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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고통은 산고처럼 잊혀진다_120811, 토

오리농법을 포기하기로 합의한 상태에서

정농께서는 다시 오리농법을 이야기 하신다.

오리가 있었으니 이 정도로 농사가 되었다고 하시며,

내년에는 좀 더 시간을 잘 맞춰서 큰 논에서만 하자 하신다.


고통은 마치 산고처럼 잊혀지는 모양이다.

요즘들어 오리농법을 계속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큰 논 하나만 하나 논 전체를 하나

오리농법을 준비하고 끝내는 지난한 과정은 똑같이 밟아야 한다.

할지말지를 결정해야 하나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몰두할 수 있다.

벼농사에 대해서는 어쨋든 정농의 의지가 매우 중요해서

내년 봄 농사 준비를 하면서 머리 아픈 삼자회담이 있을 것이다.



벼꽃이 계속 피고 이삭이 패고 있어서

논에 들어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한다.

결국 피뽑기를 중지하고 말았다.


당장은 노동에서 해방되었으나,

수천 수만배로 불어난 풀들이 

내년도의 노동을 더욱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지금 당장 행복하면 된다.

내년에는 좀 서두르면 고통도 덜할 것이다.

일도 몸에 익었으니 훨씬 속도도 낼 수 있을 것이다.


논둑을 예초기로 베어 내고

그물을 세운 철근 더미도 들어다 경운기에 실어두고

오리 그물망을 벗겨냈다.

물 속에 잠긴 그물을 끌어 올리려니 힘도 드는데다

온 몸으로 진흙이 튀어

일을 마치고 나니 상거지 꼴이다.

내일이나 일이 끝날테니 내일까지는 상거지로 산다.


심현께서는 다시 한 번 오리농법을 성토하신다.

비싼 사료 먹여서 오리 키워야지 

그물 치고 거둬야지

매일 같이 집에다 오리들 넣다 뺏다 해야지,

게다가 이런 상거지 꼴 하며 일하는 것은 싫으시단다.

오리에 신경쓰느라 남는 시간과 돈에 

차라리 세 번 열심히 김매기 하고 좋은 것 먹자 하신다.

삼자회담 피튀기겠다.


거금 백만원을 주고 고추 건조기를 샀다.

20년을 쓴다고 하면 1년에 5만원 꼴이니

고장 없이 잘 작동해 주면 좋겠다.


고추 농사가 잘 되어야 내년에라도 건조기값을 건질텐데.

탄저병 잡아내면 되겠지.


뿌듯하다, 새 살림 장만하고 났더니. 허허.



고추 탄저병을 잡기 위해 지난 2년 동안 수많은 유기농 재료를 샀다.

가격도 병당 7, 8만원을 넘는 것들이 많으니

고추가 아니라 금추다.


좋다. 효과만 있었다면 말이다.

불행하게도 정농께서는 아무 효과 없는 비싼 약제들이

우리 호주머니만 털어갔다고 하신다.

나름대로 연구가 있었겠지만

실패를 인정하고 빨리 철수시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

또다른 어려운 농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식초는 효과가 있다고 단언하신다.

그래 믿어보자. 정농의 냉정하신 판단을.