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스스로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면서도 '그리스인 조르바'를 아직까지도 읽지 않았다. 지난 번 그리스 여행에서도 크레타 섬이 아닌 산토리니를 간 것은, 깊은 철학을 담은 역사의 현장 보다는 황홀한 즐거움을 주는 아름다운 자연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리미는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는데, 스무 쪽을 넘겼는데도 지루하다. 대가라고 하는 이윤기가 번역을 했는데도 말이다. 아무래도 무일이 너무 급한 모양이다. 그래서, 아예 옮긴이의 말부터 읽고 소설을 읽기로 했다. 보통은 나름의 해석을 위해서 전문가의 해설은 나중에 읽고 확인하는 작업을 하는데, 지난 번 '돈 끼호테'처럼 명작을 읽다가 팽개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토지도 너무 지루해서 읽지 못했다. 언제 다시 읽기를 시도할 지 모르겠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장길산, 임꺽정 등은 전부 읽었다. 다만,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다. 다시 읽을까.
역시 기대한 것처럼 강렬했다. 이런 강렬함이 있어야 글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은가. 신을 구원하라고까지야 외칠 수 없지만, 신을 이용하여 평안을 얻으라고는 외칠 수 있다. 그는 매우 강하고 강렬한 모양이다.
신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구원해야 한다고 주장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바로 그 사람이다. (중략) 아버지 <미할리스 대장>은 아홉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터키인들 손에 교수형을 당한 기독교도들의 발에 입을 맞추게 함으로써 그들의 죽음에 경의를 표하게 하고는 명령했다.
'잘 보고, 죽을 때까지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아버지, 누가 이분들을 죽였어요?'
아버지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자유'
시원하게 썼으니 시원하게 읽힌다. 천재와 우주신이 이미 이십대 전후인데, 이렇게 시원하게 교육을 시켜 본 적이 없다. 부끄럽다. 백년 전의 미개한 크레타인이 이렇게 교육을 했는데, 우리는 주눅들어 있다. 그래서 이렇게 교육을 시킨다. 조금 비겁한 것 같기도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내 목소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유는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야. 평화롭게 그것을 지켜내야 해.'
무일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협박하여 종교에 이르게 하는 것이 기독교라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카잔차키스도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협박이라고 표현해서 그렇지 죄를 지은 불편한 마음으로 어떻게 행복하게 살겠는가. 그런데, 기독교를 믿으며 친일행위와 반민족행위와 반민주적인 행위와 불법적인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기독교의 협박이 잘 먹혀 들어간 일도 아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아름다운 것을 독점하려다 보니 죄악도 발생하는 것이겠지만.
그의 아토스 산 순례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종신형을 살기 위해 어두운 감옥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중략) 사람을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일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중략)
'인간이 이렇듯이 죄악과 악마에 시달리는 것은 하느님 탓이라고 하더라고 전해 주세요. 하느님이 세상을 너무 아름답게 만든 탓이라고요.'
우주신이 생일선물이라고 편지와 함께 책갈피 사온 것을 가져왔다. 부처다. 묘하게도 카잔차키스는 불교의 엄격한 수행과 집착이 없는 득도의 경지를 매우 중요시 여겼다고 한다. 그는 불교를 공부하고 그것에 영향을 받았는지 이렇게 묘비명을 남겼다고 한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는 불교의 사상이 녹아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이 있었다.
1953년 그리스 정교회가 <미할리스 대장>, <최후의 유혹>, <그리스인 조르바>가 신성을 모독한 작품이라는 이유로 작가를 파문하려 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성스러운 사제들이여, 여러분은 나를 저주하나 나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여러분께서도 나만큼 양심이 깨끗하시기를, 그리고 나만큼 도덕적이고 종교적이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윤기의 시원한 글로 초반의 지루함을 극복하고 본문을 다시 읽어나가 보자. 조금 덜 소중한 것을, 예를 들어 돈벌이를 위한 직장 같은 것을 버린다고 해서 자유스러워지는 것은 아니다. 직장은 깨끗한 농사라는 더 큰 것을 위해 버린 것인데, 그 큰 무엇도 결국은 나를 속박하여 불편하게 만든다. 힘든 노동을 해야 하고 대가는 기대한 것보다 훨씬 적다. 결국 아무 것도 바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아야 자유다. 그것은 불가능한 걸까. 가족과 집, 최소한의 돈 등 행복을 위해 갖춰야 할 작은 것들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바라고 두려워한다. 결국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다.
(자유란) 다른 정열, 보다 고상한 정열에 사로잡히기 위해 쏟아 왔던 정열을 버리는 것. 그러나 그것 역시 일종의 노예근성이 아닐까? 이상이나 종족이나 하느님을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는 것은. 따르는 전형이 고상하면 고상할수록 우리가 묶이는 노예의 사슬이 길어지는 것은 아닐까? (중략) 그렇다면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건 무엇일까?
스스로 읽는다는 것과 누군가 읽어주는 것의 사이에는 놀라운 차이가 있다. 1장과 2장의 지루한 장면 묘사들을 읽어내다가 꼭 읽어 내야할 것을 놓친 기분이었다. 우연히 조르바를 읽어주는 라듸오를 듣게 되었다.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참 재미있다. 때로는 어린 시절처럼 누군가 책을 읽어주면 좋겠다. 그러면 색다른 감동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쨋든 다시 처음을 읽으면서, 이런 자유는 매번 꿈꾸기는 하지만 매우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산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불가능하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해 보자. 그러면 자유아닌가.
'여행하시오?'
'크레타로 가는 길입니다. 왜 묻습니까?'
'날 데려가시겠소?'
'왜요?'
'왜요 왜요! 왜요가 없으면 아무짓도 못하는 건가요? 가령, 하고 싶어서 한다면 안 됩니까?'
이야기가 아직 초반이기는 하지만 조르바의 여성 편력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관계다. 원하기도 하지만 쉽게 실현하지 못하는 삶이다. 그래서 그런지 매우 가볍고 저열해 보인다. 한국의 여성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며 기분이 좋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건 그렇고. 조르바의 두목이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시민들의 깊은 고민이 있다. 조국과 의무.
1986년에 신체검사 영장이 나왔다. 불과 5개월 후에 군입대를 해 버렸기 때문에 단기간에 걸친 저항이기는 했지만 국가전복의 음모를 실행한 수괴 전두환의 군대에 입대하기를 거부하려고 신체검사를 받지 않았다. 조국을 지키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대에 가려는데, 반란군들이 신성한 조국과 군대를 피로 더럽히고 있으니 어떻게 군대를 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시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그 해 11월에 군입대를 해야 했다. 군사반란에 대해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 것은 지금도 부끄럽다. 파멸을 받아들일 만큼 용기가 없어서였다.
'그리스, 우리조국, 의무 같은 게 다 뭐야. 진실은 여기에 있는데!'
자네 대답은 이랬지.
'그리스, 우리 조국, 의무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나 우리는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기꺼이 파멸을 맞아들여야 하는 것이네.'
갑자기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조르바는 부불리나이며 오르탕스 부인인 늙은 가수와 사람을 나누고 아름다운 과부를 사랑한 젊은 책벌레는 붓다의 도움을 받아 힘겨운 정염과의 싸움을 벌인다. 마시고 먹고 자고 사랑하고를 반복하는 삶이 지루하게 반복된다. 이 장면들이 지루한 것은 현대판 성형 영화와 화장 드라마에 너무 오염되어버린 뇌가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타깝다. 조르바는 한참을 또 돈 끼호테와 같이 책상 구석에서 검게 가라앉아 있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하늘빛 도서관의 문자였다. '미반납 도서입니다' 이 문자가 의미하는 것은, 겨우 450쪽의 책을 세계명작을 3주 동안에 읽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부랴부랴 책을 다시 들었다. 세르반테스에게 행한 잘못을 카잔차키스에게 또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또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읽었다. 누구나 다 알고 이해하는 이야기. 그런데, 이 표현은 정말 그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스런 여인이 모든 공간을 환하게 비춘다는 이야기 말이다.
"두목, 문제의 여자가 교회에 왔습디다. 성가대 앞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성상이 환해지지 뭡니까. 예수님, 성모님, 열두 사도님께 맹세코 ..... 갑자기 모든 게 환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성호를 긋고는, <어떻게 된 거야, 햇빛이 비친 건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둘러봤더니, 아, 과부 때문에 그렇게 되었던 거라니까요."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여자로부터 사랑을 얻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조심해야 하는 것이지만 용감하게 도전하지 않으면 얻을 수가 없고, 여자를 얻은 뒤에는 귀하게 아름답게 가꿔 주어야만 아름다움을 계속해서 즐길 수 있다. 여자를 치장해 주라는 것은 아니다. 그녀를 아름답게 대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든 조심해라. 여자는 하느님이 악마의 뿔로 만들었다고 한다.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려다가 실패한 하느님이) 악마의 뿔로 여자를 만들어 보리라! 그리고 만드셨지. (중략) 여자의 어디를 만지든, 너는 악마의 뿔을 만지는 셈이란다."
힘든 인생살이를 미처 알기도 전에 과부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섬마을 청년 파블리는 바다에 몸을 던져 크레타 섬을 떠나 버린다. 비극의 씨앗이다. 모든 마을사람들이 과부를 비난하자 젊은 작가가 나선다. 그녀에게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사랑은 죽음보다도 강한 것이어서 받아들이지 않은 사랑 때문에 그녀가 비난받아서는 안될 것이라고. 여자를 보호함으로써 오렌지꽃처럼 향기로운 여자의 사랑을 얻게 된다. 작가는 그녀와 짧지만 행복한 하루밤의 사랑을 나눈다. 용기를 내지 못하던 작가가, 사랑스런 부불리나가 부활절을 코 앞에 두고 죽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술과 힘든 노동, 바다 말고도 자신을 던져넣을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눈을 감은 나는 행복했다. 몸은 가벼웠고 마음은 사냥을 끝내고 햇살 아래서 잡은 먹이를 먹고 입술을 핥고 있는 짐승의 마음이라도 된 듯이 느긋했다. (중략) 내 존재의 심연에서 전날 밤에 느낀 즐거움이 솟아올라 필경은 흙으로 빚어졌을 내 육체라는 대지에 물을 대어 주는 것 같았다. 누워서 눈을 감고 있노라면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눈을 뜨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생명이 충만한 부활절에 사랑하는 과부를 죽게하고, 그녀의 죽음을 대하는 두 사람을 묘사하는 작가의 머리 속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래서 그가 파문을 당했을까. 두 사람은 슬펐지만, 어린애처럼 울다가 논리로 정리해 버리는 작가가 있고,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하느님에게 원망을 퍼부어대는 자유로운 영혼이 있다. 슬픔을 이기는 것은 힘든 일이다. 지식과 논리에 의지해서 슬픔을 이겨내는 인생들은 손가락이 곱고 피부도 매끌거린다. 거친 손을 가진 사람들은 산을 오르고 오장육부가 힘들어지면서 슬픔이 지워진다. 무엇을 선택할지는 이미 몸에 새겨져 있다. 그런데도 식자들은 거친 손을 자유라고 부른다. 정말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가지 못할 길에 대한 덕담일까.
"<내 죽는 날 하느님이 내 앞에 광대뼈를 내밀면, 그리고 그 작자가 진짜 하느님이라면, 부끄러운 꼴 좀 볼 거예요.> (중략) 그는 벌떡 일어났다.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두목, 참을 수가 없어요. 산책 좀 하고 와야겠어요. 산을 두어 번 오르내려 내 몸을 피로로 잔뜩 채워야 오늘 밤 잠잠할 겁니다.> (중략) 나는 불을 끄고 누운 채, 내 나름의 유치하고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현실을 재구성해 보았다. (중략) 그날 내가 내린 구역질 나는 결론은, 일어난 사건은, 마땅히 일어나야하는 사건이라는 것이었다."
눈 먼 행운의 신이 그들에게 부딪치지 않아서 조르바가 심혈을 기울이고 작가가 전 재산을 걸었던 갈탄광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망해버렸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자유로움을 느꼈다. 서로를 원망하지 않았다. 400쪽이 넘도록 작가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도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도대체 무슨 뜨거운 사랑이 이 두 남자에게 흘렀다는 말인가. 영화를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이해를 넘어선 다른 사람들의 해석을 듣고 싶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들의 사랑을 이해하고 싶다. 그래도 이런 조르바의 외침은 이해할 수 있다. 그 경지에는 도달하기가 어려운 책벌레이지만 말이다. 아니다. 책벌레도 자유인의 옆에서 경지에 올랐다.
"그는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팔다리에 날개가 달린 것 같았다. 바다와 하늘을 등지고 날아오르자 그는 흡사 반란을 일으킨 대천사 같았다. 그는 하늘에다 대고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전능하신 하느님, 당신이 날 어쩔 수 있다는 것이오? 죽이기밖에 더 하겠소? 그래요, 죽여요. 상관 않을 테니까. 나는 분풀이도 실컷했고 하고 싶은 말도 실컷 했고 춤출 시간도 있었으니..... 더 이상 당신은 필요 없어요!>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중략) 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았다.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적(혹자는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혹자는 악마라고 부르는)이 우리를 쳐부수려고 달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친구를 둘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그래도 나는 그런 가족들을 가지고 있으니 행복한 일이다. 이런 친구가 되지 못하면 이런 친구를 가질 수 없다는 바보같은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책벌레는 언제나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할 뿐이다. 현명함의 함정에서 어서 빠져 나와야 할텐데.
"모든 것이 끝났다. (중략) <내겐 그리스에 친구가 하나 있소. 내가 죽거든 편지를 좀 써주시어, 최후의 순간까지 정신이 말짱했고 그 사람을 생각하더라고 전해 주시요. (중략) 내 평생 별짓을 다 해보았지만 아직도 못한게 있소. 아, 나 같은 사라은 천 년을 살아야 하는 건데...> (중략) 침대에서 뛰어내려 창문가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창틀을 거머쥐고 먼 산을 바라보다 눈을 크게 뜨고 웃다가 말처럼 울었습니다. 이렇게 창틀에 손톱을 박고 서 있을 동안 죽음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신을 거부하고 인간의 위대함을 외친 니체도 있고, 모든 것이 허무하거나 끊임없는 욕심을 버리려는 붓다도 있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며, 평생을 사랑을 쫓으며 사는 사람이 위대하다는 자유인이 있어서 이 책은 좋다. 지루했던 것은 화려한 조명에 잠들어 버린 뇌의 사랑신경 때문일 뿐이다. 곳곳에서 평화를 구하는 작가의 고뇌가 있었고, 공들여 창조해 낸 아름다운 문장이 있었고 그것들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었다.
"산다는 게 감옥살이지. 암, 그것도 종신형이고말고, 빌어먹을."
"오늘 같은 날 약간 제정신이 든 김에 나 자신에게 물어봤어요. 도대체 무슨 지랄이 도져 우리에게 별로 나쁜 짓도 안 한 놈들을 덮쳐 깨물고 코를 도려내고 귀를 잘라 내고 창자를 후벼 내면서도,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를 도우소서, 그랬을까?"
"부드럽게 비가 내리는 시각에 그 비가 내부의 슬픔을 일깨운다는 것은 얼마나 관능적으로 즐거운 일인가!"
"거센 남풍이 아프리카 쪽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채소, 과일, 크레타인의 가슴을 자라게 하고 부풀리는 바람이었다. 과부처럼 내 머리도 껍질이 터지면서 익어 터지는 것 같았다."
"나는, 이따금 내 길을 잃어버리고 잊어버렸다는 느낌, 내 신념은 불신의 모자이크라는 느낌 때문에 자주 혐오스럽다네. 이따금 흥정이라도 해야 할 기분이네. 한순간을 사람답게 사는 것으로 나머지 인생을 던져 버리자는 것이지."
"우리 위에서 밤은 별에다 불을 켰고 우리 내부에서는 심장이 안식을 구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즐겁게 노동하고, 자연을 매일같이 발견하면서 즐거워하며, 신념을 가지되 얽매이지 말고, 여자를 사랑하며 사는 것이 남자의 삶이다. 여자들의 삶은 또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겠지만, 조르바는 남자의 삶에 대해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천 가지가 남았어도 아쉬워하지 말고, 친구가 단 한 명이어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도시의 빌딩 숲에서 더 감동적일까.
쇠락한 그리스는 철학과 문학과 자유를 어디에다 썩이고 있는가!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옮김(열린책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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