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서재

반성할 줄 모르는 일왕은 항복도 못했다_ 정글만리 3권

3권째에 들어서면서 좋은 느낌은 중국 문화의 다양성이다. 꼭 즐겨야 할 문명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금방이라도 청뚜행 배편에 자전거를 싣고 뱃전에 기대어 인천항을 바라보고 싶은 기분이다. 그리미는 열악한 중국의 화장실과 음식 문제로 중국 여행을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아이들도 약간만 다른 문화로는 여행의 참 맛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반대로 나쁜 느낌은 현대 중국인들이 오로지 돈에 열광하고, 마오쩌뚱에 대한 광기어린 숭배에 매몰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비록 문맹률은 높지만 지식인들도 많고 철학자들도 많다. 시민들도 충분한 지적 수준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도리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이 가능하다. 당장 허삼관매혈기를 쓴 위화만 보더라도 문화대혁명 시기의 시민들이 받은 고통을 누구보다도 가슴 아프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 위화가 중국의 인기작가인 것을 보면 조정래의 중국인 평가에는 편견이 있을 수 있다. 그 편견이 끼어 든 이유는 아마도 기업인들의 세계를 다루었기 때문일 것이다. 돈의 세계를 다루었으니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공산당원들을 만나면 그들의 속마음이야 어떻든지 간에 마오쩌뚱에 대해 어떤 비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은 중국에 사상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중일 삼국의 인종차별이나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지적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되새김질 하며 반성해 볼 일이다. 한중일 뿐만 아니라 태국도 다르지 않다. 아시아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식민지 전쟁 과정에서 훼손되어 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시아 전체를 휩쓴 집단 정신병이니 철학자나 문화인, 정치인, 농부들이 이 병을 치유해 가기 위해 앞장서 나가야 할 것이다.

 

"일본사람들의 서양 흉내 내기는 마치 서커스단에서 원숭이들이 사람 흉내 내는 걸 구경하는 것처럼 재미있고 우스웠다. (중략, 일왕은) 양복저고리 뒤꼬리가 째져 길게 늘어진 연미복에다가, 위가 높이 솟은 고깔중절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차림은 서양에서도 거의 사라진 100여 년 전의 정장이었다. (중략) 그 부인은 서양에서 이미 몇십 년 전에 유행이 지나버려 지금은 흑백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 촌티 나는 꽃모자를  매번 바꿔 쓰고 나왔다. (중략) 일본남자들이 서양여자들과 결혼하는 것이 가장 성공한 인생인 것처럼 그런 쌍들을 일부러 텔레비전에 불러내 붕붕 비행기를 태웠다. 그리고 국민들은 부러움과 함께 마침내 일본사람들이 서양사람들과 동급이 된 것같은 착각과 만족감 속에서 시청률을 자꾸만 올렸다. (중략)

 

 

 

"한국에 유학 온 게 회의스럽다. 서양사람과 중국사람을 이렇게 차별할 줄은 몰랐다. 교수들까지 그런다." 중국 학생이었다. "미국보다 오히려 차별이 더 심하다. 나는 외톨이다." 흑인 학생의 말이었다. (중략) 황당한 일은 영어 교육 강화를 위해 나라에서 역사 시간을 일주일에 1시간으로 줄여버린 것이다. 그들이 간절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세계의 선진국들은 일주일에 역사 시간이 3~4시간이고, 역사 시간을 줄이는 일은 일본에서도 중국에서도 저지르지 않았다. 한국 정부의 그 용감무쌍한 결단력이 세계 1위, 금메달 감이 아닐 수 없다. (중략)

 

 

 

일류미녀는 바다를 건너가고, 이류미녀는 외국 기업가의 얼나이가 되고, 삼류미녀는 직접 사업을 한다. (중략) 남자들도 외국기업에 취직하는 것을 최고로 친다. 중국 회사들보다 월급이 많기 때문만이 아니다. 외국 회사에 3~4년 근무하면 중국 회사에서 서너 배의 봉급으로 스카우트해 가는 것이다. (중략) 심한 매연과 가짜 음식만 사라진다면 중국은 프랑스를 밀어젖히고 단숨에 세계 최대의 관광 대국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소중한 자산들을 그렇게 닥치는 대로 파괴 (중략) 관광이야말로 알짜로 돈 되는 '굴뚝없는 산업'이라는 그 평범한 사실을 깨달을 날이 언제일까." (45쪽)

 

부끄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이런 정도의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말이다. 어느 한 가지라도 만족시키기가 어렵다. 신당도 창당되고 새로운 정치가들이 많이 등장할 텐데, 이런 가치를 하나라도 가지고 있는 새로운 인물들이 많이 등장했으면 한다. 그들을 돕고 응원할 수만 있어도 큰 기쁨이고 보람일 것이다.

 

"사람을 능력만으로 고르지 말아라. 능력 반, 사람 됨됨이 반이어야 한다. 술을 마셔 보고, 노름을 해보고, 등산을 해보고, 여행을 해봐라. 이기적인 자, 언행이 안 맞는 자, 마음이 가벼운 자, 인내심이 약한 자, 불평이 많은 자, 협동이 안 되는 자, 뒷말을 하는 자, 약속을 잘 안지키는 자, 다 골라내라." (86쪽)

 

역시나 마음이 답답해진다. 대만 독립에 대한 찬성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금기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일 먼저 드는 의문은 대만에 대한 지배권을 왜 분명히 하지 않고 있느냐는 것이다. 선언하는 것으로 실질 지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중국도 잘 알 것이다. 그렇다고 전쟁과 폭력으로 해결하라는 말은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견제도 실질 지배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거센 비난을 무시하고 베트남을 침공한 사실도 있었는데, 대만에 대한 무력사용이 자제되고 있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중국과 베트남은 다르다는 것일까. 티벳이나 신장 위구르에 대한 강력한 대응과도 역시 구별된다. 그쪽은 한족이 주류가 아니기 때문일까.

 

역시 대만문제는 쉽게 언급할 수 없는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오히려 질문을 던져야 하는 모양이다. 대만에 대한 실질지배가 이루어지고 있는가라고. 만약 아니라면 어떤 계획을 갖고 느냐고.

 

중국은 여전히 공안국가이다. 공안이 모르는 일이 없다고 하는 말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끝나고 난 이후에는 많이 어려워지기는 했지만 인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된 나라에 산다는 것은 참 다행스런 일이다.

 

"중국에서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3대 금기사항이 있었다. 그중에서 대만 독립에 관한 문제는 첫 번째로 꼽힐 정도로 비중 큰 중대사였다. (중략) 대만이 독립되면 그게 티베트와 신장위구르로 뻗쳐 결정타가 되고,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가 독립하게 되면 중국은 영토의 65퍼센트를 상실하게 되는 (중략) 어떤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세계적인 석학들의 주제논문들이 배포되었다. (중략) 어느 논문에 실린 중국 지도에 대만이 빠지고 없었던 것이다. (중략) 위에서 신속하게 결정이 내려졌다. 비용 많이 들어간 국제학술대회의 중단이었다." (127쪽)

 

티베트와 신장위구르와 대만이 중국 영토의 65%를 차지한다고 해서 갑자기 중국지도가 궁금해졌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중국지도를 보면서 뻬이징을 한참이나 찾았다. 간신히 상하이의 저 위쪽 서울 보다도 더 위쪽에 자리한 뻬이징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중국을 두 번이나 여행했지만 중국에 대해서 정말로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아왔다. 뻬이징을 찾을 수 없었다니.

 

 


기가 막힐 이야기들은 여전히 계속된다. 세 권을 내리 장식하고 있는 이런 험한 이야기들은 몹시 거슬린다. 참아야 한다. 사실에 또는 약간 과장된 사실에 너무 감정이입을 해서는 안된다. 그런 현상들도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는 일들이다. 그들에게 손가락질하면서 틀렸다고 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이 바뀌기를 원한다면 기다려야 한다. 큰 돈이 없어도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부귀와 번영을 상징하는 '梨花'는 '돈이 벌리다' '돈이 불어나다'라는 뜻의 단어와 그 발음이 너무나 흡사해서 중국 사람들은 배꽃을 '돈꽃' '부자되는 꽃'으로 믿어왔던 것이다.

 

일왕이 발표했다는 항복문은 항복문이 아니었다. 비겁하고 잔인하며 반성할 줄 모르는 자들은 항복할 줄도 몰랐다. 


"짐은 우리 정부에 공동선언 조항을 수락하기로 했다는 뜻을 미국, 영국, 중국, 소련 정부에 통고하라고 지시했다. (음, 중략) 


어떻게 짐의 1억 백성을 구할 것이며, 또 무슨 낯으로 황실 조상님들의 신위를 뵈옵겠는가? 이것이 짐이 정부에 열강의 공동선언 조항에 응하라고 지시한 연유다. (음,, 중략) 


짐은 제국과 합심하여 시종 동아시아의 해방에 힘써온 동아시아의 동맹국들에 심심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음,,, 중략)


금후 제국에 닥칠 고난과 시련은 분명히 녹록지 않을 것이다. (음,,,, 중략)


정직하고 고결한 품성을 도야하며 굳은 의지로 밀고 나가 제국의 영광을 드높이고 진보하는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지어다. (음,,,,,)" (213쪽) 


이게 끝이다. 마치 국민교육헌장을 읽는 기분이다. 일왕의 항복문은 유체이탈 화법으로 일관한다. 우리는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노력했어. 잘못한 게 없지. 전쟁이 사람을 죽이고 위안부를 만들어냈어. 몰지각한 개인이 사고친 것까지 어떻게 책임을 지겠어. 우리 잘 해 보자. 아침 식사를 하면서 우주신에게 낭독해 주었다. 제3권은 이 부분만으로도 위대하다. 그런데, 어째서 이 비겁한 문서를 한 번도 보지를 못했을까. 마음 속에 분노가 활활 타고 마구 표출된다. 무엇을 위해서 분노는 표현되는 것일까. 아니다. 분노는 마음 속에 갈무리되어 평화로운 행동의 동력이 될 때 힘을 갖는다.


중국의 발전에는 농업개혁이라는 발판이 있었고, 그것을 귀기울여 듣고 시행한 것이 덩샤오핑이었다고 한다. 


"1978년 안후이성에서 있었던 일이오. 농민 18명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은밀한 모의를 했소. 그들은 인민공사 소유의 농토를 가구별로 나누어 농사를 짓고, 수확한 다음에는 인민공사에 할당량만 내고 나머지는 다 각자 개인이 갖기로 한 것이오. (중략, 그 해 수확량은) 6배였소. 인민공사 식으로 하면 5년간의 생산량과 맞먹는 것이었소. (중략) 덩샤오핑은 즉각 그 방법을 수용해 전국적으로 실시하게 했소. 그게 바로 농토는 국가가 소유하고, 경작권은 농민들에게 부여하는 개혁개방형 신농법이었소. (중략) 쌀이 모자라 해마다 삼모작하는 동남아 국가에서 수입했는데, 더는 수입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오. (중략) 자본주의 형식이 중국 사회주의를 살려낸 역설이오. 덩샤오핑은 그 역설을 연출해 낸 총감독이었고. 그는 볼 줄 아는 눈과 들을 줄 아는 귀와 생각할 줄 아는 머리를 가진 중국 경제혁명의 영웅이었소." (328쪽)


13억 인구를 굶주림에서 해방시켰다는 것을 자부하며 살고 있는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에게 미래의 희망이 과연 있는 것일까. 적당한 타락과 적당한 묵인으로 당에 대한 충성심이 유지되고 있다면 이미 사회건전성은 상실되어 버린 것이다. 수년 전에 원자바오 총리의 낡은 잠바와 중국 지도계층이 끊임없이 청렴성과 능력을 검증받는다고 해서 상당한 기대를 했는데, 중국의 앞날은 어둡다고 말할 수 있다. 20년 내로 중국사회는 대혼란기를 맞이할 것이 틀림없다. 그 때는 인민의 군대에서 당의 군대로 위상이 추락해 버린 중국 군대의 잔인한 폭력도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근거없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하며, 부패한 사물은 붕괴되는 자연법칙에 의한 것일 뿐이다. 게다가 민주주의도 요원한 이야기라고 한다. 무엇으로 사회가 유지될 것인가. 인구. 그것은 잘 써야 힘이 된다. 결국은 혼란과 분열의 씨앗이 될 뿐이다.

 

"개혁개방과 함께 중국의 전체 인민들은 그전에는 전혀 누릴 수 없었던 사유재산 소유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특대도시를 뺀 거주이전의 자유, 결혼의 자유, 취미생활의 자유, 국내외 여행의 자유, 해외유학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소. 이런 천국을 베풀어준 게 당이고 정부요. 그러니 별다른 불만이 없고 오로지 기대가 있을 뿐이오. (중략) 서양 언론들이 기대해 마지않는 민주화 투쟁이란 요원할 뿐이오. 그러니 소수 지식인들이 벌이는 민주화 투쟁은 14억의 바다 위에 피어났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물거품일 뿐이오."  (382쪽)


 

3권도 끝났다. 중국은 거대한 사고뭉치다.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내부의 혼란과 분열로 이어지는 것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국제문제로 이어지면 세계를 뒤흔들어 버릴 것이다. 전쟁, 환경, 식량, 에너지 등등. 안정된 체제가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들도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내부에서 양심과 능력을 갖춘 지도자들이 부패한 구세대를 대체해야 한다. 그 날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세대가 살아 생전에는 중국이 큰 빵이고 협력자이지만 우리 아이들의 세대에는 거대한 야수이자 문제 덩어리로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기는 내가 없으면 걱정도 없으니 무슨 걱정이냐.

 

독후감을 다 쓰고 4권을 빌리려고 했더니 3권이 끝이란다. 허 참. 그렇구나. 전대광의 새로운 도전이 끝이구나. 시작하기는 어렵다.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다. 온갖 박사님들이 큰 소리를 치며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마구 교육을 한다. 돈을 벌기 위한 일은 그렇다. 소설 속에서도 돈, 농업교육장을 가도 돈, 드라마를 보아도 돈, 온통 돈 투성이다. 돈에 대해 정리하고 넘어가야 마음이 평화로워지겠다.

 

적당하게 벌고 만족하며 살자. 남의 손에 모든 귀찮은 일들을 맡겨 버리는 것, 돈으로 노예를 부리고 싶은 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노예를 부린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아껴쓰며 살면 큰 돈은 필요없다. 여행하려는 의지가 중요하지 돈이 없어서 여행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작은 실천도 뒤로 미루기 때문이다. 먼저 사랑을 실천하여 행복을 얻고, 적은 돈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며, 자연을 너무 사랑해서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게 스스로를 만들면 된다. 그것이 삶이다. 행복한 삶.

 

- 정글만리 3권 / 조정래 / 해냄(2013년 10월, 1판 34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