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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뉴질랜드호주자동차여행

술취한 젊은 놈들에게 공격을 받다_051105, 토

어제 밤에 초승달과 밝게 빛나는 별의 조화가 너무 좋아서 사진으로 남기려 했는데, 새로 산 카메라의 성능이 영 좋지 않아서 내가 원하는 작품을 만들지 못했다. 두 개의 현대식 빌딩 사이로 아름다운 우주의 영상이 펼쳐지는 것을 두 눈 가득 기억해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우려했던 사태가 일어났다. 관광지다 보니 젊은 친구들이 술들을 많이 마시고 있었다. 다들 목소리가 높고 잔뜩 어울려 다니면서 신들이 났다. 아마 새벽 1시가 넘어서였을 것이다. 술 취한 목소리들이 차 앞을 지나다가 갑자기 우리 차를 후려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사고를 치고 간 것이라고 느꼈지만 일단 첫날 아가씨들의 주의사항. 절대로 시비 붙지 마라. 떼거지로 덤벼든다. 겁이 나서 나갈 수도 없었지만, 그 말 때문에라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안에서 우리가 자고 있는 것을 보고 동양인이라 겁을 주려고 한 것도 아니고 , 모든 것이 보험처리가 된다고 했으니 더 나설 필요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확인해 보니 모래로 후려친 차 앞부분이 쭈그러들지는 않았으나 칠이 완전히 벗겨진 몇 개의 선이 생겼다. 너희 나라 청년들이 이래 놓았으니 나 보고 뭐라 하지 마라.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아침을 해변의 식탁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먹기로 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해뜨는 장면을 보고 싶었는데 늦잠을 자느라 보지 못해서 몹시 아쉬웠다. 지나는 사람들과 가벼운 인사를 주고 받는다. 김치, 고추장, 멸치, 밥 등 자기들이 못 보던 음식들일텐데도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빵과 우유로 대충 아침을 떼우는 사람들에게 이런 식의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는 우리가 재미있기는 할 것이다. 인사를 하며 보내오는 그 미소만큼 참으로 친절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아침을 먹고 처음으로 골프를 치러 가기로 했다. 간이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중년의 아저씨에게 골프장 위치를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골프장에 도착했는데 부슬부슬 비가 내려 시원한 느낌을 준다. 먼저 천재가 컴퓨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락카장 안쪽이 약간 덥기는 하지만 의자와 전원이 있고 넓직한 공간이어서 충분히 컴퓨터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누가 물으면 아빠를 기다린다고 하라고 해 놓고 필드를 나섰다. 가져오지 않은 드라이버를 빌려서 첫 홀에 섰다. 역시 긴장되고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오늘의 운동도 매우 험난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열심히 걷자.


형편없는 실력으로 헤매면서 라운딩을 하는데, 그만 골프공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 마지막 공을 워터 해저드에 집어넣는 모습을 뒤의 할아버지가 보시더니 공을 세 개나 꺼내 주시면서 즐겁게 보내다 가라고 한다. 플레이는 엉터리였지만 이런 분들의 마음 씀씀이에 고마움을 느끼며 오늘의 산책을 마쳤다. 비가 잠깐 내려주었는데도 뜨거운 태양 때문에 온 몸이 다 불타 버리는 것 같다.


엉터리 골프를 끝내고 선샤인 비치로 갔다. 원래는 누사 헤즈에서 점심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길을 헤매다가 화가 나서 아무 곳이나 가까운 비치로 갔다. 버터와 잼, 그리고 빵으로 간단히 요기하고 바닷가에서 놀기로 했는데, 뜨거운 열기 때문에 버터가 다 녹아 버려 빵과 칼, 쨈이 온통 버터기름 투성이다. 이럴 때는 정말 확 돌아가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짜증을 가라 앉히고 바다로 갔다.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역시 주말에는 모든 것을 잊고 노는 사람들이다. 여전히 파도가 세서 도저히 수영은 불가능하다. 한 시간 가량을 파도와 씨름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천재는 파도 속에서 수영을 해 보고 싶어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아직은 기술 부족으로 떠 있기 조차 힘든 모양이다. 두려움도 큰 몫을 하고 있다. 해변은 정말 깨끗하고 아름답다.


수영을 마치고 샤워를 하는데, 샤워장이 그냥 야외다. 옷을 입은 채로 씻을 만큼 씻은 다음 화장실의 지정된 장소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이곳의 시설은 좀 떨어지는 편이지만, 화장실, 샤워실, 바비큐 판, 테이블 등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는 가족 휴식 공간이다. 그 모든 것이 무료이고, 관리도 마을의 자원봉사자들이 한다고 하니 참 부러운 일이다. 우리 같은 가난한 여행객들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바다에서의 수영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아쉬워하면서 록햄프턴으로 향했다. 중간에 프레이저 아일랜드와 하비 베이가 유명한 관광지인데, 핵심은 또 고래 관찰과 스노컬링 등등이다. 천재는 무엇하러 그런 것을 하냐고 한다. 아빠가 속도 위반으로 내야 할 벌금을 이번 여행 중에 기필코 벌겠다는 각오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산책이나 수영, 해변에서의 여유가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다. 오후 네시에 출발해서 오백 키로를 주파해야 하는 험난한 여행이다. 여정의 중간을 좀 넘어선 번다버그의 케이에프씨에서 찬혁이가 점심 때 먹고 싶어했던 고기를 닭고기로 대신했다. 호주에서 엿새만에 처음으로 고기 맛을 본 것이다.


열 두시가 다 되어서야 록햄프턴에 도착했다. 맥카페에서 늦은 저녁을 해결하고 잠을 청했다. 새벽에 오랜 만에 먹은 고기 때문이지 찬혁이가 약간 설사를 했다. 나도 마찬가지. 다시 모빌 주유소 앞으로 장소를 옮겼다. 그곳은 배낭여행객들을 위한 장거리 버스들이 서는 곳이다. 깨끗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샤워시설까지 갖춰진 쓸 만한 시설이었다. 지친 몸들을 벤치에 기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배낭여행객들이 안쓰럽다. 하지만 그들은 목적한 장소에 도착하면 백패커스에서 피곤한 몸을 쉴 것이다. 우리는 오직 차가 이동수단이자 잠자리다. 이 차량들을 약간만 개량한다면 사실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차안에서의 생활은 약간 덥고 불편하다. 피곤한 하루였다. 골프에 해수욕에 장거리 운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