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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그들은 어떻게 돌아갔을까_페르시아원정기_150825~151001 C594

Kyrou anabasis.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세노폰의 이야기다. 페르시아의 퀴로스로부터 용병으로 와 달라는 부탁을 받고 소크라테스의 충고를 교묘하게 피해서 소아시아로 건너갔다가 에우프라테스강까지 행군한다.

 

전쟁의 비참함은 핵이 지배하고 있는 지금이나 청동으로 만든 무기를 쓰던 옛날이나 조금도 다름없다. 여기서의 '비참함'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읽으면 평안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비참하다는 것은 어떤 한 사람이 며칠 동안 한 끼도 먹을 수 없는 상태에서 땡볕이 내리쬐는 참호에 간신히 살아있다가 녹슨 청동칼에 한 번, 한 번, 한 번, 또 한 번, 한 번, 한 번, 한 번, 또 한 번 한 번 한 번 쯤 온몸을 난자당하다가 끔찍한 고통 속에서 살려다라고 울부짖다가 어머니를 목놓아 부르다가 아내를 찾다가 어린 자식을 찾다가 그 얼굴들을 떠올리다가 다시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커다란 돌덩이에 맞아 머리가 깨져서 직사해 버리는 그런 상황이 별로 특별하지 않은 정도의 끔찍함이다. 이렇게 끔찍하게 죽은 사람이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 또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 그렇게 끝도 없이 죽어가서 열 명, 열 명의 열 명, 백 명, 백 명의 열 명, 백 명의 백 명이 되고, 마침내 천 명도 되는 그런 끔찍함이다.

 

초토화 전략을 보라.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집과 오막살이와 장독대와 식량과 옷가지와 이불과 약과 놀이기구 등등 그 모든 것을 불태우고 철수하는 것이다. 적군에게 아무 것도 공짜로 주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도 적군의 처지가 되어 아무 것도 없는 폐허의 공간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내가 승리에 들떠 환호하는 것이 아니고, 먹을 것 입을 것 놀 것을 찾아 헤매다가 좌절하고 만다. 더 끔찍한 것은 계속해서 이겨도 이런 상태는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우리는 무슨 짓이든 해야 한다. 전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대략 2천 필의 말이 지나간 자국으로 보였고, 이 기병대는 전진하면서 꼴과 그 밖에 쓸 만한 것은 무엇이든 불태우는 것 같았다." (64쪽)

 

퀴로스는 대왕인 형에게 반란을 일으켜 페르시아 제국을 차지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그리스인들을 용병으로 썼다. 그런데, 용병에 참여하는 그리스인들에게 이 계획을 말하지 않았다. 아마도 머나 먼 길을 가야 하고, 대군을 이끌고 있는 대왕에 맞서 싸운다면 승리를 보장할 수 없었기에 그랬던 모양이다. 그리스인들이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그 때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모든 헬라스인들이 단결했을 때의 이야기고, 지금은 펠레폰네소수스 전쟁으로 모두가 분열된 상황이다. 아직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소크라테스도 살아있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들을 설득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돈이 작동한다. 결국 전쟁도 돈 앞에서는 무력하고, 생명도 돈으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다.

 

"(에우프라테스강에 닿았을 때) 퀴로스는 헬라스인들의 장군들을 불러놓고, 이번에 그들은 대왕을 치로 바뷜론으로 행군하고 있으니 이를 알리고 군사들이 따르도록 설득하라고 명령했다. (중략, 군사들이 화를 내자 퀴로스는) 그들이 바뷜론에 도착하면 각자에게 은화 5므나를 주고, 그가 헬라스인들을 이오니아로 도로 데려다줄 때까지 그들의 급료를 전액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대부분의 헬라스인들은 이 약속에 설득되었다." (56~7쪽)

 

퀴로스의 통은 크고 페르시아는 대제국이어서 사람의 욕심을 끝도 없이 채워줄 수 있었다. 다만, 퀴로스가 제국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이렇게 서두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다. 그의 능력으로 보면 차분하게 준비를 해서 성공 확율을 더 높여서 전쟁을 시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페르시아를 새로운 제국으로 만들 충분한 재능과 비전을 그가 갖추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말이다.

 

"(퀴로스가) 오오, 전사들이여! 내 아버지의 영토는 남쪽으로는 사람들이 더워서 살 수 없고, 북쪽으로는 추워서 살 수 없는 곳까지 이르고 있소. 그 중간에 놓여 있는 모든 나라를 내 형님의 친구들이 태수로 다스리고 있소. 만약 우리가 승리하면 나는 내 친구들이 이 나라들을 지배하게 할 것이오. 그러니까 나는 거사가 성공할 경우 친구들에게 빠짐없이 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갖지 못할까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나눠줄 친구를 충분히 갖지 못할까 염려하는 중이라오." (68쪽)

 

엄청난 전력 차이에도 퀴로스는 자신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절에 헬라스인들이 페르시아의 대군을 격파했고, 그가 지휘하는 페르시아 군대는 대왕이 지휘하는 페르시아의 오합지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으리라. 그 용기는 정말로 대단하다. 병력은 12대 1, 전차는 10대 1의 규모로 대적하려 했다. 비율로 이야기 하니 실감이 안난다. 대왕의 군대가 100만 명 많고, 전차도 180대가 많다. 이겼다면, 알렉산더를 능가하는  위대한 대왕이 되어 그리스를 초토화시키고 알렉산더를 태어나지 못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헬라스인들의 수는 중무장보병이 1만 4백 명이고 경방패병이 2천5백 명이었다. 한편 퀴로스 위하의 비헬라스인들의 수는 10만 명이었고, 낫을 단 전차가 20대 쯤 있었다. (합계가 대략 병력 11만 2천9백 명에 전차 20대, 무일) 적군은, 보고에 따르면, 그 수가 120만 명이었고 낫을 단 전차가 2백 대였다. 그 밖에도 기병 6천 명이 있었는데, 이들은 대왕 바로 앞에 배치되었다." (69쪽)

 

결국 퀴로스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는다. 너무나 허무하게 너무나 빠르게 죽어버리니 이게 도대체 뭔가 싶다. 그를 믿고 따르던, 수천 km를 행군해 온 그리스인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퀴로스는 대왕이 헬라스군의 배후를 공격하여 이를 토막내지 않을까 두려워 그를 향하여 돌진했다. 퀴로스는 자신의 6백 명으로 공격을 감행하여 대왕 앞에 배치된 군사들을 이기고 6천 명을 패주시켰다. (중략) 그러나 그들이 패주하기 시작하자 퀴로스의 6백 명도 급히 추격하느라 뿔뿔이 흩어지고 그의 주위에는 극소수만 남았는데, 그들은 주로 이른바 그의 '식탁 친구들'이었다. 이들에 둘러싸여 있던 퀴로스는 대왕과 그를 둘러싸고 있던 밀집부대를 발견하자 갑자기 자제력을 잃고, (중략) 대왕을 에워싼 자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자들이 죽었는지는 크테시아스가 보고한 바 있다. (중략) 퀴로스 자신은 죽었으며, 그를 둘러싸고 있던 자들 중 가장 고귀한 8명이 그의 위에 누워 있었다. (중략) 그렇게 퀴로스는 인생을 마감했다." (75~7쪽) 

 

퀴로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크세노폰은 퀴로스의 뛰어난 점을 설명한다. 약속과 계약을 중요시하여 만드시 지켰다는 것은 위대한 지도자가 가진 품성으로는 평범하다. 악행을 저지른 자나 불의한 짓을 저지른 자를 무자비하게 응징해서 사회질서를 잡았다고 한다. 흠,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좀 더 중요한 부분이 있었다. 상을 엄청나게 과하게 지불했다는 것이다. 맞는 행위였다고 본다. 거의 이상사회에 가까운 통치력을 그의 영역에서 보여주었다. 다만 그와 함께 목숨까지 버릴 줄 아는 용사들은 있었지만, 승리를 가져다 주는 탁월한 책사가 없었던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의 뛰어난 역량은 페르시아에 의한 세계 정복이 이루어졌을 것이고, 그 정복 역시 전쟁이라는 비참한 단계를 거쳐야 했을 것이다. 알렉산더 보다 100년 정도 빨리 세상이 뒤집어졌을 뻔 했다는 이야기다.

 

"누가 정의에서 탁월하기를 바라는 것이 명백하다면, 그는 이런 사람을 불의한 이익을 탐하는 자들보다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중략) 유능하고 올바른 행정가로서 그가 통치하는 나라를 잘 다스려 수입을 늘리는 것을 보면, 그에게서 빼앗기는커녕 거기에 더 많은 것을 엊어주곤 했다. 그 결과 그들은 기꺼이 노력했고 신뢰를 갖고 재산을 모았으며, 어느 누구도 자기가 획득한 것을 퀴로스에게 감추지 앟았다. 그는 분명 드러난 부자들은 시샘하지 않고, 감추려는 자들의 재산을 이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79~80쪽)

 

 

 

용병들에게는 가벼운 응징이 내려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왕도 그렇고 용병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수많은 피해를 입힌 용병들에게 아무 것도 보장되지 않는 항복을 요구하는 대왕에게 그리스인들의 대장 클레아르코스는 답한다. 비극과 장정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머무르면 휴전이요, 우리가 물러가거나 나아가면 전쟁이오." (93쪽)

협상에 성공했다고 생각한 클레아르코스가 방심한 사이에 엄청난 음모가 진행된다. 서로 믿고 전쟁을 끝내자는 클레아르코스의 제안은 받아들여지는 듯 했지만, 배신한 헬라스인들과 냉정한 페르시아의 대왕은 그렇지 않았다. 영원한 적이었던 그리스의 용사들이 그들의 울타리에 갇혀 있으니 곱게 돌려 보낼 필요가 없었다. 다리우스 대왕의 원수도 갚아야 했고, 훗날 다시 그리스를 정벌하려 한다면 자신들의 약점까지 알아버린 이런 적들을 점잖게 살려 보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죽은 퀴로스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을 그런 비열한 전략으로 그리스의 대장들 수십 명을 몰살시켜 버린다. 이런 말까지 미끼로 쓰다니. 아마도 제갈량이라면 절대로 이런 전략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페르시아의 팃사페르네스)우리에게는 당신들과 싸울 수 있는 방법이 그토록 많고, 그중 어느 것도 우리에게 위험하지 않은데, 왜 우리가 그 많은 것 중에 하필이면 유일하게 신들의 눈에 불경하고 인간의 눈에도 수치스러운 짓을 택하겠소? 왜냐하면 신들에 대한 거짓 맹세와 인간에 대한 불성실을 통하여 뭔가를 성취하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궁지에 빠져 있으면서 사악하기조차 한 전혀 구제할 길 없는 자들의 징표이기 때문이오. (중략) 이렇게 담판한 뒤 팃사페르네스는 클레아르코스에게 온갖 호의를 보이면서 자기 곁에 머무르며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초대했다. (중략) 팃사페르네스를 믿어서는 안 된다고 그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클레아르코스는 강력히 주장하여 마침내 장군 5명과 대장 20명이 간다는 동의를 받아냈다. (중략) 장군들은 그렇게 붙잡힌 뒤 대왕에게 끌려가 참수당했다."  (116~9쪽)

 

헬라스의 장군들을 죽게 한 메논에 대한 크세노폰의 평가는 가혹하다. 그의 묘사를 잘 읽어보면 공동체를 위해 절대로 리더가 되어서는 안되는 인물이 누구인지를 판단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말과 행동을 잘 보면 된다.경건하고 진실한 사람들을 유약한 자라고 이용해 먹으려 했다는 말은 새겨둘 만하다. 제갈량처럼 경계해야 한다. 친구를 가장한 누군가가 진실한 당신을 혹시라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텟살리아 출신 메논은 엄청난 부를 공공연히 열망했다. 그는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 지휘권을 열망했고,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명예를 열망했다. 그는 또 불의한 짓을 하고도 벌 받지 않기 위해 가장 힘 있는 자들과 친구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거짓 맹세와 거짓말과 기만이 지름길이라고 생각했으며, 솔직함과 진정성은 어리석음과 같다고 여겼다. 메논이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메논 스스로 누군가의 친구라고 말하는 경우 그에게 음모를 꾸미고 있었음이 밝혀지곤 했다. (중략) 메논은 적들의 재산은 노리지 않았으니, 지키는 자들의 재산은 빼앗기 어렵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친구들은 재산은 지키고 있지 않기에 가장 빼앗기 쉽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자기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또 거짓 맹세를 일삼는 불의한 자들로 알려진 자들은 모두 잘 무장한 사람이라 여기고 두려워했으나, 경건하고 진실한 자들은 유약한 사람이라 여기고 이용하려 했다." (122~3쪽)

 

비겁한 대왕은 약속을 했으면서도 지키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배신자를 그의 그늘에 두지는 않았다. 메논의 비참한 최후가 그것을 증명한다.

 

"다른 장군들이 처형된 뒤에 대왕은 그(메논)에게 사형의 벌을 주었고, 그래서 그는 클레아르코스와 다른 장군들처럼 참수되어 - 그것이 가장 빠른 죽음이라고 생각된다 - 죽지 않고, 고문을 받으며 1년을 더 살다가 범죄자처럼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124쪽)

 

크세노폰은 3인칭 시점에서 Kyrou Anabasis를 서술하고 있다. 현자 호메로스의 서사시풍을 따라 한 것인지 글의 객관성을 높이려는 의도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매우 익숙하게 읽혀서 오히려 현대적이다. 좀 길지만 크세노폰이 스승 소크라테스와 의논한 장면을 기록하고 싶다. 재미있다. 소크라테스는 신을 믿는 현자였다. 조그마한 지식으로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 보다 신을 믿으면서도 현명한 철학자가 되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래서 그는 삶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부러운 일이다.

 

"크세노폰은 서찰(퀴로스의 용병에 참여하자는 친구 프록세노스가 보낸 것 / 무일)을 읽고 나서 아테나이 출신 소크라테스와 이번 여행에 관해 의논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퀴로스가 아테나이인들과의 전쟁에서 라케다이몬인들을 적극 지원해주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만큼 그의 친구가 되는 것은 아테나이 시에 죄를 짓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을까 염려하여 크세노폰에게 델포이에 가서 이번 여행에 관해 신과 의논하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크세노폰은 그리로 가서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여행을 성공적으로 잘 마치고 목적을 달성한 뒤 무사히 돌아오려면 어떤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기도를 드려야 하는지 아폴론 신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폴론 신은 그가 어떤 신들에게 제물을 바쳐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크세노폰은 돌아와서 소크라테스에게 예언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듣고, 그가 여행하는 것이 좋은지 머무는 것이 좋은지 먼저 묻지 않고, 여행하기로 혼자 결정하고 나서 어떻게 여행하는 가장 좋겠는지 물었다며 그를 나무랐다. "하지만 자네가 그렇게 물었으니" 하고 소크라테스는 덧붙였다. "신이 시키신 대로 해야겠지" 그래서 크세노폰은 아폴론 신이 알려준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나서 함선을 타고 떠났다." (127쪽)

 

페르시아의 아르타크세르크세스 대왕과 팃사페르네스의 신마저 이용한 비열한 술책에 백여 명의 장수들을 잃고 실의에 빠진 헬라스인들에게 크세노폰이 나선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동료들을 모아 설득을 하는데, 휴전조약을 파기한 팃사페르네스의 행동을 보고도 어떻게든 그에게 읍소하여 목숨을 부지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그는 헬라스인들에 의해 쫓겨나고 크세노폰은 이렇게 격려한다. 전쟁에 임하는 전사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겠지만, 생애라고 하는 고되고 앞날을 알 수 없는 여정에 나선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참고가 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나저자 이리저리 신경이 분산되니 책에 집중을 못한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수와 힘이 아니라, 어느 편이 신들의 도움으로 더 강한 정신력을 갖고 적군을 공격하러 나아가느냐에 달려 있소. (중략) 전시에 어떤 방법으로든 목숨을 건지려는 자들은 대개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지만, 죽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 불가피한 몫이라는 것을 깨닫고 명예롭게 죽으려고 노력하는 자들은 오히려 고령에 도달하고, 살아 있는 동안 더 행복한 삶을 살게 되지요. 우리는 지금 이런 위기를 맞았으니, 이 점을 명심하고 우리 자신도 용감해야 하거니와 다른 사람들도 격려해주어야 할 것이오." (134쪽)

 

어두운 뒷골목을 걷거나 여행을 할 때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약탈을 하거나 죽이기까지 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평화로운 시기에도 이런 상황인데 전쟁이 일어나면 공포심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온갖 지혜의 말을 늘어놓고 신의와 정의를 외치는 헬라스인들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끔찍한 사람일 뿐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병사들에게 가장 행복한 일이 점령 지역에 대한 약탈이었다고 하니 이런 처참한 지경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도 모두 사람인데.

 

"그들은 요새를 함락했다. (중략) 그러자 끔찍한 광경이 벌어졌다. 여자들이 어린아이들을 아래로 내던지고는 자신들도 따라서 떨어졌고, 남자들도 그렇게 했던 것이다. (중략) 그들은 이 요새에서 사람들은 극소수밖에 사로잡지 못했으나, 소와 당나귀와 양은 많이 노획했다." (199쪽)

 

내륙을 돌아 돌아 마침내 바다(흑해)에 도착한 헬라스인들은 축제를 벌인다. 적대적인 민족들도 많았지만 호의적인 민족들도 가끔 있어서 그들의 도움으로 충분한 식량과 제물을 마련하고, 제우스와 헤라클레스와 그 밖의 다른 신들에게까지 감사의 제사를 올린 그들이 노는 모습은 유쾌하다. 살았다는 것을 즐기고,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었을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 평화로운 일상을 즐기는 것에 대한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가족들을 위해 전쟁터로 나왔으나 그들이 원하는 것은 가족들 품에서 사는 것이었다.

 

"1스타디온 경주에서는 대부분 포로인 소년들이 우승을 다투고, 장거리 경주에는 60명 이상의 크레테인들이 참가하고, 레슬링과 권투와 팡크라티온(레슬링과 권투를 합친 격투) 경기도 열리니 실로 장관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참가한 데다 전우들이 지켜보고 있어 경쟁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말들도 경주에 참가했는데, (중략) 고함 소리와 웃음소리와 응원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208쪽)

 

어떤 가정이나 조직이나 나라가 분열되고 망해갈 때 나타나는 현상은 비슷하다. 좋은 것은 잊어버리고 나쁜 것만을 기억한다. 누구 한 사람이 그러는 것이 아니라 여론에 의해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잠깐 동안은 이런 분열과 혼란을 조장한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그 가정과 조직과 나라는 붕괴되고 만다. 이런 조작과 거짓으로 초래된 불신과 위기를 극복한 가정과 조직과 나라는 번영할 수 있다. 크세노폰은 헬라스인들 속에서 일어났던 위기의 싹들을 무사히 잘라내고 그들 모두를 구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현실에서는 과연 이렇게 쉽게 거짓과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내가 여러분 중 누구에게 미움을 샀을 경우에는 여러분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거나 묵살해버리지 않는 반면, 내가 추운 겨울에 누구를 도와주었거나 그에게서 적을 물리쳤거나 또는 그가 병이 들거나 어려울 때 그를 위해 무엇을 구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경우에는 아무도 그것을 기억하지 않으니, 나로서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소. 또 내가 누구를 잘했다고 칭찬하거나 용감하다고 있는 힘을 다해 존경했을 경우에도, 여러분은 그중 어느 것도 기억해주지 않는구려. 하지만 악행보다도 선행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아름답고 옳고 경건하고 더 흐뭇한 법이오. 그러자 그들이 일어서서 지난 일들을 회고했다. 그리하여 드디어 만사가 잘 해결되었다." (253쪽)

 

크세노폰의 페르시아 원정기를 다 읽어 가는데 다소 허탈하다. 페르시아를 차지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 퀴로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나 소크라테스와의 일화가 나오는 수십 쪽을 제외하고는 계속되는 전쟁 이야기라서 그다지 흥미를 끌지 못한다. 기대에 차서 읽었지만 전쟁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던 일리아스를 다시 한 번 읽는 듯한 느낌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흔하게 벌어지는 권력에 대한 욕심, 의견의 차이로 나타나는 오해와 불신들. 그것들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그리는 것인데, 크세노폰의 연설을 통해 그 모든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하는 설정이 현실감이 떨어져 보인다. 어려움 속에서도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의 애절한 마음은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정도다. 집중해서 단숨에 읽지 않고 천천히 두 달에 걸쳐서 읽었던 것도 재미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었겠지.

 

적지에서도 적과 함께 친구가 생기고, 천신만고 끝에 헬라스인들의 영역에 들어왔는데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적들이 또 생기는 상황에서 좌절할수도 있었을텐데, 끝까지 돌파구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기는 해. 가족을 만나러 가야 한다는 병사들의 유일한 희망이 꺾이지 않으니 1만명의 군대가 먼 길을 포기하지 않고 쉼없이 가는 것이겠지. 한편으로 나를 품어줄 수 있는 것은 나라도 민족도 군대도 아니라 오직 가족 밖에는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

 

가족을 위해서 무엇을 하러 떠났지만, 특별히 얻은 것은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결국 가족으로 돌아가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는 진리. 인생은 예나 지금이나 그렇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Women's eyes glistened with tears of joy, and strangers embraced and blessed each other. glisten 반짝반짝 빛나다. 너무 쉬운 단어라도 참고 읽어라. 일부러 어려운 단어를 찾기가 더 어려워서 "Atonement"를 읽으며 모르는 단어를 찾아서 예문을 하나씩 보내는 것이니까. 언젠가는 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안나오면 어쩔 수 없이 복습한다고 생각하고.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려서 그동안 못했던 장구 가락을 연습했다. 이 고비만 넘기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것 같은데, 같은데 하면서 자꾸만 수렁으로 빠지는 느낌이랄까. 과연 언제가 되어야 내 소리에 만족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퀴로스의 용병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해야겠지. 너도 즐겁해 생활해서 우리의 품으로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빈다. 사랑한다, 아들.

 

- 페르시아 원정기(Kyrou Anabasis) / 크세노폰 지음 /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2011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