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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두바퀴 이야기

어깨도 엉덩이도 너무 아파_120829, 수

출근할 때는 두고 오는 아내와 아이들이 안쓰럽고

퇴근할 때는 부모님이 힘들게 일하실까 걱정이 되고,

그래서 오나가나 걱정이다.


이것은 인지상정이기는 하나 바보같은 생각이다.


그래서,

출근할 때는 부모님과 함께 지내면서 열심히 일할 것을 기뻐하고,

퇴근할 때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할 것에 즐거워하기로 했다.


마음이 훨씬 가볍고 개운하다.

그래도 그리미와 헤어지는 것은 영 적응이 안된다.


수첩으로 무려 세 쪽에 걸친 편지를 써 놓고 왔다.

음성에 도착해서 아이들에게 답장을 쓰라고 이야기했더니

우주신이 너무 한다고 한다.


그래서 용돈을 비롯한 모든 금융자산을 압류할 것을 통고했다.


오랜만에 자출인데, 타이어에 바람 채우는 것과

물병 두 개, 사탕과 쵸코바만 챙겼다.

그리고 2.5kg짜리 노트북과 전원케이블, 마우스,

책 3권, 갈아 입을 속옷과 운동복 한 벌을 넣었다.

그랬더니 가방을 메자 어깨가 휘청거린다. 

아참, 게다가 대금도 챙겼다.

다행이 카메라는 빼 두었다.


9시 20분 출발.

고척교까지의 시내 주행은 오랜 만에 가벼운 엘파마를 타서인지

매우 가볍게 잘 나간다는 느낌이었다.

약간의 오르막에서도 서서 주행하여 어려움이 없었다.


안양천 자전거 도로로 진입하면서 벌써 엉덩이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시작은 뒷바람이어서 여유있게 출발할 수 있었다.

엉덩이가 아프면 서서주행하는 것을 연습하면서

무난하게 한강까지 진입할 수 있었다.


첫번째 휴식은 안양천과 한강의 합수부.

연세 지긋하신 분이 자전거에 싣고 오신 음료수와 커피를 팔고 계셨다.

역시 연세 지긋하신 분이 '아저씨, 커피 한 잔 가져와' 한다.

듣고 있자니 열이 난다.

아무리 장사하는 사람이라도 그렇게 막 대해도 되는가?

무일이라도 곱게 늙어야 할텐데.

아예 이 땅에서 반말을 없애버리는게 좋겠다.


전체 거리의 1/8쯤 왔는데 체력은 1/3을 소모한 느낌이다.

더 쉬고 싶었는데, 형편 없는 어른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

그냥 출발한다.


‎11시 현재 여의도 쌍동이 빌딩 앞 30km 지점.

22km/h를 기록했던 평속은 19km/h로 떨어져 버릴 정도로

어깨와 엉덩이에 통증이 밀려온다.


새까만 운동복을 맵시있게 차려 입고 베낭까지 매고 걷기 여행하는 아가씨는

팔다리는 다 드러내서 태우고,

얼굴에는 하얗게 분칠을 해서 철저하게 보호했다.

짧은 시간에 자세히도 보았네.

그만큼 멋지고 자신 있는 모습으로 한강변을 씩씩하게 걷기에

보기에 참 좋았다.


선유도 앞 그늘진 휴게공간에는 부자로 보이는 두 분의 나이드신 분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좀 더 나이드신 분이 젊은 분의 어깨에 기대어

힘들게 걸음을 옮기고 계셨다.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걸음마를 돕는 모양이다.

역시 보기 좋은 모습이었는데,

쓰러지시기 전에 술이나 화를 다스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12시 현재 44km 평속은 17km/h로 다시 떨어져

할아버지들도 무일을 추월해 달리신다.

흐리던 날이 해가 점점 나면서 기온이 올라가니

심장은 더욱 뜨거워져 제 기능을 못한다.

 

멋진 검은 옷을 차려 입은 한 쌍이 적어도 시속 30km/h 이상으로 

추월해 지나가는데,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다.

등에는 아무 것도 매지 않고, 자전거에 물병만 달랑 꽂고 달리는데,

아마도 휴가를 내서 양평이라도 다녀올 모양이다.

자전거도 좋겠지만, 그 체력이 부럽다.


해가 쨍쨍 하지만 바람은 시원하여 그나마 살 것같고,

바람도 마파람이 아니라 뒤에서 살살 밀어주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어깨가 짓눌리니 숨쉬기가 어렵고 

엉덩이가 아파서 속도를 낼 수 없다 진퇴양난이다.


숯내 자전거 도로로 접어드니 마파람이 가볍게 분다.

해는 더 뜨거워지고 바람마저 바뀌고,

이 구간은 살짝 오르막이기까지 하다.


점점 쉬는 시간이 많아지고 버프를 뒤짚어 쓴 얼굴에도

훅훅 열기가 느껴진다. 그래도 다들 잘 탄다.

아줌마 두 명도 무일을 추월해 앞으로 나간다.


서울 공항 앞 물놀이장에는 공무원인지 자원봉사인지 모르겠지만

텅빈 물놀이장의 그늘에 앉아 한가로이 노트북을 들여다 보고 있다.

분당쪽 물놀이장에는 그나마 대여섯 명이 놀고 있어서

두 사람의 물놀이장 관리인이 지켜 볼 구실이라도 있다.


가져간 물도 다 떨어지고 사탕은 너무 많이 먹었더니 싫고,

마침 상점들이 보이기에 오렌지 쥬스 한 병과

카라멜콘과 땅콩, 건빵 한 봉지를 사서 그 자리에서 먹었다.

건빵은 뜯지도 못하고 오렌지 쥬스가 떨어져서

캔커피로 바꿔 달라고 해서 그 자리에서 반을 마셔 버렸다.

그제야 다시 움직일 기운이 났다.


그런 기분도 잠시 어깨에 맨 배낭은 몸을 자꾸 가라앉혀서 

안그래도 힘든 엉덩이를 더욱 괴롭힌다.

너무 아파서 마치 고문을 받는 느낌이다.

앞으로 5km는 더 가야 점심 먹을텐데 버텨낼 수 있을까?


분당도 끝이 보이기 시작하지만,

너무 힘이 들어 사진 조차 찍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밤송이를 까고 있는 산책 나온 아저씨,

신나게 물놀이 하는 어린 아이들,

팔뚝 보다 더 커 보이는 잉어들의 도약,

은은하게 달콤한 향을 뿜어내는 칡들의 왕성함 등등

차분하게 사진에 담았으면 하는 것들이 그저 휘익 지나간다.

어떻게 편안하게 사진을 찍는 방법은 없을까?


다행히 70km의 자전거 도로를 다 벗어나자 마자

전주콩나물국밥집이 눈에 들어온다.

자전거를 가게 앞에 팽개치고 들어가서 에어컨이 제일 시원하게 나오는

구석자리에 그대로 널부러졌다.



국밥을 주문하고 잠시 앉아서 지친 몸을 추스리다가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손을 씻었더니 한결 나은 것 같다.

국밥이 나왔지만 먹을 수가 없었다.

이번 여행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진을 한 컷 찍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점심 먹은 시간만큼 달릴 수 있어야 하는데,

한계점을 넘은 듯 이제는 엉덩이가 쉰 시간 만큼도 버텨주지 못한다. 

아, 멀고 먼 출근 여행.


시간도 모르겠다. 신호등에 걸린 김에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앉아 휴식.

현재까지 78km를 타서 동백지구에 도착했다. 

다들 여유 있게 걷거나 차를 타고 있는데,

땡볕에 목장갑에 버프까지 뒤집어 쓰고 피곤함에 헐떡거리고 있다.

국밥집에서 내려 온 세 잔의 커피 중 절반을 마셔 버렸다.

이제는 노화가 진행되는지 찬물은 소화가 안되고

따뜻한 물이 몸에 잘 맞는다.

야속한 입은 계속해서 차가운 것만 대령하라고 명령한다.


해가 질 때까지 아무리 많이 남아야 4시간 정도 남았을 텐데. 

아직도 45km가 남았다. 

시속은 14km/h라 해지기 전에 도착은 어려울 듯 하다. 


에헤라 가다 못가면 

에헤라 버스타고 가지이 -


용인 경전철의 거대한 구조물이 그늘을 제공하니 탈 만하다.

돈 많이 들여서 좋은 그늘 만들어 주었다.

어, 경전철이 운행을 하네.

그러면 용인까지만 타고 갈까?

그래, 새로 생긴 것이니 시승을 해야지. 길도 위험하고.


어렵게 자기합리화를 시키고 승강장으로 가려고 했더니

헐, 시험운전 중이다.

하늘이 무일을 도우사 완주하라는 이야기구나. 쩝.


용인에 도착해서 시청을 지나자 

놀때리아에서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오백원에 판다고 한다.

그리미가 좋아하는 것이지만 지금은 무일에게 필요할 때다.


자전거를 유리벽에 간신히 기대 놓고 매장으로 들어갔더니

중고생 특히 여자애들로 꽉 차 있네.

일단 아이스크림 하나 시키고 커피 꺼내서 음양탕으로 지친 몸을 달랬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이들이 참 열심히 먹는다.

어떤 아이들은 친구인지 아르바이트 하는 학생을 부러운듯이 바라보며

칭찬의 말들을 계속해서 건넨다.

무일이 봐도 참 착하고 예쁜 아가씨다.

며느리감으로 아주 제격이다. 공부도 잘 하겠지.

부모님을 도와 고등학교 때부터 알바를 할 정도의 마음가짐이면.


벽에 붙은 광고판을 살펴 보니 새우버거가 1+1이다.

이곳 용인에 살 때, 놀때리아에서 가끔 가다가 새우버거를 천원에 팔았다.

없이 살다보니 군것질 하기가 어려웠는데,

천원에 사먹는 새우버거는 정말 맛이 있었다.

추억도 또 올릴 겸 하나 먹을까. 아니야. 참자.

두 개나 사서 어떡하려고.


우주신이 태어난 김정란 산부인과는 금란산부인과로 이름을 바꾸고

더 번창한 듯 하다.

장이 섰던 용인시장은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다.

벌써 17년 전이니 많이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


한 10km씩은 타야 하는데, 통증이 갈수록 심해지니

절반도 못가서 자꾸 쉬게 된다.

현재 주행거리 90km 시속 11km/h로 용인과 양지 사이에서 쉰다. 


다시 ‎95km 양지리조트 앞 가게에서 포카리 1.5리터를 샀다.

시원한 매장에서 한 모금을 마시고 지친 몸을 쉰다.

드러눕고 싶은데, 오가는 행인들이 많으니 그럴 수가 없고

마땅히 몸을 누일 곳도 없다.

다른 곳의 통증이 심해서 몰랐는데, 이제는 허벅지까지 당긴다.


지산리조트 앞 내리막의 도움을 받아 신나게 달려

‎104km. 백암면 입구에 도착했는데 날이 저문다.

일죽까지 갈 수 있으려나?


그리미가 전화를 해서 이제 그만 버스를 타는 것이 어떻겠냐고 한다.

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 일죽까지만 가라고 한다.

어두워지니 그러는 것이 현명하겠다.


깜깜해진 도로를 달리는데,

운전자들이 고맙게도 무일을 멀리 우회해서 지나가 준다.

딱 1대의 화물차만이 경적을 울려서 놀래키고 지나간다.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한 운전자들이다.

아까 동백지구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위험하게 길을 건너고 있었는데,

친절한 운전자가 아이들이 안전하게 건널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기도 했다.

참 여유롭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정농께서 마중 나오신다고 전화가 왔다. 배터리도 간당간당하다.

서일농원에서 만나기로 하고 천천히 나오시라고 했다.

정농께서 건강하셔야 무일이 사는 길이다.

올 겨울에는 한 쪽 눈 마저 백내장 수술시켜 드려야 한다.


‎118km 지점 휴게소에서 비틀비틀 걸었다. 일죽까지 5km 남았으려나.

저 고개 하나만 넘으면 되는데.

어쨋든 날이 시원해서인지 오후에 분당을 통과할 때 보다도

힘차게 페달질이 가능하다.


서일농원에 도착하니 마음이와 함께 정농이 기다리신다.

오늘도 결국 음성까지의 출근 여행은 실패로 돌아갔다.


총 125km 평속 15km 주행시간 8시간.

휴식시간 3시간 반. 기록이 참 그렇기는 하지만 잘했다.

바이크티에 확인했더니 간발의 차이로

오늘은 동메달이다.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이 탄 두 분이 놀라울 뿐이다.


체력이 시원찮은 것은 사실이다.

자전거도 꾸준해야 기록이 좋아지고 몸에도 좋을텐데 

이렇게 몰아치는 운동은 오히려 좋지 않을거다.

간식값은 14,000원이 들었다.


꾸준히 하자. 

결심은 하지만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