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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잘못이 없으니 징계를 받을 수 없다_마녀사냥 라이프에스퍼애너슨 지음 / 보림

먼저 이 동화의 삽화는 좀 어둡다. 검은 색의 단색으로 그린 그림이다. 아무리 어두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지만 피요르드의 아름다운 자연은 자연답게 밝고 아름답게 그렸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동화의 주제에 지나치게 감정이입이 된 삽화처럼 보인다.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뉘어진다. 잔인한 폭력성을 가지고 있어서 생존과 이익을 위해 전쟁과 살인까지도 주저하지 않는 사람과 잔인한 폭력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제어하여 짐승을 극복한 사람으로 나뉘어진다. 이 책 마녀 사냥은 두 종류의 사람을 보여주는 동화다. 아이들은 사람들이 이렇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스스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며 자라야 한다.


이 동화를 쓴 라이프 에스퍼 애너슨은 1940년에 덴마크에서 태어나 20대에 병을 얻어 교단을 떠난 뒤 서른 아홉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8년 동안 서른 권의 책을 썼다고 한다. 병이 깊어졌을 때는 아내가 글을 받아 써 주어 계속해서 책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간단한 사실도 매우 감동을 준다.


작은 시골동네에서 암소를 기르며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 주며 살던 과부가 같은 동네 사람들의 무고로 마녀재판(?)에 넘겨지고 아들이 보는 앞에서 화형을 당한다. 성직자라고 부르는 목사에 의해 끊임없이 마녀임을 고백하라는 협박을 받았지만 그녀는 사람들을 도왔을 뿐이지 악마와 교류하지도 않았고 마술을 부리지도 않았다고 울면서 항변한다. 그러나, 결국 불에 달궈진 쇠꼬챙이의 고문을 당하면서 그녀는 마녀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목사의 집 지하실에서. 


모든 성직자는 성인이 아니라, 성인이 되기가 거의 불가능한 사람에 불과하다. 너무 흔하게 쓰여서 정말로 그런 것처럼 느껴지는 성직자라는 말은 폐기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노블리스의 삶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계신 프란치스코 교황 정도 된다면 성직자라는 단어가 아주 조금 어울릴 것이다. 그러나 종교의 지도자나 수행자들을 성직자라고 하는 신격화된 단어로 명명하는 것은 반드시 고려해야 하고, 성직자라고 불리는 이들 스스로 이 용어의 폐기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름없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의 생각과 선행은 아무 의미가 없다. 악마들의 해석만이 중요할 뿐이다. 광기에 엄마를 잃은 불쌍한 아이 에벤스는 묻고 한스는 대답한다. 


'왜 사람들은 남을 돕는 사람을 못살게 굴지요?'


'(중략) 뭔가 잘못되면 악마에게 책임을 떠 넘기는 편이 간단하지. 하지만 악마는 태워 죽이거나 맞싸울 수 없어. 그래서 자기보다 약해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태워 죽이거나 괴롭히는 거야.'




작은 것이라도 권력을 쥔 사람들은 책임 지는 것을 싫어하고 회피하고 떠넘긴다. 그래야 자기 권력을 유지할 수 있거나 더 큰 권력을 가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자기의 잘못은 거짓 또는 합법(적법)으로 덮고, 다른 사람의 선행은 왜곡하여 부정함으로써 사치와 권력과 쾌락을 유지하려 한다. 수많은 악한 자들이 사람들 속에서 열심히 활동한 결과로 인간의 역사는 끔찍해졌다. 소수의 선한 사람들이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왔지만, 악한 이들을 단죄하지 못하는 바람에 세상의 비참함을 끝내지 못한다. 선한 사람들이 단죄하기에는 죄지은 자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최후의 심판을 내려달라고 기도한다. 의미없는 일이다. 민주당이 또는 자유주의자들이 우유부단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은 선한 사람들의 착한 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들은 평화로운 공존을 원한다. 선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은 입으로는 두고 보자 하지만 인간에 대한 폭력을 원하지 않는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 마음속에는 누구나 마녀 사냥꾼이 숨어있다'지만 선한 사람들은 절대로 그들이 밖으로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 선한 마음을 우유부단함이라 비난하고, 적법과 합법이라는 탈을 쓰고 쾌락을 즐긴다. 그러지 말자.


더러운 자들의 부정과 거짓을 덮으려는 마녀사냥이 번성하고 있는데도 한스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동안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로부터 벗어나려고 수없이 도망을 쳤지만, 자신의 양심으로부터는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스는 광기와 맞서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두렵지만 피할 수 없는 삶이기에 조심스럽게 할 일을 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버려 두어도 된다. 아니다. 광기에 참여하지 않으며 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세상은 반드시 미친자와 희생자로만 나뉘어지는 것은 아니다. 착한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제3지대가 있다. 두렵다면 그리고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서 제3지대로 가자. 옳지 않은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아주 많다. 아이는 그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어째서 어른이 더 비현실적인가.


'그야 두렵지. (중략) 병든 사람을 고쳐 줄 때마다 난 나 자신의 화형대에 장작 한 개비를 더 올려놓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내게 와서 도움을 청하는 사람 모두 그 장작더미에 불을 붙일 사람이 될 수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사람이 괴뤄워하거나 죽어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할까?' 


(중략) '단지 몇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진 마세요! 누군가 아저씨를 욕하기 시작하면 모두들 함께 입을 모을 테니까요.'


에벤스와 한스는 결국 악한 자들의 손아귀에 걸려들고 만다. 그들의 대응 방식에는 문제해결의 열쇠가 없다. 그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최후의 심판을 내려주실 것을 기대하는 쓸모없는 희망 이외에는 없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싶지는 않다. 맞서 싸우되 손자가 가르친대로 36계를 유용하게 쓰도록 하라고 할 것이다. 어차피 세상은 조금씩 밖에 나아갈 수 없다. 많은 악한 자들이 생겨나고 선한 자들은 아주 조금씩만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들들아, 이것을 알아야 한다.


'에스벤은 한스와 감독관을 바라보았다. 에스벤은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본 것 가운데 가장 선한 두눈을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아,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 무기력한 자기 희생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윤석열의 외침이 뭉클하다. 이렇게 당당히 외치며 강하게 살아남아 싸워야 한다.


'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징계를 받아들일 수 없다.'


- 마녀사냥, 라이프 에스퍼애너슨 지음, 김경연 옮김 / 보림문학선(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