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돈끼호테의 원전을 읽고 싶었다. 스페인어로 쓰여 있으니 안되고, 영어로 번역되어 있더라도 내 실력으로는 불가능하니 우리말로라도 제대로 번역된 책을 보고 싶었다. 열심히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의외로 돈끼호테의 제대로 된 완역본은 찾기가 어려웠다. 지난 주에 정조대왕 이산과 태국 여행 책자를 반납하고 한울빛도서관의 서고를 훑어보다가 우연히 창비에서 번역한 돈 끼호테를 만나서 너무 반가웠다. 그동안 돈퀴호떼로 검색을 했더니 찾지 못했던 모양이다. 약 800쪽에 달하는 책이 두 권이나 되었다. 천재아들의 번역에 의하면 무일이 알고 있던 돈뀌호테가 아니라 끼호테 가문의 남자 돈 끼호테이다.
세르반테스는 스페인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재미있는 소설의 작자로 알려진 대문호, 대문호다. 그는 대문호의 이름에 걸맞게 전쟁터에서 포로가 되어 고생 고생하면서 탈출을 하거나 무적함대의 병참담당 장교로 근무하다가 공금횡령 혐의로 감옥살이를 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1604년 경에 감옥에서 쓰기 시작한 이 소설이 조금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무덤 조차 발견되지 못한 죽음을 68세에 맞이하게 된다.재미있는 소설가의 극적인 삶이었다. 이런 이상한 사람이 소설을 쓰는데 집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왜 그는 삶으로써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을 보여주지는 못했을까.
책에서도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만 돈 끼호테는 언제나 미친 사람으로 쉽게 읽혀진다. 그 미친 사람의 머리 속에는 이런 생각이 들어차 있다. 현실감이 없이 말하고 차린 모습이 이상하기도 하지만, 불가능한 꿈을 실현시키려는 의지가 너무 확고해서 사람들은 금방 미치광이의 모습이 떠올려지는 모양이다. 미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내가 자네의 주인이고 어른이지만 이제는 자네도 나와 똑같이 격의없이 행동하는 것이 좋아. 말하자면 나와 같은 그릇으로 밥을 먹고, 내가 마시는 것을 같이 마시고 그래야지. 왜냐하면 방랑기사의 기사도라고 하는 건 사람의 도리와 같아서 모든 일이나 사람들을 모두 동등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지. (중략) 염소치기들은 기사도니 하인도니 하는 이상한 소리들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그저 말없이 먹는 데만 열중하면서도 아주 점잖게 고깃덩어리를 주먹으로 움켜쥐고 있는 손님들을 바라보았다."
"오로지 약하고 궁지에 몰린 사람들을 돕는다는 일념 하나로 눈앞에 닥치는 대로, 가장 위험한 모험일지라도 이 팔뚝의 힘이 다할 때까지 몸과 마음을 바쳐 싸울 생각입니다. (중략) 돈 끼호테가 말을 마치자, 같이 가던 모든 사람이 '이 영감이 정말 정신이 나갔구나'하고 확신하게 되었고, 그의 머리를 돌게 한 정신병의 종류도 알게 되었다."
현재까지 1권의 350쪽까지 읽었는데, 아무래도 잘못 생각한 모양이다. 이야기가 재미없고 지루할 뿐만 아니라 미치고 초라한 몰골의 기사의 행적에서 무언가를 발견해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다 못해 웃음이나 감동도 발견할 수 없다. 어린이용으로 각색된 동화책으로나 어울릴만한 소설이다. 이야기는 1/4도 끝나지 않았다. 세르반테스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솔직하게 말하면 궁금하지도 않다. 어떻게 할까. 끝까지 읽어야 하나? 그의 말대로 사람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하찮은 것이 정말로 마법에 걸린 가장 소중한 것일까. 이 소설의 지루한 이야기까지도. 책상 위 한쪽에 '무한론 교실(뿌리와 이파리)'이 자꾸 눈길을 끈다.
"현명한 마법사의 묘한 술법이 오히려 나에게 이득인 것은 실제로는 맘브리노 투구인데 모든 사람에게 세숫대야로 보이게 한다는 거지. 이유인즉 맘브리노 투구는 누구나 탐내기 때문에 내가 그걸 가진 걸 알면 모두들 빼앗으려고 나를 쫓아다니겠지. 하지만 그냥 이발사의 세숫대야로 보이니까 아무도 그걸 구태여 가져갈 생각을 않는 거야."
오늘이 벌써 책을 읽기 시작한 지 2주째다. 그동안 추수를 하느라 약간 바쁘기는 했지만 정말 재미있는 책이었다면 이렇게 진도가 안나갈 수는 없다. 오늘은 이 책의 반납일인데, 연장을 할까 말까를 망설이게 된다. 연장을 하면 이 책을 읽느라 다른 책을 읽을 수 없게 되고, 반납하게 되면. 별 영향은 없지만 좀 참아보자. 지루한 책이 인생을 지루하게 만들기는 한다. 1주일만 연기하고 읽어본다.
세상일이 언제나 그런지 정의감에 넘치는 행동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핍박받는 농민들을 해방하기 위해 일어난 동학도들의 갑오농민전쟁이 수많은 인재들을 죽음으로 몰아감으로써 참혹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차라리 가만히 있어주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웃기면서 평화롭게 끝난 '나는 꼼수다'가 좋다. 역시 패배했지만 누구도 사멸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존재가 사라지면 그가 원하던 것이 비록 정의고 진실이었다 할지라도 허망하기 때문이다. 존재해야 한다.
"(돈 끼호테) 나리, 다시 어디서 저를 보거들랑, 누가 저를 발기발기 찢어뭉개고 있는 걸 보셔도 도와주거나 구해주려 하지 마세요. 제 불행 제가 감당할 테니 내버려두세요. 그래도 나리께서 도와준 뒤 당하는 수모보다는 많지도 크지도 않을 것니다. (중략) 안드레스의 이야기를 듣고 돈 끼호테가 얼마나 성질이 났는지 자칫하면 분통을 터뜨릴까봐 다른 사람들은 차마 웃지도 못하고 굉장히 조심을 했다."
결국 어제 돈 끼호테 두 권을 도서관에 반납하고 말았다. 더 이상 읽지를 못하겠다. 소설책 천 페이지를 3주가 지나도록 읽지 못했다. 대부분의 명작이라는 외국소설들을 잘 읽어내지를 못하지만 이 책은 정말 유난히 그랬다. 세르반테스와 스페인의 시민들과 수많은 문학평론가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읽은 부분은 액자 소설처럼 들어간 이야기인데, 어느 젊은 신랑이 친구에게 자기 아내를 유혹해 달라고 부탁하는 부분이다. 아내의 순결과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병에 걸렸다고 친구에게 부탁을 하고, 친구는 그것은 세 사람 모두의 명예를 짓밟는 일이어서 안된다고 설명하는 이야기다. 그 설명이 하도 장황해서 십여쪽에 걸쳐 있다. 그러나 결국 신랑은 가장 친한 친구가 하지 않는다면 다른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으로 쉽게 설득을 해 버리고, 친구는 신랑의 부탁을 들어주는 척만 한다. 지금 이 시대 한국 드라마의 소재와 똑같은 내용이다. 그 뒷이야기가 분명 있고, 결말이 아주 조금만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냥 책을 반납해 버렸다. 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그 시간에 태국여행기를 읽었다. 집중이 잘 되었다.
그래도 세계명작을 읽었는데, 뭔가 정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기사 소설을 무지막지하게 많이 읽으면서 돈 끼호테는 다 늙어서 세계관을 정립하고 해야 할 일을 찾는다. 그의 세계관과 할 일은 제법 정의롭다. 현대의 눈으로 봐서도 그렇고 당시의 눈으로 봐서도 그렇다. 그런데, 그의 행위의 결과는 전혀 그렇게 나오지를 않는다. 결국 그의 생각은 옳았으나 실천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인간 세상은 그런 것이다. 좋은 생각을 실천하려 하면 그 생각은 현실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좋은 생각은 언제나 미래에 실현되어야 할 일이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이 좋지만, 행동은 항상 생각과 말 보다 한 세대를 뒤로 늦춰야 적당한 모양이다. 좋은 생각들이 일부가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 대다수에 의해 공유될 때만이 실현될 시기가 되는 것이다.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너무 빨리 실현하려고 하면, 뼈가 부러지도록 얻어 맞거나 미치광이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대해서는 정말 잘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 것이다. 언젠가 다시 한 번 도전해 봐야겠다. 아직은 생각이 실천으로 연결되어 현실에서 완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 크기 때문에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읽기를 유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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