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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_140415, 화

수천께서 삽교천으로 봄여행을 다녀 오시기로 했다. 마을 노인회에 5만원을 찬조해 드리고 잘 다녀오시라고 했다. 정농과 무일은 관광버스에서 뛰며 노는 것을 못하니 이런 단체 여행을 가지 않는다. 점심 밥까지 새로 지어 놓으시고는 태워다 드린다는 아들을 만류하고 15분 되는 마을 회관으로 신나게 걸어가신다.


아직 날은 차지만 작업복을 갈아 입는데도 서늘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봄도 이제는 다 끝나가는 모양이다. 7시 30분이 안되어 모판을 까는 작업을 시작했다. 지난 금, 토요일에 상토흙 위에 모판을 만들어 놓았으니 꼬박 72시간 만에 모판을 열어본다. 하얗게 싹이 올라왔다. 먼저 하우스 바닥 위에 물을 흥건하게 뿌려놓고, 모판을 두 장씩 들어 옮겼다. 세 장씩 옮기니 일의 효율이 더 높아졌다. 150장의 모판을 깔고 그 위에 물을 준 다음 상토흙을 살짝 덮었다. 그리고 다시 그 위에 보온 덮개를 덮었다. 까만 이불 밑에서 싹을 틔운 볍씨들이 잠들어 있다. 아니, 자다 깨다 크다를 반복하고 있다.


여름이 오기 전에 논에 옮겨 심기를 해야 하니 늦봄의 한기를 피해 주기 위해서다. 일은 단순하고 양도 많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꼬박 두 시간을 해서 끝냈다. 끝난 것은 아니다. 앞으로 모심기를 하는 5월 하순까지 매일 물을 주고 비닐하우스 안의 온도를 맞춰줘야 한다.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은 반드시 이 하우스를 지켜야 무사히 모를 길러낼 수 있는 것이다. 모판 몇 개에는 사흘 만에 하얀 곰팡이가 피었다. 내일은 곰팡이 치료제를 뿌려야 한다.




쉴 틈도 없이 관리기로 달려갔다. 비닐 피복기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조정 연장을 들고 밭으로 간다. 덜덜 걸리는 관리기로 300여 미터를 갔다. 천천히 기계의 속도에 맞춰 나간다. 나 이외의 것에 속도를 맞춰 나가는 것이 농사일의 기본이다. 농사일 만 그런 것은 아닌데, 농사를 지으며 맞춰 나가는 모든 일들은 불가항력의 일들이라서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한다. 밭에서도 한참이나 씨름을 해서 비닐 씌우기가 정상으로 되는 것을 확인해야 했다. 뜯고 조정하고 조이고를 반복하는 매우 힘든 작업이다. 경운기 손잡이에 살짝 받힌 가슴이 열흘 째 아파서 힘을 쓰지를 못하는데, 내색을 할 수 없으니 더욱 힘이 들었다. 그래도 4개의 이랑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못자리 비닐을 말리는 뒷정리를 하느라 늦게 들어갔더니 정농께서 점심을 차려 놓으셨다. 팔순의 아버지가 갓 쉰 넘은 자식의 밥상을 준비하는데도 거림낌이 없으시다. 건강하신 아버지를 둔 것이 복이다. 설겆이와 커피는 무일이 담당했다. 점심을 드시고 쌍봉초 도서관으로 출근하시는 것을 보고 낮잠을 20분 정도 잤다. 혼자 무엇을 할까 하다가 윗밭에 부직포 까는 일을 하기로 했다. 3장을 깔고 시간을 보았더니 80분이 흘렀다. 다시 3장을 더 깔고 나서 보니 시간은 4시가 넘어갔다. 좀 더 늦으면 오늘 중으로 비닐 씌우기를 끝내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혼자서 작업을 시작했다. 조정이 잘 되어 있어서 그런지 큰 어려움 없이 두 개의 이랑을 작업할 수 있었다. 퇴근해서 돌아 오신 정농과 함께 나머지 8개 이랑의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내일은 다시 두둑 형성기를 달아 둑 만들기 연습을 다시 하기로 했다. 둑 만들었다 비닐 씌웠다 말로는 금방 되는 일이지만 작업기 교체 작업에 많게는 하루 적어도 두 시간 이상이 걸린다. 힘겨운 작업이다. 그래도 오늘처럼 무난하게 작업이 이루어지면 농사일 힘들다고 괴로워 하지 않을 것이다. 팔 근육이 몹시 아프다.


저녁을 급히 먹고 감곡면사무소의 웃음치료사 교육 과정을 들으러 갔다. 갈까 말까 망설였는데 가기를 잘했다. 두 시간 정도 신나게 웃고 오고 나니 피로가 풀린다. 선물을 주고 받고 좋은 말과 웃음으로 사람을 대하며 자신을 사랑하고 칭찬하는 것이 웃음의 기본이라고 한다. 간단한 동작들도 배우는데 열심히 따라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니 더 재미가 있다. 수천께서 사오신 오징어 젓갈에 소주 한 잔 하며 오늘 하루 즐거웠던 일을 서로 나누었다. 좋은 일은 잊어먹지 말아야 하는데, 건망증이 심한 사람들이 자꾸 잊는다고 한다. 절대 잊지 않도록 자꾸 떠올리며 즐거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