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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쌀 떨리는 농기계 임대 예약_140418, 금

어제 저녁을 먹으며 논농사 일정을 확정했다. 다음 주(21~25일)에 논둑 보강 작업을 하고 유박 퇴비(45포)와 복합비료(6포)를 뿌리기로 했다. 이어서 5월 7일에 로터리와 써레를 빌려서 물을 대어 논 수평 작업을 하고, 12일에 이앙기를 빌려서 모내기를 하기로 했다.


어제 밤에 비가 쏟아지면서 오늘 무일농원에서 할 일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여 향악단에서 북과 장구를 치고 부천으로 퇴근을 하니 새벽 1시다. 아침에 일어나서 류현진 선발 경기와 이세돌 10번기 1국의 재방송을 지켜 보다가 트랙터를 예약하기로 했다.


아뿔싸. 5월 7일은 예약 불가능으로 뜬다. 모든 일정이 뒤틀리게 되었다. 농업기술센터에 전화해서 어떻게 벌써 기계 예약이 완료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혹시 미리 기계를 다 잡아 놓은 것이 아니냐는 항의였으나 그렇지 않다고 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기계를 빌려서 쓰지 못하면 결국 돈으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다. 기계만을 빌릴 수는 없고 기계와 사람을 한꺼번에 써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10년 동안의 경험으로는 이렇게 돈을 쓰고도 우리가 원하는 품질의 논 수평 작업이 되지 않기 때문에 더 답답한 상황이다.


금왕지소에 전화해서 정말로 트랙터와 써레의 임대가 완료되었느냐고 물었더니 5월초의 연휴로 인해 임대가 많아졌고 임대 후 정비관계로 7일까지 임대가 어려울 수도 있으니 8일 날자 임대를 다시 시도해 보라고 한다. 자정이 되어 예약가능날자가 열리자 마자 임대를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농번기의 트랙터 예약은 마치 명절 귀성 열차표를 예약하는 것과 같다. 살 떨린다.


전화를 끊고 답답한 가슴을 억누르며 대책을 세워 보았다. 금왕 담당자와 전화를 하면서 물어 보았더니 29일에 논에 물을 잡아 트랙터로 써레질을 해놓았다가 모내기 3일 전인 8일에 경운기로 로터리를 치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경운기의 로터리가 제대로 작동을 할 지 걱정이지만 대안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농께 전화를 드려 상의했다.


아무리 전화를 드려도 받지 않으셔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걱정이 되었다. 12시가 넘어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드렸더니 마을 공동논의 모자리를 만드시느라 공동 작업을 나가셨다고 한다. 정농께서는 29일에 트랙터 작업을 하고 경운기로 다시 한 번 작업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신다. 굳이 8일에 기계를 빌려서 초조하게 작업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하신다. 무일의 생각에도 29일에 트랙터를 빌리는 것이 작업시간도 충분하고 여유있게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만, 경운기로 로터리 작업을 할 때, 기계가 정상적으로 잘 작동을 해 줘야 하고 하루 종일 피곤하게 경운기의 뒤를 따라다녀야 하는 문제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트랙터로 잘 갈아 놓은 논을 엉성한 실력의 경운기로 로터리를 잘못 치게 되면 오히려 수평을 망가뜨리는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경운기로 로터리를 치면서 수평작업을 해 보고 잘 되지 않으면 8일에 트랙터로 정리작업을 하는 것으로 한다면 더 좋은 수순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결정의 핵심은 8일 날 과연 트랙터를 빌릴 수 있느냐는 것과 경운기가 논에 들어가서 무난하게 작업을 해 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다음 주에 물을 댈 수 있다면 경운기 로터리 작업을 먼저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밭에서의 로타리 작업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고, 기계를 잡느라 가슴에 부상도 입었던 경험 때문에 자신은 없다. 어려운 결정이다. 일단 마음에 두었다가 오늘 자정에 임대 신청을 해 보고 결론을 내려야겠다.


고귀한 생명들(실종 포함 296명)이 차가운 바다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가슴이 답답하여 뉴스를 볼 수가 없다. 부디 행복한 세상을 다시 살기를 기원한다. 남아있는 가족들의 괴로움은 세월만이 치료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사나타나 다르마에 의하면, 인간의 육신은 진정한 자아인 아트만의 껍데기라고 한다. 사람이 옷을 갈아 입듯이 아트만이 여러 사람의 모습으로 거듭 세상을 사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진정한 나는 여전히 살아있고, 나의 현재 모습만 태어났다 사라지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어 윤회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삶이 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고통을 잊으려면 이런 종교적 믿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강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이 지난 삶 동안 즐겁고 행복한 기억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남은 사람들도 주변의 관심과 지원으로 그들의 삶을 지켜갈 수 있었으면 더욱 좋겠다. 신들께서 모든 사람을 위로하고 구원해 주시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