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메벼 벼베기를 의뢰했다. 콤바인 빌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이다. 그런데, 벼를 베다가 우렁이가 빠져 나가지 않도록 쳐놓은 그물과 철근데 콤바인 날이 걸려서 벼를 절단하는 날이 하나 부러졌다. 법률구조공단에 문의했더니 그럴 경우에는 50:50으로 수리비를 정산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더 따지자고 하면 칼날의 감가상각도 계산해서 잔존가치를 절반씩 부담하는 것으로 정리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합리적이라면 수리비의 절반만 청구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말없이 기다렸다. 오늘 수천께서 다녀오셨는데 수리비 40만원 전액을 우리에게 청구했다는 것이다. 음,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동네 사람 상대로 따지기도 그렇고 해서 양보는 했지만 개운하지가 않다. 그나마 예상했던 수리비 보다는 적게 나와서 다행이지 싶다. 지금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돈 20만원이 아까워서일까 아니면 제대로 일 처리가 되지 않은 것에 대한 것일까. 2만원이었어도 물론 기분은 좋지 않았겠지만 20만원이나 되니 더욱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월요일에는 비가 와서 거둬 둔 찰벼를 다시 널어놓았다. 글로 하면 한 줄도 되지 않는 일이지만, 세 시간이 넘도록 세 사람이 꼬박 매달린 일일다. 30kg 포대 32개를 들어 옮겼으니 1톤을 맨몸으로 나른 것이며, 바닥에 네 겹의 천막과 비닐과 그물을 깔았으니 그것도 몹시 힘든 일이었다. 비닐과 천막을 깔 때는 바람이 몹시 불어서 날리는 비닐을 붙잡아 펴느라 일이 더욱 힘들었다.
화요일부터는 밭에 콩을 베었다. 농약은 물론이고 비료도 치지 않고 키울 수 있는 작물이라는 콩이 음성에서는 농약을 치지 않고는 수확을 거두지 못한다. 작년에는 두 번 농약을 쳤고, 올해는 어떻게든 약을 치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정농께서 한 번 농약을 뿌리셨다. 그랬는데도 대부분의 콩깍지가 여물지 못하고 벌레에게 빨리고 말았다. 콩 농사를 짓지 않으면 메주를 만들 수 없고, 간장과 된장, 청국장도 만들 수 없다. 대안은 있다. 논둑에 심은 쥐눈이콩은 약을 주지 않아도 잘 열매를 맺고 있으니 쥐눈이콩을 심고 메주용 콩은 필요한 양을 사먹으면 된다. 어차피 농약 주고 키워야 한다면 풀메는 노동에서라도 해방되어야 한다. 쥐눈이콩은 밥을 해도 좋고, 콩나물을 길러도 좋고, 두부를 만들어 먹어도 좋다. 그밖에 호랑이콩과 울타리콩 등 다른 종류의 콩들을 구해서 심어보는 것이다.
콩대를 자르면서 주변의 잡초들을 같이 제거하였다. 풀들도 내년 봄을 준비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씨앗을 여물게 하고 있었고, 이미 많은 양의 씨앗들을 뿌려 놓았다. 열 개의 씨앗이라도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풀들을 뽑아 밭둑 너머로 던졌다. 농사는 봄에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가을에 시작한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이렇게 내년 농사를 위한 준비작업을 해 두지 않으면 수도 없이 올라오는 풀들을 이겨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틀에 걸쳐 콩대를 모두 밭위에 잘라 널어 두었다. 이제 마르기만 하면 하우스로 옮겨 타작을 하면 된다. 콩타작기를 빌려서 하자고 했더니 얼마 나오지도 않는 콩을 타작기까지 빌려서 뭐 하겠느냐고 하신다. 작년과 재작년의 상황을 보면, 도리깨도 아니고 몽둥이로 두들겨서 콩을 털고 있자니 너무 기가 막힌 일이었다. 물론 양이 많지 않으니 2, 3일 열심히 두드리면 되지만 좋은 기계를 놔두고 왜 그렇게 힘을 들여야 하는지 답답할 노릇이다.
콩타작기도 문제는 있다. 무게가 상당해서 작업장에다 내려 놓으려면 트랙터가 있어야 한단다. 웃기는 일이다. 그래서 포기를 했다가 가만 생각해 보니 트럭 위에서 전기를 연결해 타작을 하면 될 것이다. 마음을 맞춰 농사일을 의논할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삼자협상. 음, 최대의 장애물이다. 설득력. 없다. 부모도 설득을 못하니 어떻게 세상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어제와 오늘은 고구마 밭에 덮여있던 비닐을 제거했다. 우박을 맞아 약해진데다가 고구마를 캐면서 흙더미를 올려 놓아서 비닐 걷기가 보통 어려운 상황이 아니다. 오전 두 시간 반 동안 겨우 한 줄의 이랑에서 비닐을 벗겨 낼 수 있었다. 흙 속에 묻혀있는 비닐들을 호미로 일일이 캐내면서 거둬들였기 때문이다. 비닐을 벗겨내는 것이 아니라 캐는 작업을 했다. 내년부터 고구마를 캘 때는 먼저 비닐을 거둬내고 캐도록 해야겠다. 일의 순서가 틀려도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오후에는 찰벼의 3분의 2를 포대에 담았다. 쥐똥나무 울타리에 햇볕이 가리는 바람이 잘 마르지 않은 부분과 두껍게 깔려 있어서 덜 마른 벼들이 있어서다. 총 21포대 630kg을 쓰레받기로 일일이 포대에 옮겨담고 30kg 포대를 창고로 날라 쌓아두어야 했다. 윗집 할머니가 오셔서 보시고 옛생각이 난다고 하신다. 요즘은 논에서 벼를 바로 팔아 버리니 애써서 말릴 필요가 없으니 매우 좋아졌는데, 우리처럼 깨끗하게 농사지은 쌀은 어디에서고 말릴 수가 없으니 이 고생을 해야 한다. 그래도 2주일이면 된다. 비도 한 번 밖에 맞지 않았으니, 이 정도면 되었다. 장구채를 휘두르는데 팔이 뻐근하여 속도가 안나온다. 흥이 나지 않아서인지 팔이 아파서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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