모두 공개하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발전에 헌신해야 할 것이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려서 고치러 갔더니 수리비가 14만원이라고 한다. 20만원 주고 산 휴대폰의 수리비용이 이래도 되는 건가 모르겠다. 참으로 계륵이다.
국가를 대표해 정치행위를 했다면, 이런 정도의 일은 했어야, 국민과 경제를 위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시워드의 바보짓(Seward's Folly)'. 먼 미래를 내다보고 한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정치가. 이익에 밝으면서도 사리사욕이 없고, 현명하지만 사소한 명예에 연연해하지 않는 정치가가 없이는 강대국이 될 수 없다.
"나폴레옹 전쟁과 그리스 독립전쟁, 크림전쟁을 잇달아 치르며 러시아는 국력이 소진되었다. 무엇보다 크림전쟁에서 러시아는 (중략) 터키와 손잡은 영국, 프랑스에게 무릎을 꿇었고, 그 과정에서 두 나라의 함대가 북극해까지 진출해 캄차카 반도와 사할린, 그리고 알류산 열도를 일시 점령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는 러시아의 개혁 군주로 이름을 남긴 알렉산드르 2세의 새정부가 '지금 러시아는 대외 팽창을 중지하고 내실을 기할 때다', '북극해와 아메리카 지역은 너무 멀어서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도록 했다.
게다가 알렉산드르 2세가 1861년에 단행한 농노해방은 장기적으로 세금을 거둘 인적 자원을 많이 확보하려는 계산이 깔린 조치였지만, 당장은 농노주들을 위한 거액의 보상금이 필요한 상황을 초래했다. 러시아는 할 수 없이 당시 세계 최대의 금융재벌이던 로스차일드가에서 1,500만 파운드를 연리 5퍼센트로 빌렸으며, 이는 가뜩이나 악화된 러시아 재정에 큰 짐을 안겼다. 점차 '쓸모없는 땅'을 팔아서 자금을 융통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1867년 3월 29일, (중략, 러시아는 미국의) 윌리웜 시워드 국무장관과 협상(하여, 중략) 알래스카를 1에이커당 2센트씩 쳐서 720만 달러에 매각했으며, 이는 요즘 시세로 100만 달러가 조금 넘는다. (중략) 미국에서는 볼멘소리가 많았다. '얼음으로 뒤덮인 황무지를 구입해서 뭐에 쓸 것이냐? 매입 비용은 크지 않았지만, 관리비가 하염없이 들어갈 것이다. 러시아도 관리를 포기하고 우리에게 떠넘긴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매입 협정에 '시워드의 바보짓(Seward's Folly)'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140~1쪽)
미국은 국익을 위해서는 더 무서운 짓도 한다. 아예 나라 하나를 세워 버렸다. 야만의 시대인 제국주의 시대에 있었던 참혹한 일이다. 이런 짓은 박근혜 게이트 보다 더 나쁜 일이었으나, '제국주의'가 국제질서라고 생각했던 야만의 시대였기에 가능했다. 그런 야만의 시대에도 미국 정치가들은 시민을 상대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짓을 하지는 않았다. 박근혜 게이트에 연루되고 춤추었던, 새누리당과 정부, 검찰, 법원, 경찰, 언론 등에 속했던 모든 사람들은 부끄러워 해야 하고, 부역한 모든 사실들을 공개하고 자리에서 즉시 물러나야 한다. 물론 이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몰라서 절대 그러지 않고, 희생양을 때리며 또다시 정의의 편인양 행세할 것이다. 영화 '내부자들'의 대사처럼 '좃'될 때까지 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좋은 가방을 들고 머리를 빗어 넘기고 있다.
"제 생각으로는 파나마를 꿰뚫는 운하를 파는 일은 루이지애나 매입이나 텍사스 병합에 견줄 만한 사업입니다.' 1903년 (중략) 시오도어 루스벨트가 쓴 편지의 일부다. (중략)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잇는 가느다란(약 100km) 땅에 운하를 파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하나로 연결하고,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기 위해 저 멀리 남쪽 마젤란 해협을 돌아가는 뱃길을 획기적으로 단축하자는 생각은 루스벨트가 처음 한 게 아니며, 미국이 처음 그 사업을 시도했던 것도 아니다. (중략) 당시 파나마는 지금처럼 독립국이 아니고 콜롬비아의 한 지방이었다. (중략) 미국은 파나마 운하 건설 지역을 영구 조차하며, 그 대가로 콜롬비아에 1,000만 달러를 일시불로, 25만 달러를 연간 임대로료 지불한다.
(중략) 하지만 콜롬비아 정치인들과 국민 대다수는 이 협정을 '매국행위'로 비난했으며, 결국 상원에서 비준이 부결되었다. 화가 치민 루스벨트는 무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중략) 바로 파나마 지역이 콜롬비아에서 분리 독립하는 일을 암암리에 돕는 것이었다. (중략) 마침내 파나마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파나마 철도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미군을 출동시켰다. 1930년 11월 6일, 루스벨트는 반란 사흘 만에 파나마를 국가로 승인했다. 11월 18일에는 신생 정부와 파나마 운하 협정을 체결했다. 콜롬비아에 애초 제의했던 조건과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 (141~4쪽)
오늘(12월 2일) 다시 선지자 무함마드의 승리와 후다이비야 조약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다. 그는 종교를 바탕으로 정권을 잡았다. 신의 뜻에 따른 것이라 믿을 수밖에 없을 정도의 노련한 정치행위로 원하는 것을 얻어 내었다. 이슬람에 의한 안정된 역사의 시기가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시작은 폭압이었지만 관용으로 선회하는 특성이 강한 이슬람식 통치 때문이다. 선지자 무함마드와 같은 정치 천재가 강력한 정치철학을 뿌리깊게 심어 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정치천재들은 이제 몇 백년을 기다려야 이 땅에 다시 태어날 것이다.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은 겨우 10여년을 버틴 정치 수재들이었다. 대한민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서는 세 사람을 뛰어넘는 더 큰 정치 천재가 나와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정치는, 너무 많은 시민들을 이끌고 목표로 나아가는, 지구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고단하고도 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수재도 되기 어려운 이런 힘든 정치에 입문했다가 절망한 정치가들은, 99.999% 사익이나 챙기는 수준의 정치꾼으로 변신할 수밖에 없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엇박자가 생겨버린다.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의 한계 상황을 이해한다.
"610년, 평범한 목동 출신인 무함마드(570~632)는 40세의 나이로 "대천사 지브릴(가브리엘)에게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중략) 메카에서 시작된 무함마드의 전도 활동은 쿠라이시족을 중심으로 하는 반대자들의 박해 끝에 622년에 메디나로 도피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이것이 나중에 '헤지라'라는 이슬람력의 기원 연도가 되었다. (중략) 오호도 전투에서는 무함마드가 부상을 입고 한때 전사했다는 소문이 나도는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놀라운 카리스마로 교도들을 이끌며 메디나의 사실상 지배자가 되었고, 최대 적이던 쿠라이시족 중에서 세력이 상당한 마하즘 가문, 우마이야 가문 등을 회유해 그들 집안 여자들과의 결혼으로 세력을 키웠다. 그는 유대교도와 기독교도 집안에서도 아내를 얻어 자신의 가족과 세력을 동시에 확장시켰다.
627년에는 (중략) 메카의 1만 대군이 메디나를 포위 공격해 무함마드가 헤지라 이래 최대 위기에 처했지만, 그를 따르는 3,000명의 이슬람군이 참호를 파고 악착같은 방어전을 펼쳐 마침내 메카군을 후퇴시켰다. 이 '참호의 싸움' 이후 메카와 메디나의 세력 관계가 역전되기 시작해 이슬람 진영의 힘과 사기는 날로 강력해졌다.
헤지라 6년(628년) 무함마드는 "꿈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신도들에게 말했다. 메카의 카바 신전에 참배하라는 것이었다. 카바 신전은 아득한 옛날부터 아랍인들의 성역이자 다신교 신앙의 중심지였다. 무함마드는 다신교를 부정하면서도 카바 신전에 대한 아랍인들의 숭배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중략) 약 2,000명의 신도들이 그를 따라 하얀 순례복에 비무장으로 길을 나섰다. (중략, 후다이비야 조약 체결의 결과) '하나님의 계시'로 시작되었고 목숨까지 걸 각오로 이루려 했던 메카 순례를 적어도 올해는 포기해야 한다는 점도 불만이었다. (중략) 무슬림들에게 더 굴욕적이었던 것은 조약문 자체가 아니라 공동 서명에서 불거졌다. 조약안에 합의한 다음 (중략) '하나님의 사도인 무함마드'라고 서명하려고 하자 수하일이 이를 거부했던 것이다. (중략) 별것 아닌 호칭 문제 같지만, 이는 당시 메카와 메디나가 전쟁을 벌이게 된 가장 중대한 문제일 수도 있었다. 무함마드라는 사람이 정말 하나님이 보낸 사람인지, 아니면 단지 사기꾼인지가 근본적인 쟁점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무슬림 협상대표가 서명을 거부하자) 무함마드가 그의 손에서 펜을 빼앗아 '무함마드 이븐 압둘라'라고 서명했다. 이로써 후다이비야 조약이 체결되었다.
(중략, 7년간의 헤지라 순례 동안) 무함마드는 몇 년 전에 메카의 박해를 피해 달아났던 목동 출신의 광신도가 아니었다. 메카 시민들은 "우리는 모두 평등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귀족도 노예도 없습니다"라는 청산유수의 설교와 무함마드의 원숙한 카리스마에 감격하여 무릎을 꿇었다.
후다이비야 조약은 불평등조약이었다. 하지만 이 조약 체결 자체가 일부 조항의 불평등함을 덮고도 남을 만한 가치를 무함마드에게 부여했다. 무함마드는 곧 승리의 표상이 되었다. 뭔가를 놓고 협상을 벌일 때는, 특히 그 상대와 조금 전까지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싸웠다면 자연히 상대의 선의를 믿지 않으며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려고 혈안이 된다. 그것이 쉽지 않다 싶으면 곧바로 다시 칼을 빼 든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려 세 걸음을 앞서가는 결단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런 점에서 무함마드는 '예언자'였다." (33~44쪽)
역사의 과오에 대해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은 아직도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일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를 알아야 반박을 할 수 있는데, 귀찮다. 언젠가는 그래야 할 날이 오겠지만 말이다. 남극(지구 민물 매장량의 90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다) 조약과 관련된 부분에서 오늘(16/11/22) 한 가지 참고할만한 내용을 읽었다.
"국제적으로 두루 인정되는 영유권 근거는 1884년 베를린 의정서에서 수립된 '실효적 지배'였다. 즉, 그 땅을 실질적으로 점령하고 영토의 일부로 관리하고 있느냐 하는 것인데, 이 조건을 만족시킬 국가는 전 세계에 아무도 없었다. 아르헨티나나 칠레가 자국민 수십 명, 많게는 100여 명이 남극에 상주하고 있음을 내세웠지만, 소수의 민간인이 거주하는 것과 그 땅을 관리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히말라야 산맥에 많은 등산객을 보낸 나라가 히말라야의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듯이! (중략) 칠레의 훌리오 에스쿠데로가 '남극을 인류 과학 탐사용으로면 활용하며, 어떤 나라도 주권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중략) 1959년 12월 1일, 12개국이 남극조약에 서명했다.
제1조 이 지역은 평화적 목적으로만 활용될 수 있다. (중략)
제4조 이 조약은 영토 주권에 대한 어떤 주장도 승인하거나 청구하거나 논의하지 않는다. 이 조약이 유효한 동안은 어떤 영유권 논의도 거부된다." (28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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