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은 좋지만 몸은 쉬기를 청한다. 가까운 곳으로 산책이나 갈까 해서 수원의 융건릉을 가기로 했다. 융릉은 사도세자의 묘이고, 건릉은 정조의 묘다. 비명횡사한 아버지를 끝까지 모시겠다는 효심이었던 모양이다. 좋은 날씨이니 차가 밀릴 듯 하여 밀리지 않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승용차로 관악역까지 가서 환승주차장에 차를 대고 열차를 타고 병점역에 가서 버스를 타면 된다는 것이다. 새로 산 모자까지 챙겨서 길을 나섰다.
오랜만에 탐론 18~200 렌즈를 끼우고 삼각대도 챙겼다. 가을날이니 아무리 좋지 않은 렌즈라고 해도 떨림을 방지하면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관악역까지 가는 길은 생각대로 막히지 않았다. 제2경인고속도로 석수 IC에서 불과 5분 거리였고, 전철역도 주차공간이 우리를 위해 단 한 대 남아있던 환승주차장에서 가까워 출발은 순조로웠다. 병점역까지도 열 두 정거장으로 약 30분이 걸리고 약간 혼잡함을 느꼈을 뿐 편안하게 책을 읽으며 이동할 수 있었다.
병점역에 내리니 마을버스가 잔뜩 늘어서 있다. 융건릉 가는 버스가 없다. 나중에 돌아올 때야 알았지만, 병점역에는 두 개의 출구가 있는데, 번화가 쪽으로 내리면 융건릉을 가는 것이 복잡하고, 논밭이 있는 들판 쪽으로 내려야 34번 버스나 마을버스를 타고 쉽게 융건릉과 용주사를 갈 수 있다. 융건릉 앞쪽에도 많은 음식점들이 있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아서 병점역에서 먹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하고 역근처를 배회하였으나 눈에 띄는 독특한 음식점을 찾을 수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맛있는 국수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더니 망해서 문을 닫았다. 블로그가 홍보 수단이 되어버려 제대로 된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아졌다.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라서 독특한 것을 먹고 싶었는데, 역전 근처만 빙빙 돌다가 역앞의 흔한 칼국수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맛집을 찾는 재주가 없는 모양이다. 백반과 칼국수를 파는 집인데, 멸치국물을 진하게 내려서 손으로 뽑아 칼로 썬 듯한 칼국수를 내주셨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맛있게 잘 먹었다. 중국산이였지만 진한 액젓맛이 느껴지는 김치도 괜찮았다. 중국산 김치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이 많은데, 중국 연태에 있는 김치공장을 두 군데 방문해 본 적이 있다. 시설도 훌륭하고 김치를 담그는 과정도 한국의 좋은 김치공장과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시설과 규모였다. 한국의 김치 구매업자들이 들어가서 무조건 싼 것을 찾다보니 허접한 김치가 공수되어 그렇지 제 가격을 주고 사가는 일본업체들에게는 품질이 우수한 김치를 공급하고 있었다. 김치 속에 들어 있는 애벌레를 보고 놀래 자빠지는 도시인들의 심정도 이해는 되지만, 얼마나 깨끗한 김치면 그 속에서 애벌레가 자랄 수 있겠는가. 애벌레는 더러운 벌레가 아니다. 나비의 유충이다. 우리 농원의 배추도 온통 애벌레 투성인데, 그 이유는 배추심기 전 토양살충제를 한 번 살포한 이후로는 난황유와 목초액, 친환경 약제만을 사용해서 애벌레를 완전히 퇴치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좋은 소금, 좋은 물로 아무리 깨끗이 씻어도 깊숙이 들어있는 애벌레는 제거할 수 없다. 농약으로 애벌레가 완전히 제거된 배추김치와 애벌레가 살아있는 배추 김치. 무엇을 먹을 것인가. 전철 출입구를 잘못 나왔어도 밥은 잘 먹었지만 이리저리 헤매느라 버스 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게다가 버스 운전이 험하다. 멀미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 융건릉 한 정거장 전인 용주사에서 내렸다. 용주사는 신라시대에 처음 지어져 오랜 역사를 지닌 절인데, 퇴락된 것을 정조가 융릉을 지으며 중창하여 사도세자의 명복을 비는 능사로 지정하였다. 용주사를 들어서며 보니 사천왕상에 대한 안내문구가 쓰여져 있다. 그동안 절에 들어가며 늘상 보아왔으면서도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왕상에 대해 자세히 소개되어 있어서 오래도록 읽고 사진도 찍어 두었다. 사천왕상은 무서운 외양과는 달리 매우 평화로운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무섭게 칼을 치켜 든 증장천왕은 그 칼로 생명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번뇌를 끊어 주어 지혜와 복덕을 늘려준다. 광목천왕도 부릅뜬 눈으로 적에게 위협을 가할 뿐 상을 주기 위해 용과 여의주를 부린다. 나라를 다스리는 지국천왕도 비파를 연주하며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많이 듣는다는 다문천왕도 평화롭기는 마찬가지다. 연옥의 고통은 어디에도 없다.
1) 지국천왕(持國天王) : 동방을 맡아 나라를 다스리고(治國) 지키며(持國), 손에 비파를 들고 연주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2) 증장천왕(增長天王) : 남방을 맡아 칼(취모검)으로 인간의 번뇌를 끊어 주어 지혜와 복덕을 늘려준다. 3) 광목천왕(廣目天王) : 서방을 맡아 손에 용과 여의주을 잡고, 부릅 뜬 눈으로 나쁜 것을 물리치고 인간의 선악을 살펴 상과 벌을 준다. 4) 다문천왕(多聞天王) : 북방을 맡고 손에는 보탑을 들고 부처님의 도량을 수호하면서 불법을 듣고 인간에게 알려준다.
용주사 경내에는 효행 박물관이 있어서 들어가 보았더니 '부모은중경'의 내용을 목판과 석판, 동판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찍어서 나눠줄 수 있도록 한 정조시대의 보물이 있었다. 목판은 처음보는 것이지만 묵직함과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멋진 글씨와 함께 김홍도가 그린 단아한 그림을 깊이 새겨서 천년이 지나도 쓸 수 있어 보인다. 은중경의 내용 중에서 가장 가슴 아픈 내용은 이것이다. '자식을 위해서 나쁜 일(惡業)도 마다하지 않는 은혜(爲造惡業恩)'. 이것이 정말로 나쁜 일을 뜻하는 것일까. 어떤 번역에는 악업을 궂은 일이라고 해 놓았다. 무엇이 맞는 해석일까.
남편인 사도 세자를 잃고 정조를 지키기 위해 피눈물로 세상을 살아 온 혜경궁 홍씨가 지은 '한중록'의 일부를 돌에 새겨 세워 두었다. 드라마로 워낙 많이 만들어져서 알지 못해도 아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야기인데, 직접 읽으니 다른 느낌이다. 원본을 한 번 읽어볼 가치가 있겠다. 9살에 궁에 들어와 80세가 되도록 70년을 대궐에서 살았으니 평생 부귀영화를 누렸는데, 지아비와 아들, 형제를 잃는 고통을 모두 당했으니 몸은 영화를 누렸으나 마음은 편치 못해서 불행한 삶을 살았던 안타까운 사람이었다.
들어올 때는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입구에 놓인 해태상(?)이 멋진 미소를 머금고 있어서 사진으로 남겼다. 음, 역시 렌즈가 문제다. 빛의 강함과 약함을 제대로 옮겨내지 못한다.
조지훈의 시 '승무'가 이곳의 승무를 보고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에어쇼를 하는지 전투기들이 온갖 굉음과 연기를 퍼부으며 하늘을 날고 있다. 머리가 아프다. 그래도 전쟁이 아닌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사용되니 전투기의 모습이 날쎄고 아름다워 보인다. 언제까지나 그런 모습으로 있으면 좋겠다.
용주사를 나와서 융건릉으로 간다. 버스를 탈까 하다가 한 정거장에 불과해서 그냥 걷기로 한다. 택지 개발을 하는지 온통 공사판이다. 게다가 인도도 없는 좁은 차로를 제법 많은 차들이 지나 다닌다. 정조가 자주 걸음을 했을 이 길은 나무들이 울창하여 걷기에 아름다울 수 있다. 차들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길로 만들었어야 했고, 설사 차가 지나더라도 사람이 먼저 다녔던 길이니 조용히 옆을 지나야 옳은 일이었는데, 걷는 우리를 향해 경적을 울리는 차들도 있었다. 길은 원래 사람이 주인이다. 빠르고 힘이 세다고 해서 근본을 잊어서는 안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을 먼저 생각하도록 교육받고 훈련받고 실천하지 않는 나라는 결코 사람을 위한 나라가 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지금 받고 있는 대접이 곧 우리의 상태다.
떨렸지만 떨지 않으려 애쓰며 제법 긴 길을 걸어왔다. 영화 '로메로'에서 군사독재 정권의 총앞에서 흩어진 성체를 줍는 로메로 주교의 떨리던 손이 생각났다. 아무 것도 아닌 일을 하면서, 당연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떨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은 언제나 오는 것일까. 융건릉의 입구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서 있었다. 매점에 들어가서 맥주 한 캔을 사서 시원하게 나눠 마시고 산책을 시작했다. 돗자리를 깔고 가족들과 조용히 여가를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왕릉이라고 했지만 멀리 목책을 둘러두어서 자세하게 살펴볼 수가 없었다. 지난 번에 갔었던 광릉은 능 바로 앞까지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어서 자세히 둘러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 개혁 군주 정조의 숨결을 가까이서 느껴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산책길은 좋았다. 가을의 산책은 적당하게 선선하고 나무들도 너무 번성하지 않고 시원하게 친구처럼 주변을 감싸 주어서 좋았다.
능을 나와서 편의점 앞의 버스 정류장을 보니 차량 안내가 잘 되어 있다. 안내 방송을 들으며 차를 기다렸는데 오지 않는다. 편의점에 물었더니 저 아래 큰 길가로 버스정류장이 옮겨졌다고 한다. 허 참. 아무런 안내 표지판도 남기지 않고, 안내방송이 나오는 버스 정류장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는지 신기한 행정이다. 막히는 길에서 고생하지 않고 편안하게 잘 다녀왔다. 돌아오는 전철은 수원역에서 사람들이 내리는 바람에 열 정거장을 편히 앉아서 끄덕끄덕 졸면서 올 수 있어서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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