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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사는 이야기

서로 달리 유전 되어진 것_150324, 화

지독한 몸살감기로 고생하고 계시는 아버님을 보면서 참 유전이 무섭게 내려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농께서는 일하고 공부하는데에 있어서는 끝없는 자신감과 열정을 가지고 계신다. 평생을 책과 함께 사시면서 책 속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신다. 구분하기 힘든 두 개의 사실이 있다면, 책에 쓰여 있느냐 말로 전해진 것이냐에 따라서 믿음의 강도가 달라지신다. 책에 쓰여진 것은 받아들이시지만 말로 전해진 것은 쉽게 믿지 않으신다. 책에 써 있다고 한다면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으실 분이다.

 

일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시다. 문학과 법학을 전공하셨는데, 사업의 실패로 어쩔 수 없이 배의 기관을 만지는 엔지니어가 되셨다. 전혀 문외한인 분야였는데도 배를 움직이는 거대한 디젤 기관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 소형 디젤 엔진을 뜯었다 조립하는 일을 수십 번 반복하셔서 눈을 감고도 분해 조립이 가능할 정도로 열심히 연구하셨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수천 톤을 들어 올리는 거대한 해상 크레인의 엔진을 직접 수리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셨다. 당신의 실력에 대해 얼마나 자신감이 있으셨던지 직접 수리한 엔진을 시운전 할 때는 책임을 맡았던 기관장도 엔진 폭발의 위험 때문에 전문 업체를 부르자 하셨는데, 본인이 책임을 지시겠다고 하시면서 직접 시운전을 하셨다고 한다. 물론 성공했으니 오늘 날 이곳에서 함께 농사를 짓고 계신다.

 

최근에는 수 년이 걸려야 끝나는 침 뜸 공부를 하시겠다며 팔순이 넘은 나이를 잊으시고 추운 겨울에 멀고 먼 청량리를 매주 다녀오신다. 눈을 뜨실 때부터 잠이 드실 때까지 다섯 권에 달하는 두꺼운 교재를 손에서 놓지 않으신다. 그러시다가 급기야 지난 주말의 꽃샘 추위에 덜컥 독한 몸살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다행이 많이 회복되셔서 주말께는 일어나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아마도 다시 청량리의 교육장으로 달려 가실 것이다.

 

이런 의욕과 자신감을 도저히 말릴 수가 없으니 아들로서 마음이 불편하다. 연세가 드시면 그에 맞게 절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무거운 물건도 주저 없이 달려들어 드시겠다고 하고, 어려운 공부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하시며 달려 드시니,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이런 아버지의 열정은 무일에게로도 전달되는데, 묘하게도 노는 것으로 유전되었다. 공부나 책 읽기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악기를 배우고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일조차 뒤로 미룬다. 뒤로 미룰 수 없는 일은 어떻게 하면 쉽고 빨리 끝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서 단순하게 처리해 버린다. 너무 열심히 놀다가 몸을 상해서 몸살 감기로 드러눕는 것까지 정농을 빼닮았다 할 것이다. 정농께서는 일을 꼼꼼하게 하지 않고 편법을 써 가며 게을리 하는 아들이 못마땅하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서로 다른 열정은 우리 아들들에게도 전해졌다. 큰 아들 천재에게는 철학에 대한 애정으로 전해져서 공부는 열심히 하는데, 운동하며 노는 것을 싫어한다. 아빠가 좋아하는 배낭 여행을 귀찮다고 가지 않을 정도다. 둘째 아들 우주신에게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천문 물리학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졌다. 역시 애비와는 달리 운동을 즐기지 않는 대신에 기계나 프라 모델 만들기를 좋아하고 피아노를 사랑하는 열정은 할아버지에 버금간다.

 

유전은 똑같이 전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유사한 분야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진다. 과도하게 집착하지 않고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열심히 한다면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