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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아름다운 한반도 여행

북촌 산책_130224, 일

북촌이 좋다고 해서 한 번 가 보자 생각했었다.

그리미는 벌써 몇 년전부터 가 보자고 했었다.


그렇지만, 서울 한복판에 뭐 대단한 볼 것이 있을까 싶었고,

인사동 먹자 골목의 연장선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선뜻 나서지를 못했다.


드디어 오늘 -


날도 포근하고,

어제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한밤중에 산책을 해야 했던 불상사를 떠올리며

해가 떠 있는 따뜻한 날에 산책을 하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기대가 크지 않아서 그랬는지,

의외로 좋았고,

꽃 피는 봄이 오면 다시 한바퀴 더 돌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북촌의 꼭대기에는 고불 맹사성 대감의 고택터가 있었고,

대감의 스승이라는 권근 대감의 직계 후손 되시는 분이

고택을 인수하여 예쁜 찻집과 박물관, 서당을 운영하고 계셨다.


북촌 동양문화박물관 -


이런 사업을 운영하기가 매우 어려우실텐데

그 용기와 넉넉함이 부러웠다.


바로 건너 보이는 곳에 거대하게 자리잡은 김승연 회장의 집은,

치안이 잘 되어있는 국립호텔로 무료급식 받으러 간 김회장의 부재로

저녁 마다 쓸쓸한 모양이다.


세종대왕의 스승이셨던 맹대감의 집은 워낙 높은 곳에 있다보니

경복궁에서 바로 바라다 보였다.

제자인 임금은 스승이 잠들어 불이 꺼지는 것을 확인하고야 

비로소 잠자리에 들었다고 하니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리고 인왕산 자락의 치마바위 -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연산군 처남의 딸이 중종의 왕비였는데, 

반정으로 아비는 죽고 본인은 그만 폐비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더욱 안타깝게도 중종과 왕비 신씨는 열아홉살과 스무살로 

매우 금슬 좋은 젊은 부부였다고 한다. 


신씨는 궁에서 쫓겨났어도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왕에게 알리기 위해 

인왕산 자락의 너럭바위에 치마를 내걸어 두었고,

중종이 이 치마를 열심히 바라보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후세에 이 바위는 치마바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사랑은 정치 바람에 가로막혀 계속될 수 없었지만,

일흔 한 살까지 장수한 신씨는 사랑의 기억이 특별해서 행복했을 것 같다.


역시 사랑은 아름다운 일이다.









이번 산책에 처음으로 아이패드를 가지고 와서 찻집에 앉아 이용해 보았다.

와이파이 환경이 좋은 우리나라에서는 웹서핑의 훌륭한 도구다.


그렇지만 아이패드로 글을 쓰는 것은 매끄럽지가 못하다. 

키보드가 불안해서 머리 속의 생각들이 발전하지는 못하고,

떠오른 내용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서둘러 글을 마감하게 된다. 


단순히 글쓰기만 문제가 된다면 키보드 커버로 해결할 수 있지만,

별도의 전화기를 휴대해야 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결국 노트 10.1과 키보드 커버로 가는 것이 정답이겠다.









북촌 산책 후

고갈비에 막걸리 한 잔.


옛날 그 집(피맛골 주점)이 아직도 있네 ~


술 냄새 풍기며 전철 타는 것이 걱정이었는데,

의외로 1호선 전철안은 여유가 있어서 편안하게 돌아왔다.


참 즐거운 산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