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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아름다운 한반도 여행

기대는 기대로 그친다_금강소나무숲길_140731~0802

 금강 소나무 숲길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는 이십 년 가까이 되었으나 미처 가 보지를 못했다. 가볼 수는 있었으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 여름은 우주신이 고등학교 2학년의 여름 방학으로 수학 공부가 미진하여 마음 편히 여행을 할 수 없기에 짧은 시간이지만 몸과 마음을 단련하기에 좋을 것같아 한 달 전에 소나무 숲길 3코스와 1코스를 예약해 두었었다. 제법 먼 곳이라서 숲길을 걷기 하루 전에 출발하여 바다 구경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몸 만들기를 하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빨래며 설거지까지 모두 마쳤으니 집안은 사흘 동안 깨끗하게 비워진 상태에서 휴식을 할 것이다.

 

영동고속도로는 휴가철을 알리듯 간간이 밀린다. 원주를 지나면서 더욱 밀릴 것이라는 교통 예보에 놀라서 중앙고속도로로 방향을 틀었다. 바다를 보는 대신에 내려가면서 불영계곡을 다시 보기로 한 것이다. 아주 오래 전에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불영계곡을 보았었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던 곳이니 경로를 변경한 합당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강원도 땅을 벗어나면서 쏟아지는 소나기가 대지의 열기를 식혀줘서 차 안이 편안하다. 좁은 공간에서 해방시키려고 그럴싸한 바위산의 모습을 보자마자 차를 세웠다. 살짝 걸친 구름 속에서 붉은 소나무가 쭉쭉 뻗어있는 바위산의 모습이 그럴싸했는데, 쏟아져 내린 비로 계곡을 흐르는 물은 온통 흙탕물이다. 다 좋은 일은 없는 것이다.

 

경치 좋은 계곡이 있어서인지 텐트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고, 어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높았다. 본래 올 여름 휴가는 텐트를 가지고 캠핑을 하려 했으나 소나무 숲길을 오랜 시간 걸으면 몸이 피곤할 것같아 캠핑은 포기하였다. 우리 수준에는 매우 좋고 커다란 텐트를 사서 많이 사용하지를 못해서 늘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고,  나이 들어 버려서 텐트의 불편함을 이기지 못하니 캠핑을 즐기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다. 캠핑장 한 구석에 순박한 모습의 당나귀 두 마리가 서있다. 아이들을 태우기 위해 기르는 모양인데 쉬고 있는 모습이 너무 평화로웠다. 손에 잡히는 데로 먹음직한 풀을 뜯어주었더니 스스럼없이 다가와 받아 먹는다. 본래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작더라도 그들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뛰놀게 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불영계곡 입구에서 본 소용돌이 구름도 매우 독득하고 아름다웠다. 아, 카메라를 바꿔야 하는 모양이다. 제대로 담아내지를 못한다.

 

 

 

 

 

 

 

계곡은 아름다웠으나 아이들은 특별히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불영정사를 거쳐 계곡구경을 하려 했으나 길게 누워 있는 아들들을 일으켜 세우지 못해 그냥 바다로 가기로 했다. 다섯 시간이 다 되도록 운전을 했으니 머리도 멍멍하다. 망양정과 해맞이 공원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니 예상대로 뿌연 해무에 쌓여 탁트인 맑은 바다를 볼 수는 없었다. 역시 가을의 맑은 공기와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바다를 푸르고 아름답게 해 준다. 겨우 이런 바다인데도 세상의 모든 관광객이 동해로 몰리는 모양이다. 작은 대숲이지만 서늘하여 덥고 습한 기운을 막아주니 표정이 저절로 살아난다. 좋은 것을 보지 못하면 자동차 여행은 행복할 수가 없다. 그래도 오는 내내 싯달타를 이야기 하면서 졸린 기운을 몰아낼 수 있었다. 물론 가족들은 수다를 들어주느라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

 

 

 

 

한 시간여의 짧은 산책을 마치고 죽변항이라는 작은 포구에 들려서 대게를 먹었다. 국내산 대게는 잡히지 않아서 러시아산 털게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Kg당 6만원인데, 세마리 정도는 먹어야 한단다. 18만원. 와우. 조금 무게가 덜 나가는 것으로 16만원에 협상하여 넓지만 소박한 식탁에 앉아서 기다렸더니 푸짐하게 쪄서 내온다. 한 시간여를 대게와 씨름하면서 비린내가 나도록 먹고 났더니 배가 부른다. 운전을 해야 해서 술을 못 먹었으니 숙소에 가서 통닭과 함께 술 한잔을 하기로 했다.

 

읍내 숙소들은 10만원에서 14만원까지 하는 모텔들이 대부분이었다. 흠, 이럴 수는 없다. 외곽으로 나가기로 했다. 내일 출발하는 지점에 좀 더 근접한 곳의 모텔은 비록 1층이었지만 6만원에 잘 수가 있었다. 통닭을 시켜서 소주 한 병을 마셨더니 다들 피곤하다고 잠자리에 든다. 에어컨을 틀면 춥고, 안틀면 더운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잘 들 잔다. 푹 자지는 못했지만 일찍 일어날 수는 있었다. 어제 밤에 읍내의 빵집에서 사온 빵과 모텔에서 주는 커피로 아침 식사를 대신했다. 당장은 좋았는데, 산행 중에는 너무 적게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배가 고파했다. 농원에서 가지고 간 참외와 토마토, 오이까지 알뜰하게 챙겨갔으니 큰 어려움을 넘길 수 있었다. 네 시간 이상의 산행에는 반드시 비상식량을 챙겨야 한다는 평범한 상식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울진 읍내에서 한 시간에 걸쳐 산길을 돌아돌아 한참을 올라갔더니 3코스의 출발지점인 금강송 펜션이 보인다. 숲길을 예약하고 바로 펜션 예약을 알아 보았더니 이미 예약이 완료되어 들어가지 못했던 곳이다. 쓰레기 버리지 못하고 담배를 피지 못한다는 안내 사항을 듣고 준비운동을 한다. 점심식사 장소까지 화장실도 없으니 미리미리 몸을 비우고 출발하라고 한다. 오직 80명의 예약한 사람들만 걸을 수 있다는 숲길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그리미는 숲길 입구의 언덕도 힘차게 오르며 힘이 난다고 한다. 잠자리를 바꾸면 깊이 잠들지 못해서 언제나 힘들어했는데 활기찬 모습을 보니 반갑다. 아들들은 소나무를 보러 왔지 이렇게 오랜 동안 숲길을 걷는다는 것은 상상을 하지 못했단다. 매우 습한 곳이지만 길 옆으로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이 계속해서 따라와 주니 운치있고 시원하다. 붉은 소나무들이 분명한 껍질을 조각처럼 드러내며 울창한 숲 속에서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여름의 숲은 나무들로 푸르게 가리워져 다양성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데, 검은 육각형으로 무늬를 새긴 붉은 소나무가 단조로움을 극복해 준다.

 

 

 

 

오르락 내리락 산길을 걷다 보면 발바닥은 불에 데인 듯 달아 오르고 숨은 턱에 찬다. 나이 드신 분이 안내를 하니 속도를 내지 않았지만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계곡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사진도 찍으며 걷자니 허겁지겁 뒤를 쫓아야 한다. 여럿이 움직이는 산행은 매우 안전하지만 우리의 호흡으로 자연을 느낄 수 없는 것이 매우 불편하다. 인천에서 왔다는 중년의 부부도 비척비척 뒤를 따르다 말다 한다.

 

분리목은 연리목의 반대다. 가지가 나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나무에서 두 개의 나무가 쌍동이처럼 자라나간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신기하다. 숲이라면 제법 돌아다녔는데도 이런 나무를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이 숲길에는 유난히 많은 분리목이 자라고 있었다. 비록 분리된 나무지만 분열된 인간사회와는 달리 평화롭게 서로 의지하며 공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다름을 받아들이고 분열이 아니라 분리되어 있으면서 서로 돕고 사는 사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뿌리가 같아야 한다. 삶의 뿌리가 하나로 되어 있고, 그것이 충분한 양분을 분리된 나무에 공평하게 잘 분배한다면 분열이 곧 대립과 반목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전 세 시간 반을 걸어서 점심 식사 장소에 도착했더니 산나물을 중심으로 열 가지에 달하는 반찬을 준비한 밥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산중턱의 오솔길 위에서 깔판을 하나 깔고 네 식구가 둘러 앉아 소박하지만 푸짐한 밥상을 마주하니 막걸리 생각이 간절했다. 순두부 맑은 국을 막걸리 삼아 허기진 배를 달래고 나니 졸음이 밀려온다. 쉬고 앉아 있으려니 발목이 더 아프다. 오늘 산행의 핵심인 오백년 된 금강송을 보러 가자는 안내자의 말에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무엇이 더 새로울까.

 

금강송은 이리저리 휘어지고 비뚤어진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드러났다. 춘양의 금강송들이 일제에 의해 베어지고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이송되어졌던 반면에 더 깊은 산골에 있고, 그 모양마저 휘어진 소나무는 안전하게 오백년을 버텨낼 수 있었다고 한다. 대동아공영이라는 이상을 구상하고 말했으면 행동으로 그것을 증명해야 했는데, 제 욕심에 온갖 보물들을 훔쳐 간 일본의 제국주의자들은 아직도 치사한 입을 간사하게 놀리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서로 달라서 명백하게 사기를 치고 있는데도 그것을 구분해 내지 못하는 우리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휘어진 소나무의 굳건함을 보기 보다는 보이지 않는 제국주의와 이기주의의 폐해가 생각이 나니 이것 또한 욕심인 모양이다. 사람사는 세상에서 편안하게 살자는 욕심이다.

 

기대는 기대로 그친다. 머리 속에 그려진 거대한 장관은 이곳에서는 볼 수 없었다. 그저 조금 큰 소나무와 붉은 소나무와 휘어진 소나무를 좀 더 많이 보았다. 장성의 편백나무 숲처럼 피톤치드가 물씬 풍겨나오는 소나무 숲을 다녀온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돌아오는 길은 든든하게 먹은 점심 덕분에 힘든 것을 이기고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일행에 끌려서 약속된 장소로 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의 출발지점으로 각자의 역량에 맞게 이동하는 것이었다. 순간 해방된 느낌이었다. 드물기는 하지만 이름모를 꽃을 발견하거나 물이 세차게 흐르는 곳에서 세수도 하고, 소나무에 깊은 새김이 만들어진 외피도 만져보면서 움직였다. 어떤 소나무는 붉고 어떤 소나무는 회색빛이어서 왜 그런지를 물었다. 회색이던 것이 자라면서 붉은 색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였다. 원래 붉은색이고 세월이 흘러서 껍질이 떨어져 나가는 것들이 회색으로 변해 벗겨진다는 것이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간중간 만들어졌어야 할 가지들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위로 쭉쭉 뻗어 올라가며 곧음을 자랑하는 것이 금강송의 특징이라고 한다. 식물들의 세계에서는 신기할 일도 아니지만 그런 경쟁의 결과가 보기에 아름다운 금강송을 만들어 낸 것이다.

 

출발지로 되돌아 와 동네 할머니들이 장사를 하는 주막에서 맥주를 한 잔씩 했다. 온 몸에 흐르던 땀이 쏴악 씻겨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올 때부터 보아 두었던 불영계곡 산책길에 나섰다. 가족들은 경악한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걷고도 또 산책을 하자는 말이냐며 강력하게 항의한다. 겨우 일곱시간을 걸었을 뿐인데 무슨 소리냐. 타협은 해야 했다. 산책하기 좋은 곳에 식구들을 내려놓고 저 아래 쯤에 차를 세워둔 후에 걸어 올라가서 만나서 같이 내려오기로 했다. 그나마 천재는 어제 잠을 못잤다며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모두들 반대했지만 불영계곡의 아름다운 모습은 모든 비난을 감수하고 볼 만한 것이었다. 산은 역시 북한산이지만 계곡은 북한산 보다 나았다. 계곡 사이를 걸을 수 있도록 도로 폭을 줄이고 산책길을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본다. 여기저기 도로 공사는 이루어지고 있지만 산책로는 마련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한참의 세월이 필요한 일일 것이다.

 

 

 

 

 

 

 

 

 

 

 

 

불영계곡의 아름다운 바위산은 수없이 늘어진 전기줄에 훼손되어 있다. 전기줄을 피하지 못하는 경치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멀리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젊은이들이 있다. 험한 고개를 넘어 동해바다까지 내내 달려가면 된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그리미를 돌아다 보지만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아마도 평생 꿈으로 남을 일이 될 것이다. 자전거로 백두대간을 넘는다는 꿈은.

 

오늘 저녁은 1코스 출발지 근처의 민박으로 예약을 해 두었다. 전화를 드렸더니 어서 오라고 반기신다. 안주거리와 술은 있다고 하시는데 딱히 가격을 말씀하시지 않는다. 불안한 마음에 읍내 시장에 들러서 고기와 술과 과자를 사서 두천리 민박으로 갔다. 읍내에서 마을 입구까지 꽤 긴 길의 양쪽에 배롱나무가 빨간 꽃을 피우고 있어서 아름다웠다. 지친 몸이 아니었다면 또 다시 걷고 싶은 욕구가 일어났는데, 가족들의 반란이 두려워 그저 눈으로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민박집은 작지만 깨끗한 조립식 주택이다. 십년 전에 귀농해서 수천 평 밭농사와 소를 키워서 생활을 하시는데, 요즘은 소나무 숲길이 알려져서 민박을 하는 것으로 많은 수익을 올리신다고 한다. 민박에 생계를 거시는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시니 생활이 여유롭고 인심이 푸짐하다. 그저 있는 반찬으로 맛있는 저녁상을 내오신다. 시원하게 몸을 씻은 뒤에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깔끔한 저녁상을 마주하니 꿀맛이 따로 없다. 소나무 숲길을 열고 그 주변 마을 분들이 안내와 숙소, 식사를 담당하게 한 정책 덕분에 이 산골 마을이 풍요로워졌다고 좋아하신다. 잘 만든 정책이 시민들을 얼마나 행복하게 해 주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사례다.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공공선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숲길에서 얻은 수익은 개인은 물론이고 마을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쓰여지며, 결국 숲길의 보존에도 기여하게 된다고 하니 본받을 만한 정책이다.

 

민박집 안주인과 고기를 구워 먹으며 사는 이야기를 나누자니 농사 짓고 산다는 것이 정말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골에 살면 크게 돈 들 일이 없는데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경치와 새들의 노래소리가 가득하니 낙원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는 데다가 산을 좋아하는 가족 단위의 마음 넉넉한 사람들이 와서 하루 이틀 묵으며 식구처럼 지내다 가니 외로울 틈이 없다고 한다. 시골에서의 삶은 이래야 할 것이다. 누군가가 끊임없이 찾을 수 있을만큼 매력있는 자연이 있어야 하고, 쓸만한 정도의 현금이 확보될 수 있는 농사와 관광 수입이 보장된다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민박집 주인 내외는 평생 자영업을 했기 때문에 연금을 받고 있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농사도 크게 짓고 소도 먹이게 되었다고 한다. 만일 연금이 있고 작은 땅이 있어서 소박하게 농사 지으며 산다면 더욱 평화롭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삶의 규모를 더 소박하게 만들려고 애쓸 때 더 큰 평화와 행복이 다가오는 것이다.

 

 

 

 

잠자리가 아주 편안하지는 않았지만 모텔에서 잘 때 보다는 훨씬 잠을 잘 잔 기분이다. 태풍이 올라온다고 해서 걱정은 했지만 심하게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하나 있는 비옷을 챙기고 우산도 챙겨서 산을 오른다. 오늘은 예전 보부상들이 장터를 찾아 가던 길을 걷는 것이다. 숲의 경치는 똑같이 고요하고 붉은 소나무들이 특별하게 빛나는 작은 오솔길이다. 우리 조상들은 항상 그림자를 보며 오솔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선을 이어가다 보면 지름길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어제와 달리 계곡은 없이 오솔길과 임도를 따라 올라가고 내려간다. 중간 휴식처에서는 넓은 계곡이 있어서 발을 담궜더니 물고기들이 달려들어 각질을 먹어치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최고로 높아지는 곳이다. 바위 위에는 손가락 굵기의 민달팽이가 뱀처럼 기어가고 있다.

 

점심식사는 민박집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농사지은 나물들로 비빔밥을 만들어 오셨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천막 아래에서 피하고, 간이 의자에 간신히 엉덩이를 붙이고 먹는 허름한 밥인데도 달게 먹을 수 있으니 신기한 일이다. 비빔밥을 싫어하는 우주신도 맛있게 한그릇을 다 먹었다고 하니 고마운 일이다. 주민들은 농사를 지어 팔 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1년 내내 찾아오는 등산객들에게 식사로 제공되니 더욱 그렇다고 한다. 봄이면 송이를 캐어서 소득을 올린다고 한다.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먹은 반찬 중에서 송이 장아찌가 있어서 조용히 한 접시를 다 먹어 치웠다. 3주가 지난 지금도 입안에 송이 향이 느껴질 정도로 향이 좋았다.

 

 

산행을 마치고 민박집 정원에 핀 바다 채송화의 꽃을 보았다. 특별히 장관을 본 것은 아니었지만 드물게 본 이 채송화와 여름마다 향긋한 냄새로 코를 간지럽히는 칡꽃으로도 이번 여행은 즐거웠다. 돌아오는 길은 매우 막히고 힘이 들었다. 석양의 아름다움으로 눈을 부르게 하고 김치찌게로 배를 부르게 하였더니 길고 피곤한 길이 끝났다. 아이들이 다 커 버렸으니 오붓한 가족 여행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매번 즐거운 여행을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좋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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