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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녀석들을 만나면 위로가 된다 _ 120824, 금

엊그제는 오촌 조카가 예쁜 여자 아이를 낳았다.

태어난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무지하게 깨끗하고 귀엽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되었다.

이리저리 계산을 해 보니,

손주가 벌써 7명이나 된다.

촌수도 거의 8촌 이내다.

증손쯤 보아야 늙음을 느끼지 않을까?


늦게까지 마음 아픈 이야기들을 듣느라 잠을 못자서

7시가 넘도록 잠을 깨지 못하고 있는데,

태풍이 온다며 무리해서라도 피사리를 해야 겠다고 하신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새참을 검정 비닐 봉지에 준비했다가,

안그래도 논일하면 상거지가 될텐데,

새참이라도 예쁘게 먹어야겠다고 해서

런치박스를 준비했다.


며느리가 어서 들어와야 할텐데.

아들 녀석들 보다 재미있게 지내려고,

웃기는 이야기들도 많이 모아 놓았고,

자전거 여행이다 도보 여행이다 놀러 갈 곳도

나름대로 많이 계획해 두었다.



무일농원은 부지런한 사람이 손해다.

일하는 시간이 훨씬 길어지기 때문이다.

언제나 부지런한 정농께서 가장 일을 많이 하신다.

손해 막심이다.

그래서 항상 말씀하신다.


"내가 없으면 농사 꼴이 안된다"



벼 이삭이 예쁘게 잘 피었다.

뻘도 묻히면 안되고,

곁가지도 손상시키면 안되니 단단히 주의하라고 하신다.


도대체 그러면 어떻게 일을 하라는거야?


하나에만 집중하자.

피 한 포기 낫으로 조심조심 베어서

흐르는 물에 잘 씻어서 논둑으로 던졌다.

그렇게 세월아 네월아 슬슬했다.


무리해서 일하다가 벼 이삭이라도 망치면

피 한포기 뽑으려다 일년 농사 망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3개월 동안

이 녀석들을 제거하려고

기를 쓰고 일을 했다.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쳐 박고

눈을 찔러 오는 풀잎들 속에서 피를 뽑아야 하지만,

파릇한 녹색 잎 사이에서

밝은 보라색으로 예쁜 꽃을 피우고 있는

이 녀석들을 만나게 되면,

웃음이 돌고 위로가 된다.



아무리 게으름을 피우려고 해도 일손은 점점 빨라진다.

저쪽에 끝이 보이면 저절로 마음이 급해지고 손은 빨라진다.

그러다 일이 잘 안풀리면 금방 지쳐버리고 만다.

손이 빨라질 때,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천천히 천천히 -


챙겨 간 간식까지 먹고 오후 1시가 다 되어서 일을 끝냈다.

서툰 농부를 못마땅해 하시더니

일 많이 했다고 좋아하신다.

비가 간간히 내려 등도 시원했다.


제초제와 농약을 뿌려 댄 이웃의 논들도

풀은 적지만 피는 무성하다.

내년에 또 제초제 뿌리면 될텐데,

그래도 피사리 하는 농부들이 한 둘씩 늘어난다.


넓은 세상을 그분들과 나눠 가지니

오히려 기분이 더 좋다.

외롭지 않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