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화장실을 찾아 캠핑 사이트를 찾다가 골프장을 발견했다. 잘됐다. 일찍 골프장 산책을 하면 오후에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백년이 넘은 골프장인데, 입장료가 22불로 비싸기는 했지만, 관리도 잘 돼 있고 아름다웠다. 샤워시설, 클럽하우스 시설도 모두 좋아서 산책을 마친 11시에는 천재와 함께 근사하게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시원한 맥주도.
샤워를 마치고 너무 더워서 웃통을 벗고 다니다가 클럽하우스 안에서 노신사의 항의를 받았다. 전통이 있다보니 자유분방한 행동들은 제재를 하는 모양이다. 어떤 안내문구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이곳의 문화가 그렇다고 하니 사과를 하고 재빨리 옷을 갖춰 입었다. 순간 긴장했지만 신속한 대응으로 클럽 하우스의 분위기가 부드러워졌고, 노신사들은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며 환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솔한 사과와 외부인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 들여주는 넓은 마음이 잘 어우러진 일이었다.
오후에는 타운즈빌 시내에서 수족관과 아이맥스 영화를 보았다. 아이맥스 영화관은 무척 오래된 시설처럼 보이는데, 의자가 거의 눕듯이 설치되어 있고, 천정에서 벽까지 전체가 돔 형태의 화면으로 되어 있어서 마치 밤하늘을 누워서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50불이라는 큰 돈을 썼지만 현대 문명을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쇼핑센터에 가서 돼지고기를 사다가 바비큐 플레이트에서 김치찌개를 끓이며 일기를 쓰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멜버른에서 온 부인이 ‘Big Clever'라며 재미있어 한다. 매콤한 찌게 냄새는 입맛을 돋우었는데, 막상 고기를 먹어 보니 역한 냄새가 나서 먹기가 힘들었다. 워낙 고기종류가 많다보니 돼지고기를 산다고 하면서 양고기나 다른 고기를 사왔는지도 모르겠다. 다음부터는 안전하게 베이컨을 사야 할 모양이다. 고기 맛은 그랬지만, 오랜 만에 끓여진 김치찌개는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었고, 배를 두드리며 기분좋게 털리로 떠나기로 했다. 타운즈빌로부터 약 200키로 정도니까 3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차에서 잠을 자면 짐을 숙소로 옮기는 귀찮은 일이 없어서 참 좋은데, 잠자는 동안 온도 맞추기가 어렵다. 에어컨을 켜면 너무 춥고, 끄면 너무 덥다. 이 문제만 해결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 말이다. 엊그제 독일 친구처럼 밴을 사서 뒷부분에 침대와 온도조절기를 설치하게 되면 편안하게 여행을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돌아다닐 일이 없으므로 필요가 없겠지만, 나중에 통일이 되어 유라시아 대륙을 차를 타고 이동하며 여행을 할 수 있다면 해 볼 만한 일이다. 호주 사람들은 한 번 국내 여행을 하게 되더라도 최소한 한 달에서 1년이 걸린다고 하니 비용절감 차원에서도 그런 차량이 꼭 필요한 일처럼 보인다.
털리에 도착해 보니 무척 작은 도시인데도 너무 늦어서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을 못하겠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잠을 자려면, 숲이 가까운 곳에 차를 주차시키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숲이 가까운 쪽으로 길을 잡았는데, 마침 언덕에 교회가 하나 있었다. 그곳에 주차하고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천재는 아까부터 잠들어 있다. 새우잠을 자는 모습이 좀 안돼 보인다. 하루 밤만 더 자면 다시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을 텐데 뭐. 편안한 잠자리는 아니지만 아들과 둘이 이렇게 가깝게 서로를 느끼며 잠드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여기에 그리미와 우주신까지 모두 함께였다면 훨씬 행복한 잠자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제법 선진국의 흉내를 낼 수 있게 되었지만,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낼 수 있는 문화는 아직도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 가족과 함께 하는 편안한 잠자리가 정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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