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가 농원에 내려왔다. 에어컨이 고장 난 버스를 타고 두 시간 반이 걸려서 죽산 터미널에 도착했다. 아침에 마늘밭에 퇴비를 뿌리느라 전화를 받지 못했더니 연락이 안되어 난리가 났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터미널에서 정확하게 만났다. 훈련소에 입대하기 전에 두 분께 인사를 드리고 함께 잠을 자고 싶어하시는 할머니와 자기 위해서 내려왔다고 한다. 내 자식이지만 내 자식답지 않게 사려깊고 배려심이 넘치는 청년이다.
늦은 점심을 먹고 대낮의 땡볕을 피해 휴식을 취한 다음에 4시 반이 다되어서 밭으로 나갔다. 퇴비를 뿌린 밭을 쇠스랑으로 뒤집는 작업을 해야 한다. 밭을 갈기 전에 미리 다 해 놓았으면 안 해도 될 일인데, 남에게 부탁해서 한 일이다 보니 순서를 지키지 못했다. 네 사람이 달려들어서 한참을 뒤집은 끝에 일을 끝낼 수 있었다. 비닐까지 마저 씌우고 싶었는데, 미리 사다놓지 않아서 할 수 없이 금왕에 가서 비닐을 사오는 것으로 오늘 일을 접었다. 넷이서 삼겹살에 자소엽과 깻잎으로 쌈을 싸서 반주를 곁들여 먹었더니 꿀맛이다. 장구치러 향악당에 다녀 왔더니 할머니 침대에서 편안하게 웹서핑을 하고 있었고, 두 분은 거실에서 든든한 마음으로 쉬고 계셨다.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서 샌드위치와 토마토 쥬스로 식사를 하고 밭으로 나갔다. 배추 모종을 심어야 한다. 250포기 정도를 심으니까 일은 많지 않지만 넷이서 거북놀이 노래를 부르며 일을 하니 정말로 하나도 힘이 들지 않는다. 천재는 모종을 심을 구멍을 뚫고 양동이에 물을 받아다가 그 구멍에 채워 넣는 일을 담당했다. 단순하고 힘든 일이지만 즐겁게 끝냈다.
밭둑에 앉아 잠깐 쉬다가 마늘밭에 비닐 덮는 일을 시작했다. 구멍이 촘촘하게 뚫린 비닐을 왜곡되지 않게 잘 펴는 것이 기술의 핵심이다. 비닐 두루말이의 양쪽을 천재와 함께 잡고 아주 천천히 펴 나갔다. 밭의 1/3을 지나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벌써 요령이 생긴 것이다. 단순노동은 처음 시작이 힘들지 적응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천재는 육십이 되면 농사 지으러 내려 오겠다고 한다. 그때가 되면 내가 아흔 살이 되니 누가 농사를 가르쳐 줄 수 있냐고 묻는다. 걱정 말라고 했다. 농사의 주요한 시기마다 불러 내려서 함께 작업을 하게 되면 귀농 전에 농사 기술은 다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평화로운 나라를 잘 유지할 수 있으면 이 소박한 꿈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천재가 떠난 월요일 오후에 수천과 함께 참깨를 턴다. 이미 지난 금요일에 한 차례 털었기 때문에 많이 쏟아지지는 않지만 하얀 참깨알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보니 귀엽다. 탁탁 탁탁 ~ 한 시간 여를 두들기고 있는데, 산 너머 부대에서 저녁식사 시간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린다. 아, 가슴이 짠하게 아려온다. 우리 아들이 저 소리에 지친 몸을 끌고 밥을 먹으러 가겠구나. 탁탁 탁탁 ~ 일을 계속하면서도 이어지는 나팔 소리에 아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 끝없이 솟아난다.
앞으로 저녁 나팔 소리는 내 마음을 몹시 흔들어 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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