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 그러니까 지난 목요일에 시작된 정미기의 고장은 무일농원의 삼자를 분열케 했다. 거래하던 수리센터에서 수리는 못 해주겠다고 하고, 쌀을 받으려는 사람들은 기다리고 있고. 인터넷을 통해 정미기에 대한 대책과 정보를 다시 수집했다.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새 기계를 사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품질의 정미는 할 수 없다. 모든 기계는 도저히 수리할 수 없을 때까지 수리해서 쓰는 것이 최고의 효율을 갖는다. 방향을 바꿨다. 정미기를 수리해 줄 수 있는 인근지역의 정비사를 찾는 것이다. 금왕에 한 사람, 증평에 한 사람. 모두 통화를 하고 금왕 사람을 농원으로 보냈다.
아직도 이런 골동품 기계를 쓰느냐고 하면서 12만원을 받고 정미기를 수리해 주고 갔다. 원인은 벼에 섞인 수많은 지푸라기. 처음으로 콤바인 수확을 해 보아서 작업이 정확하게 이루어지지 못해서 다른 해 보다도 짚이 많이 섞여 있었는데 이것이 원인이 되어 고장이 났다고 한다. 돌 고르는 기계는 수리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새로 구입하면 얼마냐고 물었더니 중고기계값 30만원 보고 140만원에 좋은 기계를 판매하겠다고 한다. 흠.
무거운 마음으로 월요일 천재와 함께 농원으로 출근했다. 천재는 의경 시험을 보기 위해서다. 정미방법을 의논했다. 먼저 짚을 걸러내어 제거하고 정미를 하기로 했다. 화요일 아침 11시면 집을 떠나야 했기에 그전에 일을 끝내기를 희망하며 정미를 시작했다. 수천께서는 걸름망으로 30kg 벼포대의 흑미를 일일이 거둬내는 작업을 맡으셨다. 정농께서는 정미상태를 확인하고 정미된 흑미를 20kg 단위로 받아내는 작업을 담당하신다. 무일은 새롭고 힘든 일이다.
우리의 골동품 정미기는 동네에서 사용한 지 5년도 안되었다는 말을 믿고 10만원(20만원이었는지도 모른다)을 주고 작년에 구입한 것이다. 이 정미기는 파신 분의 말씀과는 달리 최하 10년은 넘은 기계로 이곳 저곳이 성한 곳이 없다. 특히 벼를 정미기로 퍼 올리는 승강기는 벼가 줄줄 세고, 돌을 골라주는 석발기는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다. 석발은 수작업으로 하기로 하고, 승강기는 이용하지 않기로 했다. 승강기 역할을 무일이 맡기로 했다. 200kg이 넘는 벼를 얼굴 높이로 들어올려 정미기에 퍼담는 작업이다. 흠. 뭐, 얼마 안되니까.
정미는 매우 성공적으로 해냈다. 기계가 우리를 도운 것이다. 상쾌한 기분으로 천재를 청주에 데려다 주고 아이들과 공부를 한 뒤에 돌아왔더니 두 분이 찰벼 150kg의 정미를 전부 끝내 놓으셨다. 매우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그대로 두어도 함께 할 수 있는데, 시간에 쫓기시다 보니 몸살이 나도록 일을 하신 것이다. 음.
향악당 선생님은 내 '게갱게' 소리가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퇴보했다고 평가한다. 예술의 길은 험난다.
수요일 아침, 3년 전에 사 두었다가 90% 손실을 보았던 중국원양자원이 열 번의 상한가를 기록한 끝에 드디어 이익으로 돌아섰다. 상쾌한 기분으로 정미를 시작한다. 오늘은 메벼. 좋은 콤바인으로 경험있는 농부가 추수를 해서 짚이 많지 않아 지푸라기는 걷지 않고, 그대로 정미기로 투입하기로 했다. 열가마 300kg 정도 되는 볏가마를 천천히 정미기에 부었다. 처음에는 바가지로 어렵게 퍼서 투입하는 수고를 했는데, 금방 방법을 찾았다. 작은 그릇에 볏가마의 지퍼를 절반만 열어서 벼가 채워지면 정미기에 퍼 넣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더니 일이 한결 쉬웠다. 여유가 생기니 쌀겨와 왕겨 푸대도 무난하게 관리가 되었다. 왕겨 푸대를 잘못 관리하면 왕겨가 넘쳐서 정미해 놓은 쌀로 전부 들어가 버리는 짜증나는 일을 겪어야 하는데 시간 여유가 있어서 잘 관리가 되었다.
정미가 끝난 쌀을 포장해서 제주도와 목포에 계신 어른들께 발송하는 일까지 완료하였다. 그 녀석이 끝까지 나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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